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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Nov 09. 2022

내가 가장 못하는 것

입꼬리를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학교 다닐 때만 노력했고 그 후에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미술 영역.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만 되면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다.

산이 멀리 보이는 학교 운동장에서 보이는 것을 그리라는 선생님.

어마어마한 크기의 산과 나무, 하늘을 그 작은 스케치북에 그리라는 불가능한 작업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막막하기만 했다.

유일하게 성적표 평균을 깎아 먹는 흡혈귀 같은 존재인 미술 과목.

그나마 실기와 필기 점수가 나뉘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20%인 필기를 만점 받는다 해도 실기가 바닥이므로 늘 기어 다니는 심정의 미술 시간이 정말 괴로웠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해가 뜨는 날이 생겼다.

중학교 3학년 때 내 짝은 미술시간이 되면 눈빛이 달라졌다. 이런 친구들이 어른이 되면 화가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수업 시간이 반 이상 지나가고 있을 때 내 짝인 친구가 열심히 스케치하던 스케치북을 쭉 찢더니 종이를 구기려고 하는 순간 '버릴 거야?' 라며 놀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나는 힘을 살며시 풀면서 물어보았다. 친구는 '응'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설마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세상에 이런 일이 이렇게 잘 그린 그림을 버리다니!

어릴 적부터 주위 어른들이 나를 보면 북극에 가서도 냉장고를 팔 수 있고 아프리카에 가서도 신발을 팔 수 있을 거라고 늘 이야기하며 웃었던 (지나치게 활발했음) 말들이 갑자기 번개 치듯 머리를 때렸다.

나: 그럼 내가 가져도 돼?

친구: 망친 건데 괜찮아?

이게 말이야 방귀야 망치다니 저 스케치라면 내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근접할 수 없는 완성품이었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스케치북에서 뜯어낸 도화지 한 장을 내게 건네는 친구가 산신령님처럼 보였다.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색칠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평생 미술 과목 실기로 선생님께 칭찬은 물론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미술 시간만 되면 친구가 스케치한 밑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어느 날 석고 데생 시간이었다. 나보다 더 큰 석고상을 손바닥 두 배만 한 종이에 그리라고 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억울했고 긴 수업 시간이 지루했다. 짝꿍이 스케치북을 몇 번 찢었지만 줄만 몇 줄 그려진 도화지를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나의 빈 도화지를 보더니 지난번 풍경화는 잘 그리더니 왜 시작도 하지 않느냐며 어서 그리라고 했다. 너무 슬펐다. 수업 끝나는 종소리가 나를 비웃는 듯 들렸고 선생님은 다음 시간까지 완성해서 가져오라고 했다.


다른 과목은 그 친구보다 내가 훨씬 성적이 좋았다. 선생님이 질문해도 대답을 잘하지 못하는 친구의 표정을 보자 미술 시간의 내 모습과 같아 보였다. 순간 친구에게 답을 적어서 보여주었다. 다행히 선생님께 칭찬받은 친구는 수업이 끝나고 고맙다고 했다. 나도 친구에게 미술 스케치 이야기를 하며 고마웠다고 다시 말했다.

그다음 미술 수업부터 그 친구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일단 첫 스케치는 대충대충 해서 버리듯 나에게 주었고 그 친구의 그림은 다른 얼굴이 되어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렸다.

서로 도와가며 중학교 3학년을 잘 마쳤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런 방법이 커닝이 아니었을까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구독자분 중에 현직 교사나 전직 교사들이 계시니 답글로 한 마디씩 부탁드려도 될까요?

커닝일까요? 아닐까요? 죄송합니다 커닝 같아요. ㅎㅎ




지금처럼 유*부가 있었다면 기초부터 자세하게 그릴 수 있는 방법을 누군가 올려놓지 않았을까? 미술학원도 우리 동네에는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배우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음에도 방법이 없었던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팠던 미술 시간의 나에게 위로를 하며 버티느라 고생했다고 토닥토닥.


내 아들이 그린 그림을 보니 사람을 그린건지 가축을 그린건지.

도대체 누굴 닮은거야!


한 줄 요약: 다 잘할 필요는 없다. 한 두 가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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