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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May 10. 2023

5월 8일

결혼 기념

매월 첫 번째 주일에는 성당에서 미사 후반쯤  그 달 생일인 사람들을 축하하는 작은 행사가 있다.

어제 미사를 거의 마칠 무렵 신부님께서 이달에 생일인 사람 일어나라고 했다. 한 열 명 정도 일어났고 그때 한 남자분이 손을 들었다. 신부님이 그 남자를 가리키자, 저는 이달에 생일은 아니지만 옆에 앉은 여성을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며 우리는 결혼 57주년이 되는 달이라고 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 그 부부도 일어나라고 했다.

서로 인사하며 축하를 나눴고 화면에 띄워진 그들을 위한 축하 기도문을 다 함께 읽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모두 기도를 하고 생일 노래를 불렀다.


미사가 끝나면 성채와 와인을 담았던 잔과 병, 그릇 등을 설거지해서 마른행주로 닦고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데 신부님께서 나의 결혼기념일을 물어보셨다. 5월 8일이라고 했더니 내일이네! 하며 축하한다고 하셨다.

평소에 결혼 57주년 되는 그 부부를 보면 늘 다정하고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모습에 미소가 만들어지곤 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35년을 함께한 나의 결혼생활을 생각해 보았다.

많은 일들이 지나갔고 지금도 지나가고 있다.

늘 오늘만 같기를 기도하지만, 오늘보다 기쁜 날도 있었고 눈물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슬픈 날도 있었다.

언제쯤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들을 그냥 흐르는 냇물처럼 떠나보낼 수 있을지 막연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몇 달 전 큰 산을 하나 넘고 나니 막연했던 마음이 텅 빈 듯한 경험을 했다. 그 빈 마음속에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내 생각이나 감정이 더해지거나 호불호 없이 다 담을 수 있겠다는 강한 에너지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감정과 생각은 내가 아님을 확실히 알면서도 가끔 속아 넘어가는 어이없는 상황이 생겼지만, 지금은 그들이 나를 속이려 할 때 나를 지나 흘러가도록 길을 비켜준다.

35년 동안 나름 도를 닦은 결과일까!


수제 화덕피자로 유명한 호텔로 저녁 식사를 예약했다는 딸의 연락을 받고 약속 시간에 맞추어 남편과 함께 갔다.

이 호텔 규모는 작지만 1865년에 문을 열었다. 현재까지 건축 기간을 포함하면 160년 되었다고 한다.

호주의 역사와 비슷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 이 호텔은 넓은 바를 비롯한 식당에 사람이 항상 많은 편이다. 나름 맛집으로 리뷰도 좋은 편이다.

호텔 안에 걸려있는 호텔 최초의 모습을 보니 160년이라는 세월의 이야기들이 느껴졌다.

스테이크와 피자를 주문하고 남편과 딸은 생맥주를 내 음료는 비밀이라고 하더니 진 & 토닉에 라임을 두 조각이나 넣어서 가져왔다. 만족한 분위기에서 음식도, 음료도 부족함 없이 식사했다.


성당의 부부가 57년을 살아오는 동안 견디어 냈을 시간 또한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160살 된 호텔, 57년을 부부로 살아온 두 사람, 35년을 남편과 함께한 나의 시간이 그들과 비교하면 아주 짧다. 하지만 내 나라를 멀리 두고 호주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나의 이야기도 35년의 곱절은 될듯하다.

함께 한다는 일은 고단함도 아픔도 분노까지 나누는 일이요 기쁨, 감사, 사랑을 가슴속에 심고 싹을 틔워서 잘 키워 가는 일이다.

이 세상 모든 부부들의 삶을 응원하고 존경한다.



한 줄 요약: 누구든 무엇이든 나이가 많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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