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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Mar 19. 2023

눈물이 멈추지 않던 날

야생 고양이 수수

저녁 산책 나간 수수가 돌아오지 않았다.

야생에서 구조된 고양이 수수는 자신의 안전은 확실하게 지키는 편이다. 아주 어릴 때 분양받아서 키우는 집고양이 콩, 보리보다 사냥 실력은 물론 생존본능이 뛰어난 편이다.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일어났더니 수수가 야외용 의자 위 빨간 담요에서 자고 있었다.

문을 열며 들어오라고 했더니 길게 기지개를 켜며 집으로 들어왔다.

한 6개월 전쯤 있었던 일이었다.


수수가 가끔 마실 가는 노선을 보면 아랫집이나 윗집으로만 그것도 우리 집 울타리 근처로 다니며 며칠을 살피고 관찰해서 가장 안전한 시간대에 다니곤 했다. 찻길을 건너거나 도로 가까이 가는 수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4년 6개월을 지켜본 수수였다. 그래서 고양이 세 마리는 거의 매일  저녁 산책을 하고 밤 9시 전후로 집에 들어오곤 했다.


3월 5일 성당에 다녀오는데 마당에서 남편이랑 콩, 수수가 놀고 있다가 콩이 달려왔다. 콩이를 쓰다듬고 좀 떨어져 있는 수수를 부르며 눈 한번 마주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마당은 밝은 회색 물감이 온통 풀어져 있었다. 저녁을 먹고 9시쯤 되자 콩, 보리가 문 앞에서 야옹거리며 신호를 보냈다. 문을 열자 두 마리는 들어왔다. 남편은 수수가 보이지 않았다며 마당을 둘러보았지만 없었다. 수수만 좋아하는 간식, 저녁 산책 후 먹는 북어를 주려고 "수수야 먹자, 수수야 먹자"를 외치면 6개월 전 하루를 제외하고는 5분 안에 문 앞에 오곤 했다.


10시가 넘어도 수수가 오지 않자 남편은 턴을 들고 마당 구석구석과 윗집 아랫집도 비추며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야생에 살면서 자신을 늘 지켰던 아이고 똑똑한 편이니 잘 놀다가 올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밖이 밝았다. 깜짝 놀라서 밖에 빨간 담요를 살펴보니 수수가 없었다. 달빛이 워낙 밝아 시간을 보니 새벽 2시 반이었다. 걱정과 불안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마당을 돌아보았지만, 수수는 찾을 수 없었고 모기들이 심하게 반겨서 일단 집으로 들어왔다.


5시가 되자 어제 수수를 마지막으로 본 밝은 회색빛 마당에 이슬이 가득했다.

남편이 일어났다. 수수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자 수수를 부르며 다시 마당으로 나갔고 자고 있던 딸도 놀라서 아직도 들어오지 않았냐며 일어났다.

우선 동네 커뮤니티사이트에 수수 사진과 혹시 발견하면 연락을 달라고 올렸다.


딸과 남편은 수수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남편이 "수수 사고 났어"라고 했고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묻는 나에게 대답 대신 딸이 집으로 들어오며 거실에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윗집에서 10m 정도 떨어진 도롯가에 누워있는 수수 뒷모습을 본 딸, 남편은 수수를 안아서 마당 잔디밭에 눕혀놓고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 핏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놀랐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 갑작스럽게 우리를 때리듯 쏟아졌고 눈물도, 생각도, 말도 모두 사라졌다.

다리가 풀렸지만, 수수를 묻어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하얀 옷을 건네었더니 받아 들고 아래 마당으로 내려갔다.

좀 진정이 된 딸에게 아빠한테 가서 엄마가 수수에게 편지 쓸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말없이 다녀온 딸은 자신도 편지를 쓰겠다며 종이를 가져갔다.

그때부터 눈물이 쏟아지면서 편지를 쓸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편지를 마무리해서 수수와 함께 화단에 묻었다. 야생 구조 고양이라서 정말 힘들었지만 자연스럽게 수수가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온 가족이 최선을 다했다. 콩과 보리랑도 그럭저럭 잘 지낸 편이었다.

이제 겨우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가엽고 가여워서, 지키지 못해서 미안했고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은 탈진한다고 그만 울라고 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괜찮아"하는데 "안 괜찮아"하며 펑펑 우는 소리를 듣던 아들은 다시 걸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만을 의지하고 지냈을 수수를 지키지 못한 아픔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눈물이 흐르고 흘렀다.

울다가 지쳐서 누워있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며 힘들겠지만, 마음의 진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아들을 보자 다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먼 거리를 무엇 하러 왔느냐고 하면서도 위로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슬픔으로 끝없이 들어갔다.

입맛도 없고 잠도 잘 수 없고 수수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며칠이 지나도 행복의 공간에서 슬픔의 공간으로 뚝 떨어진 듯한 상황이 이어지자 딸이 일단 출근하자고 했다. 남편도 집에 혼자 있지 못하겠다며 따라나섰다.

쌓인 일을 하는 동안은 수수의 슬픔을 잊었다. 손에 일이 없으면 다시 시작되는 슬픔과 눈물이 우리를 삼켰다. 둘이 차에 타면 서로 아무 말 없이 수수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아파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아이들이 약을 먹어야 한다며 수면제와 우울증 약을 챙겨 왔다. 더 이상 이 상태가 유지되면 몸이 점점 더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도 걸리고 힘이 들 거라고 했다.

평소 약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던 나는 그때야 통제할 수 있는 일과 불가능한 일을 구분하여 나의 뇌가 인식할 수 있도록 천천히 말을 했다. 그리고 수수를 위한 기도를 하고 약 없이 잠을 잤다.


아침이 되면 문 앞에 수수가 있을 것 같고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고 남편에게 수수가 확실히 맞았는지 몇 차례 다시 물어보았다. 서로를 챙기며 각자 힘들게 버티며 견디고 있지만 여전히 많이 아프다.



* 수수는 야생에서 구조되어 동물병원에서 지내며 몇 차례 입양을 갔지만 파양된 고양이다.

수의사는 마지막으로 분양을 시도했고 끝까지 분양이 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결정한 상태에서 4년 6개월 전에 우리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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