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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Jul 29. 2021

엄마 미워

뭐가 그렇게 좋아!

  

새벽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전날 밤에 몇 시에 잠자리에 들었든 일어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뒤척일 때 커튼 사이로 작은 빛이라도 들어오면 잠을 더 이상 잘 수 없다. 아침잠이 많은 남편은 그 부분을 늘 부러워하기도 한다. 가끔은 훤히 밝은 아침까지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고 싶지만 정신이 맑아지고 눈이 총명해져 산책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곧 일어나곤 한다. 현재의 나에겐 참 좋은 습관이다.


아들과 딸이 시험공부나 특별한 계획이 있을 때 ‘엄마 알람을 맞추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새벽 4시에 깨워줘. 꼭 깨워야 해!’라고 부탁을 한다. 다음날 새벽이면 알람 소리가 내 귀에는 들리는데 한참 달콤한 꿈 속에 있는 애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실내화도 벗고 까치발을 딛으며 아이들 방으로 가서 알람을 끈다.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깨운다. 시간을 확인한 아이들은 화를 낸다. 새벽에 깨워달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엄마는 항상 왜 깨우지 않느냐며 울먹이기도 한다. 다른 엄마들은 잠도 못 자게 하면서까지 시험공부를 하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엄마는 참 이상해. ‘나 시험 망쳐도 괜찮아?‘라고 딸이 물어보면 ’응 괜찮아 다음에 잘 보면 되지 ‘라고 늘 나의 대답은 같았다. 시험성적이 좋은 것보다 새벽잠을 맛있게 자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더 행복한 나는 아이들 불평이 한 귀로 들어왔다가 벌써 나가버렸다.


아이들은 여러 번 나에게 당한 후로는 알람을 5분 간격으로 10번씩 맞추었다. 새벽에 알람이 울리고 아이들 방으로 가면 역시 소리도 듣지 못하고 쿨쿨 자고 있다. 그럼 살며시 핸드폰을 들고 나와서 알람을 모두 껐다. 아침 먹고 출근 준비할 시간만 남아있을 때쯤 아이들을 깨웠다. 제자리에 가져다 놓은 폰을 보고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알람을 듣지 못한 줄 알고 이상하다며 출근하곤 했다.

남편이나 아이들이 늦잠을 잘 때면 최대한 소리도 내지 않는다. 내 전화도 당연히 무음이고 산책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소리를 만드는 행동들은 최대한 하지 않는다.


갱년기가 시작되자 초저녁 잠이 많던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침대에 누우면 1,2분을 넘기지 못하고 잠들었던 평소와 달리 눈이 말똥말똥. 그래서 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현재는 수면 가능시간도 충분하다. 하지만 잠이 맛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아이들 키울 때는 맞벌이 부부들이 거의 그렇듯이 잠이 늘 부족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나는 밤에 엄마가 충분히 주무셔야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겠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잤다.

많이 수월한 편이었던 아이들이었지만 가끔 감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이면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칭얼거렸다. 그럴 때면 자고 있는 남편을 위해 아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야뇨증이 심했던 딸아이 때문에 밤에도 2,3번은 기본으로 일어나야 했다.

수많은 밤이 나에게는 참 길기도 했다.


어릴 적엔 할머니 방에서 잤다. 소변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자주 있었던 나는 화장실에 다녀와서 따뜻한 이불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한 번 일어났다가 다시 눕는 습관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며 일어나라고 했다. 내가 일어날 때까지 할머니의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일찍 일어났으면 마당이라도 쓸던지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던지 정 졸리면 낮에 잠깐 낮잠을 자더라도 일어나라고 했다.

옆에 사촌언니나 오빠들은 자고 있어도 깨우지 않던 할머니, 한 번 일어났다가 다시 잠자리로 들어가는 것은 게으름의 습관을 만든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새벽마다 소변이 급해지는 내가 미웠다.

하루는 새벽에 화장실을 다녀와서 엄마 아빠 방으로 가서 더 잤다. 그날 엄마는 할머니에게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냐며 꾸중을 들었다. 그 후로는 새벽에 화장실이 급해도 참고 자거나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날은 할머니 눈을 피해 연탄창고, 마루, 부엌 등에서 쪼그려 앉아 졸기도 했다.

새벽마다 깨워달라는 아이들의 부탁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이 새벽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내게 새벽잠을 자도록 선물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자는 아이들을 깨울 수도 없었고 자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고 맛있어 보였다.


사람들이 자주 하는 행동의 끝에는 각자의 무의식과 연결이 되어 있다. 새벽잠이 늘 부족하고 조금은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한 나의 무의식이 만들어 낸 일들.

딸에게 만약 너의 딸이나 아들이 새벽에 공부해야 한다고 알람 요청을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물었더니 딸은 ‘당연히 깨우지’라고 대답했다. 깨우러 갔는데 너무나 깊이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할 거야 했더니 ‘흔들어서라도 깨워야지 부탁을 했으니까’라고 말했다. 나도 이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요즘은 딸이 가끔 새벽에 운동하고 출근한다며 아침에 알람 부탁을 한다. 다음 날 아침이면 딸이 좋아하는 음악을 먼저 틀어주고 그래도 일어나지 못하면 딸 방으로 가서 일어나고 싶은지 더 자고 싶은지 물어본다. 그러면 딸은 일어날 때도 있고 더 잘 때도 있다.

아주 가끔 아침 해가 내 침대까지 들어와도 뒹굴 거리다가 깜빡 잠이 들 때도 있다. 잠이 참 맛있다.

늦잠은 더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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