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jeong Apr 25. 2023

늦깎이 대학생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1년 동안 두 과목만 추가로 공부하는 과정이고 주 3일 학교 출석이라서 그랬는지 아들이 TAFE에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느끼지 못했다.

먼저 대학생이 된 아들 여자친구와도 점점 연락이 뜸 해졌다.

고등학교 성적과 TAFE에서 새로 받은 성적을 기준으로 대학 입학을 신청했는데  아들이 지원할 수 있는 최고의 범위가 임상병리학과였다. 어찌 되었든 대학교에 입학했다.

딸과 아들 여자친구의 대학 진학으로 아들의 심경에 변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대학 생활을 먼저 시작한 딸에게 인생 일대의 가장 큰 변화가 생겼다. 생후 10개월 전후부터 말도 잘하고 무엇이든 알아서 잘하던 아이였다. 고등학교에서도 전교 5등 안에 항상 들던 딸이 대학교 한 학기를 포기했다.

그때도 역시 그럴 수도 있지 항상 잘하는 것보다 저런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와 다르게 남편은 딸에 대한 실망감이 엄청나게 컸다. 무너진 기대감을 딸에게 직접 표현하지 않았지만 둘이 술 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할 때면 남편은 "어떻게 내 딸이 그럴 수가 있지? 밤에 잠도 잘 못 자겠어." 라며 코가 쑥 빠지다 못해 슬퍼 보였다. 평생을 단 한 번도 실망하게 한 적 없는 딸이었고 아들의 방황을 딸에게 위로받고 있었던 것 같았다.


딸은 겸손이 무엇인지 배우는 중인데 그렇게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자 "당신은 속 편해서 좋겠다."라며 한숨이 길게 길게 나오기를 꽤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딸에게 '잘했어'라며 엉덩이를 두드리자 놀란 딸은 눈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너처럼 무엇이든 잘하는 아이가 시집가서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이 공부를 못하면 딸이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배우는 시간이야.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매력 없는 딸이 될 뻔했는데 역시 우리 딸은 완벽해!'라고 했다.

그래도 딸은 한 학기 동안 쉬면서도 늘 얼굴이 어두웠다. 자신에게 던져진 실패라는 단어가 몹시 무겁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남편이 아무리 힘들고, 실망했어도 당사자의 고통에 비교가 되겠는가!

딸이 가장 힘든 한 학기를 보내는 동안 아들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


임상병리 1학년 1학기 과목과 약대 1학년 1학기 과목이 동일했다. 우리는 몰랐지만, 아들 혼자서 계획을 세웠다. 일단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고 아침 등교 시간이 혼잡해서 집에서 학교까지 약 40분 정도 소요되므로 학교 가까이 분가를 원했다. 대학생이 되면 월 백만 원의 보조금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기 때문에 우리의 도움은 필요 없었고 매끼 식사를 위한 반찬이나 간식만 만들어 주었다.

가끔 주말에 집에 오면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매일 만날 수도 없었고 알아서 잘할 거라는 마음으로 늘 기도하고 믿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일 학기 과목을 전부 A를 받았다. '역시 우리 아들이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믿고 믿었던 순간이 이렇게 내 곁에 있음이 감사했다.


이 학기를 준비하는 시기에 아들은 약대 총괄 교수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자신의 소개와 일 학기 성적표 그리고 자신을 선택한다면 약대의 행운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며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라는 내용이라고 했다. 사정해도 될까 말까 한데 엉뚱한 아들의 말에 시원하게 웃으며 '역시 엄마 아들이야'라며 엉덩이까지 두드리는 센스 있는 나였지만 배포는 커서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더 겸손하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속으로만 했다. 아들의 얼굴에는 밝은 표정과 자신감이 넘쳤다


모든 약대 교수가 아들의 입학을 반대했다. 이유는 과거 학생들의 유형으로 볼 때 TAFE를 통해서 입학한 학생들 대부분이 끝까지 공부한 학생도 적었고 성실한 학생도 별로 없었다는 결과였다.

총괄교수는 이 학생은 자신감이 있고 약대랑 같은 6과목 전부 A를 받았다는 노력과 성실감을 높이 평가하고 싶고 일단 면접을 본 후 결정하기로 했다며 아들을 만나기로 했다.


왜 약대를 지원했는지, 우리가 너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공부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는데 아들은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있는데 자신은 엉덩이가 무겁다고 하자 교수들이 모두 웃었다고 했다. 특히 자신과 같은 경우의 학생들에게 무엇을 걱정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학생들이 모두 그렇다고 해도 나는 다를 수 있지 않겠냐며 기회를 준다면 약대의 행운이 될 것임을 약속한다고 했다.

아들은 약대 입학을 허락받았고 2학기부터 아들과 딸이 동시에 대학은 다르지만, 같은 전공수업을 공부하게 되었다.



한 줄 요약: 한 치 앞도 모를 일이 사람의 일이라 했던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