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jeong Oct 19. 2022

불륜을 목격하다니!

나를 칭찬해

동생과 볼링에 빠져 하루 10게임 이상 매일 칠 때였다.

동생은 레슨 받으며 프로 대회도 나갔고 둘 다 폼들이 괜찮아서 그런지(우쭐) 클럽에 가입하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매주 목요일에 회원끼리 대회를 하고 3등까지는 상품도 있다.

모임이 끝나고 나면 당연히 섭섭이가 서운해 하기에 다 같이 식사도 하고 한 잔씩들 하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쌓이며 친해졌다.

남자 회원 K는 볼링장에서 살다시피 하다 보니 그의 아내랑 어린 아들도 자주 왔고 회원들이랑 친해졌다.

전체 인원이 20명, 여자 회원은 4명이었다.

여자 회원 중에 가장 여성스럽고 예쁘게 생긴 L이 남자들에게 인기가 최고였다. 볼링장에서도 회식을 할 때도 시선은 늘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볼링 실력이 꽤 좋은 K는 L이 퇴근하면 그녀에게 볼링을 가르쳐 주는 것을 자주 보았다.

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4번째 손가락에 물집도 자주 생기고 굳은살이 내 살처럼 붙을 때까지 피도 나고 고생을 많이 하는데 L의 손가락에 상처가 생겼는지 약을 발라주며 안타까워하는 K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과 연습을 하고 있는데 K의 아내가 우리 곁에 오더니 시간이 가능하면 밖에 나가서 차 한잔 하고 싶다고 했다. 평소에도 언니처럼 허물없는 사이라서 흔쾌히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이런 질문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K와 L이 좀 이상한 것 같다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우리는 회원끼리 좀 가까울 수도 있고 대부분 남자 회원들은 L에게 관심이 많았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특히 K는 유부남이고 L은 나이는 좀 있어도 미혼이므로 단 1%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유심히 지켜보고 좀 이상하거나 하면 연락을 해달라는 그녀와 헤어져 집에 돌아오며 동생과 나는 '설마 아닐 거야 그렇게 예쁘고 게다가 미혼인 그 언니가 그럴리는 없지'라며 K의 아내가 좀 예민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정기모임이 있던 날 우리는 그 둘에게 자동으로 눈길이 자주 갔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아서 그런지

둘은 서로 챙겨주며 마치 연인 사이처럼 다정해 보였다.


K의 아내를 만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그녀는 우리를 또 찾아왔다.

남편이 평소 관심 없던 옷도 사고 속옷도 사는 것은 처음 봤다며 일이 터진 것이 분명한데 어린 아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대가 회원 중에 한 사람임을 확신했다. 그녀와 어린 아들의 눈물까지 본 순간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그녀는 K와 L이 만나면 미행을 하고 싶다며 둘이 볼링장에서 나갈 때쯤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


연습차 볼링장에 들어서는 순간 K과 L이 웃으면서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K의 아내에게 연락을 했지만 아들이 감기가 심하게 걸려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의감에 불탄 우리 자매는 둘을 따라갔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서로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짐) 카페를 거쳐 K의 차로 어디론가 출발했는데 택시를 기다리다 놓쳤다.


L의 아내는 울기만 했다. 자신과 아들만 있으면 평생 행복하다며 자상하던 남편이 요즘은 매일 새벽에 들어오고 아들과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한다는 말에 분노가 생기기 시작했다.

뭐든 도울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고 뭐라고 위로할 말이 없었다.


어느 날 K의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남편이 양복을 입고 이발은 물론 면도에 온갖 멋은 다 내고 치장 중이라며 남편을 미행해야 하니 아이를 봐줄 수 있냐는 전화였다.

할 수없이 우리는 그녀의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얼마 후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K가 차를 탔고 그녀가 미리 불러둔 택시가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이 우리 손에 안기자 엄마 쪽으로 몸을 돌리며 울기 시작했고 K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아들과 집에 있으라고 하며 택시로 K의 차를 따라가며 기사님께 앞차를 놓치지 말고 잘 따라가 달라고 부탁했다.


헉 K는 L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설마 아닐 거야를 속으로 바라며 L의 집이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의 끈을 잡아보기로 했다. 복도식 아파트 어느 집에 멈춰 선 K는 초인종을 눌렀고 잠시 후 나타난 얼굴이 L이었다. 현기증이 나며 눈을 의심했다. L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상황을 보니 어른들께 인사하러 간 복장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겁이 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쳐들어 가서 L의 부모님께 K가 유부남임을 밝혀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났지만 진정하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우선 우리가 본 사실을 K의 아내에게 알렸고 우리가 말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우리는 K과 L을 볼 자신도 없고 충격에 빠져 며칠 볼링장에 가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날 때쯤 전화벨이 울렸다. 동생이 받았는데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고만 있더니 전화를 끊었다.

언니, K의 전화였는데 한 번만 더 그의 아내를 만나면 볼링장이 피바다가 될 줄 알라며 언성을 높였다고 했다.

그 후로 우리는 볼링장에 가지 않았다. K과 L이 없는 시간에 락커에 보관된 우리 볼과 물건들을 가져왔고 다른 볼링장으로 옮겼다. 그 후 그들의 소식은 묻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K의 아내가 남편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우리가 도와준 이야기를 했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래도 섭섭했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남의 일이라고 무시하지 않았던 그 시간을 칭찬하고 싶다.

우리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기억이다. 요즘에도 내 주변에서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까?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어떻게 할까?

객관적인 방법, 간접적으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도움이 된다면 도움을 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주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서로 돕는 일이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다만 방법을 지혜롭게 선택함이 중요하다.


한 줄 요약: 인생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을 때 살 맛 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방법과 적정선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객관적인 분별력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칭찬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