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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Feb 20. 2023

묵은지를 아세요?

묵은지가 입안에서 안부를 묻는다. 아삭아삭


전남 해남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제부 덕분에 묵은지라는 김장 김치를 먹어본 적이 있다.

분명 김장 김치인데 묵은지 용도로 담근 김치의 맛은 평생 처음 경험해 본 맛이었다.

아삭아삭한 김치에 갓 지은 밥을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우적우적.


배추의 씨앗이 흙 속에서 꼼지락거리던 탄생의 기적, 배추로 성장하며 만났을 포근한 햇살과 바람까지

거기에 늦가을의 칼칼한 냉기가 어우러진 이야기를 먹는다.

갖은양념을 버무려 흙으로 빚은 항아리에 겨울을 담고 어머니의 손맛이 더해진 묵은지는 말이 필요 없다.

일단 먹어보면 다양한 표현들이 더해지리라 생각한다.

일반 김치와는 다르게 긴 숙성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돌보고 다듬어간다.

스스로 성장하여 자신을 아낌없이 나눈다. 언제 먹어도 그 맛의 기본을 가지고 있으며 묵을수록 감칠맛이 더해지는 묵은지야말로 언제 먹어도 변함없고 은은하다.




오랜만에 만나거나 통화를 해도 묵은지 맛이 전해지는 친구들이 있다.

3년 만의 만남임에도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거리감도 작은 어색함도 없음이 신기하다는 친구들.

상대방을 잘 안다는 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통화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지난 시간을 함께하며 숙성된 기억과 이야기들이 묵고 묵어서 그저 잘 지냈으려니 , 그저 서로의 표정만으로도 지난 시간의 맛이 전해지는 그런 친구들.

그렇게 믿어주는 마음과 시선으로 볼 수 있다면 묵은지 같은 친구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가 평소 활발하고 밝은 편이지만 어느 날 나에게 냉랭하고 표정이 없거나 어둡다고 해도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나 보다, 또는 컨디션이 좋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친구의 안부를 물어주는 사이.

상대방의 행동과 말을 나의 감정과 섞지 않는다.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럴까? ㅎㅎ

상대의 감정과 나의 감정은 확실히 다름을 인정하면 서로의 관계도 늘 좋게 유지되지만, 나의 감정 또한 늘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반면 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마음이 불편한 일이 있을 때 친구를 만나면 상대방의 말이나 표정에 기분이 나빠지는 일이 가끔 있다. 작은 감정이라도 일어나는 순간 나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면 서로 묵은지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그런 친구가 단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행복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친구들이 몇 명 있다.

서로에게 묵은지 같은 친구가 있다.



한 줄 요약: 묵은지 같은 그런 친구를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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