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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Jun 19. 2022

왜 화가 날까?

뭐가 그렇게 좋아!

  

늦은 아침을 먹고 게으름을 선물한 나에게 침대는 아낌없이 나를 안아준 하루.

점심 먹을 건지 몇 번 남편에게 물었지만 ‘아직 아직’이라는 휴식이 내게 달려왔다.

선물 받은 게으름을 상자에 넣을 시간, 이 선물을 자주 꺼내서 소꿉놀이해야겠다.

저녁밥으로 북엇국을 끓였다. 늘 준비되어 있는 육수, 무와 북어를 들기름에 볶다가 육수를 넣고 끓였다. 무와 북어 속에 숨어있던 이야기들이 빠져나와 코로 들어왔다. 그 이야기를 보면서 계란을 풀고 파를 듬뿍 넣으면 북엇국이라는 한 가족을 만날 수 있다.

두세 시간 마당일을 하고 들어온 남편은 몇 시간 째 노트북 앞에 앉아서 게임 중이다 그를 향해 ‘배고파요?’라고 물었지만 ‘아직’이라는 대답이 나 혼자 먹으라는 신호 같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나는 주일 저녁 미사 참석을 위해 출발했다.

출발 전 냉장고에 반찬들과 국을 데워서 밥을 먹으라고 하자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는 소리만 내게 걸어왔다. 점심을 먹지 않았으니 너무 늦지 않게 먹으라며 또 남편의 눈을 두드렸다. 하지만 두 눈은 컴퓨터 게임 어디쯤에서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해가 잠자리 준비 중이다. 하늘은 오렌지색 바탕에 흰색과 푸른색을 나무와 꽃처럼 펼친 이불을 펴고 있었다. 미사 전 기도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도와 미사 중에 거의 필수 과정인 죄의 고백 시간,

“생각과 말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넘치는 감사기도로 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몇 시간 전에 펼쳐놓았던 해의 이불은 먹물을 뒤집어쓰고 차갑게 식은 해를 숨기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마당에 외등이 켜져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남편은 몇 시간 전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거기 앉아서 게임 중이었다.

나:  저녁 먹었지?

남편:  아니.

나:   왜?

남편:  배가 아직 안고파서.




순간 미사 중 받았던 감사와 평화가 어디로 숨었는지 다른 사람에게로 갔는지 오고간데 없이 사라졌다. 대부분의 오락실 문 앞에 있는 머리를 때려 달라고 쑥쑥 올라오는 두더지 게임처럼 목에 힘을 주며 불쑥불쑥 화가 올라왔다.

게임 속에 빠져 있는 상태인데 배고픔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국을 데우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는데 남편과 한판 붙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1%도 알지 못하는 남편은 ‘2분이면 끝나니까 곧 갈게’라는 소음만 내게 보냈다.

바로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후배의 목소리가 반갑게 내게 안긴다.

후배:  언니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나: 응 잘 지내긴 하는데 지금은 화가 엄청났어.

후배:  왜요?

설명했다. 듣고 있던 후배는

후배:  언니 화나는 거 당연하죠. 저라도 엄청 화났을 것 같아요.

나:  그렇지!!

내편이 하나 생기니까 조금씩 진정이 됐다.

나:  그런데 왜 화가 날까?

후배:  이유야 많죠. 게임도 오래 하고 저녁도 늦었고 , 라고 하면서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맛있게 저녁을 먹는 남편을 보다가 왜 화가 이렇게 심하게 날까 생각해 보았다.

설거지까지 다 끝난 집에 가서 자유시간을 상상하며 온 나에게 전혀 다른 일거리가 생겨서 그럴까?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올라오는 불덩이의 온도가 너무 뜨거웠다. 그럼 무엇일까? 남편의 게임이구나! 게임하는 것이 못마땅한 거구나!

그럼 나는 게임 안 하나? 나에게 물었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게임이나 내가 몇 시간씩 책을 보는 거나 별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몇 시간씩 글을 쓰고 지우고 할 때는 꽤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나와 비슷했다.

그럼 게임하는 일이 내 화의 원인 또한 아니었다.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점심을 거르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던 그 긴 시간, 그 상태에서 몸이 받을 수밖에 없는 피해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상황에 부딪칠 때 화가 나는 이유는 모두 다를 수 있다.

일차적인 화는 이유도 모른 채 일단 일어났다가 싸움으로 이어지거나 상대방의 사과 등으로 끝나곤 한다.




요즘 부쩍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남편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있었는데 ‘저렇게 생활하니까 피곤하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건강에 적신호가 올 수밖에 없다는 상상까지.

왜 그럴까?

병에 걸리면 아프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고 그다음에 오는 이별에 대한 불안이 화의 난로에 장작을 계속 넣고 있었다.

위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불안이 일상을 조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편을 걱정해야 하는데 왜 화가 날까?  어머니는 늘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면서도 난 저런 모습은 닮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임을 하는 남편이 미운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생활과 거리가 먼  행동이 미웠다. 건강한 생활과 식습관을 한다면 오랜 시간 게임을 한다고 해도 전혀 화가 나지 않을 것 같다.

나의 화는 상황만 다를 뿐 친구들, 주변 사람들, 가족들이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미웠던 이유들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날 남편에게 건강을 해치는 모든 행동들을 보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남편이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며 그 부분에서  예민한 당신도 조금은 내려놓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로마의 옥타비아누스에 의한 개혁으로 만든 길이 자료에 따르면 그 옛날 3세기 말에 길이가 무려 8만 5천 km에 이른다고 한다. 로마와 길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나의 화를 따라가다 보면 늘 이별의 불안과 만난다. 오늘 경험한 이 사건으로 화가 올라오는 순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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