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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Oct 21. 2022

입꼬리 올리는 시간

세계 민속 무용(1)


<잘나신>은 모임명이다.

회사 다닐 때 근무 한 지점 중에 신설동 지점은 전국 실적이 우수한 편이었다. 그 때문인지 분위기도 좋았고 직원들 사기도 충만해서 협동심도 타 지점의 모범이었다. 그런 전통 덕분에 지금도 <잘나신> 모임은 이어 나간다. 한국에 갔을 때 모임을 했다. 그날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한 후배가 나한테 질문을 했다. “선배 혹시 기억나요? 에어로빅 배우러 갔다가 쫓겨난 사건이요?”라고 말해서 모두 웃었다.

사건인즉, 대부분의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인 나는 퇴근 후 에어로빅을 배우자는 직원들의 제안에 헬스클럽으로 갔다. 그때 그 첫 수업에서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어려운 분야들이 많고 각각의 특징을 배운다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큰 거울 앞에 모두 서서 맨 앞줄 강사를 따라 했다. 초보 회원들은 강사가 잘 보이는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강사는 설명했고 동작이 익숙해지면 음악을 틀었다. 동작을 배울 때와 다르게 음악 템포가 생각보다 빨랐고 몸이 꼬이기 시작했다. 열심히 배운 동작을 음악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나를 보더니 회원들이 웃기 시작했다. 강사는 나의 동작을 교정해 주었고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내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웃음판이 되었다.

생각과 몸이 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동작을 배우며 골반을 회전하라고 하면 다리가 먼저 움직였고 허리를 돌리라고 하면 어깨가 먼저 돌아갔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골반으로 원을 그리듯이 움직이는 동작인데 “사람이 가능한 동작일까?”라고 생각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회원들은 웃음이 참기 어려운지 계속 배를 잡았고 어려운 동작을 할 때는 입까지 돌아갔다. 그나마 침을 흘리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다. 이어지는  어설픈 동작은 회원들의 웃음보를 터지게 하고 말았다.


난감해하던 선생님은 사무실에서 잠깐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내게 “죄송하지만, 수업 진행을 위해서 다음 기회에 오시면 어떨까요?”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불과 30분 남짓한 시간으로 끝난 나의 에어로빅 수업이었다.




그 후 집에서도 가끔 TV에서 댄스 장면이 나오면 경쾌한 음악에 춤을 춰 보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가족들도 항상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포크댄스를 배우는데 정말 정말 재미있고 음악도 좋다며 수업 참관을 해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과거의 씁쓸한 에어로빅 추억도 있었지만, 음악이 좋다는 말에 귀가 쫑긋은 아니어도 간질간질 궁금해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다.


친구와 함께 수업에 갔다. 신나는 음악, 다행히 허리와 다리가 따로 움직이거나 흔히 말하는 웨이브 같은 동작이 전혀 없는 세계 민속무용이었다. 몇 가지 동작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하는 댄스 같았다. 몇 곡을 보며 앉아 있자니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회원들도 모두 여성들이었고 키가 크면 남자 역할을 했고 좀 작으면 여자 역할을 했다.

음악은 올드 팝송도 있고 왈츠나 세미클래식 분위기의 경음악들이 대부분이었다.




댄스의 난이도로 보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다음날 회원으로 등록했다. 그리고 첫 수업 시간이었다. 초보 회원은 나 혼자였고 보통 5~6년 이상 되었거나, 가장 늦게 시작한 회원이 일 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한 명밖에 없는 신규 회원인 나에게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춤추는 모습이 가장 예쁜 친구 뒤에서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동작도 많았지만, 나의 모습을 보고 웃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회원들은 초보인 내가 한 사람을 선택해 뒤에서 계속 따라 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처음 봤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경쾌하거나, 마음의 위로가 되는 부드러운 음악, 라인댄스도 가끔 배웠다. 동작을 익히기에 어려운 댄스는 선생님께 곡명을 알아보고 메모했다.




포크댄스와 곡명을 유*브에 검색했더니 수업에서 배웠던 동작들과 선생님을 비롯한 회원들의 공연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영상을 보면서 한 스텝 한 동작씩 정지와 재생 버튼을 반복하며 몇 시간씩 연습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생각을 멈추게 하고 마음마저 편하게 함은 물론, 세계 각 나라의 전통과 문화까지 배울 수 있는 종합예술과 같은 다양한 댄스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초등학교 시절 체육 시간에 배웠던 댄스와 비슷한 동작도 많았다. 짝꿍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남자 짝꿍 손 대신 나무토막을 잡고(그런 아이들이 많았음) 수업했던 포크댄스였다.




포크댄스를 소개해준 친구가 정말 고마웠다. 주 1회 한 시간 반 진행하는 수업은 늘 아쉬웠고 여유만 생기면 영상을 보며 동작을 익혔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어느 날,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세계 각 나라의 전통 드레스나 파티복을 입고 모자나 스카프로 치장하고 한껏 멋을 부렸다. 음악과 우리는 하나가 되어 넓은 강당을 돌고 또 돌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영화처럼 생활이 가능한 포크댄스, 놀이 문화가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놀이인 포크댄스, 음식과 술이 아닌 댄스만 있어도 회원들의 기분은 애드벌룬이 되어 하늘로 하늘로 떠다녔다.

그리운 포크댄스~~



한 줄 요약: 타고난 재주가 없어도 자신이 즐길 수 있다면, 그리고 충분히 행복하다면 주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해도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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