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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May 01. 2023

꼴찌에서 일등?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약대 1학년은 주로 과학과 수학 과목이 전부였고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인 약학 공부가 시작되었다.

공부도 공부지만 약국에서 주 1회 이상 실습을 해야만 했다.

실습 중 약국을 방문한 고객 중의 한 명을 선택해서 복용하는 약과 약사의 상담 내용을 적고 자신의 의견까지 작성해서 매주 제출해야 하는 과제였다.

딸은 집도 학교도 모두 브리즈번이었고 실습할 약국을 집 근처로 쉽게 구했다.

아들은 학교도 집도 골드코스트에 있었는데 약국 실습을 위해 이력서를 백 군데도 더 제출했지만, 한 군데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영어도 딸은 내가 들어보아도 발음이나 악센트가 완벽한 듯했으나 아들은 흔한 말로 약간의 콩글리시가 섞여 있었으니 실습할 장소를 구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인생은 산 넘어 산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산을 넘고 넘다 보면 정상에 도착할 것이고 그 정상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포기하지 않고 도착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한 마디씩을 건넨다. 낙엽 밟는 소리가 그립고 마른풀 향기가 속삭이는 이야기가 그리울 때는 산을 품으러 떠난다. 정상에 서면 늘 마음을 다독여주었던  거대한 나무들이 작은 붓이 되어 발가락을 간지럽히듯 물결치며 일렁이는 순간을 보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런 이유로 20대 대부분의 주말에는 산을 걸었고 느꼈고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아들도 어쩌면 가장 힘든 산을 종주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지 않게 지켜봐 주고 가끔 아주 가끔 뒤에서 등을 토닥여 준다면 언젠가는 정상에 오르겠지, 그곳을 만나겠지, 그곳에서 주는 메시지를 듣겠지 생각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약국에서 실습 중일 때 여전히 실습할 약국을 구하지 못한 아들. 그 이야기를 들은 같은 과 친구 J가 자신이 실습하는 약국 주인에게 아들 이야기를 했더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며 가능한 날자와 시간을 알려달라고 했다.

약국 주인은 대만 출신 여자였다. 아들을 만나 본 그녀는 주 일회 실습을 허락했다. 실습하는 동안 주인 약사 L은  아들이 모르는 부분도 설명해 주고 무엇이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하라며 친절하다고 했다.

아들이 실습하는 모습을 지켜본 L은 몇 주가 지나자, 실습 외에 약국 근무를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알려달라며 실습보다 근무가 공부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아들은 주 2회 약국 근무를 시작했다.

실습과 근무, 잠자고 먹는 시간, 수업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아들은 도서관에 있었다. 24시간 하는 학교 도서관에 어느 한 자리는 아들의 자리처럼 모두가 인정했다. 그때 교수님이 붙여준 아들의 별명이 도서관 귀신이었다.

교수들도 신입생들에게 약학대에 관련된 궁금증이 있으면 24시간 도서관에  **자리에 K라는 도서관 귀신이 있는데 우리가 없을 때는 언제든지 거기에 가서 문의하라고 했고 실제로 신입생들이 찾아와서 궁금한 사항들을 가끔 물어보기도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약국 실습 시간이 늘어났고 L은 졸업 후 인턴 실습을 자신의 약국에서 하라며 미리 부탁한다고 했다. 아들의 입장은 과 친구인 J가 먼저 그 약국을 다니고 있었고 그 약국에 그녀의 소개로 갔기 때문에 J에게 기회를 먼저 주라고 주인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J는 집이 이사해서 현재 약국과 거리가 멀어졌고 졸업 후에 자신이 알아서 인턴 할 약국을 찾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들한테 하라고 했다.

졸업도 하기 전에 인턴 할 약국도 정해졌고 성적은 전 과목 모두 A를 유지했다.


가끔 딸이 아들 학교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기 때문에 아들이 정말 도서관 귀신인지 딸에게 물어보았다.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 앉아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하고 음악 듣고 공부보다는 다른 짓을 더 오래 하는 듯하다고 했다.

어느 날 아들에게 "도서관에 오래 있지 말고 쉴 때는 집에 가서 편히 쉬면 컨디션이 더 좋을 텐데"라고 했더니 도서관을 떠나면 약간 불안해서 놀아도 도서관에서 논다고 했다. 아들은 놀기와 공부하기를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하며 대학 생활이 그럭저럭 지나가고 있었다.


약대 총괄교수는 아들만 보면 늘 자랑스러워했고 작은 어려움이 생긴다 해도 항상 자신을 찾아와 달라고 했다며 멀리서 스치듯 지나갈 때도 엄지척하며 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늘 미소가 가득하다고 했다.

정부의 약학 시스템에 관련된 프로젝트도 교수들과 학생대표로 아들이 참여했고 크고 작은 경험의 기회가 주어졌다.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못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일등이라고 해도 약간은 서운할 정도다.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고 가고자 한다면 어디인들 갈 수 없을까라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들의 성적은 졸업까지 그렇게 유지되며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한 줄 요약: 부모는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응원을 주는 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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