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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Dec 04. 2021

눈물 포인트

뭐가 그렇게 좋아!

드라마를 함께 보던 남편은 나의 오열에 당황했다.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 주인공이 암에 걸려 투병하며 서서히 혼자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모습을 담은 드라마였다. 눈물을 꾹꾹 참다가 두통이 심해져 터져 버린 나의 눈물은 오랫동안, 눈이 부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남편은 왜 우냐고 물었고  ‘저 사람이 죽었잖아’ 라며 펑펑 울었던 나.

또 한 번은 영화를 보는데 남녀가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배우들의 슬픈 모습을 보다가 여기저기서 훌쩍거리고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보였다. 안타까운 내용임에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 나.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남편이 “당신이 웬일이야? 항상 배우들보다 먼저 우는 사람이 이번에는 눈물 없이 영화를 보다니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네!”라고 말했다. 

심리학 공부할 때 가장 슬펐던 순간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평소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들이 많다 보니 바로 대답하기 어려웠다. 혼자 있는 시간에 그런 질문들을 나에게 던져보았다. 내가 나에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묻는 질문임에도 대답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며칠을 두고 묻고 또 물으며 나를 여행하다가 노트북이라는 영화를 봤다.

뜨겁게 사랑했던 젊은 시절을 한참 지나온 한 부부. 부인은 치매 요양병원에 있고 남편도 건강상의 이유로 입원했다. 남편의 상태는 입원이 필요 없었지만 아내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녀에게 친절한 한 남자로 다가갔다. 이야기책을 읽어 준다며 그들의 만남부터 일생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남편을 알아보는 순간도 잠깐씩 있었지만 늘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아내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을 보고 누군데 내 방에 들어오냐며 소리 지르고 난동을 부렸다. 강압적인 진정 주사를 맞고 병실로 가는 아내를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던 남편은 지병인 심장에 큰 무리가 왔다. 병원 측은 둘의 만남을 하락하지 않았지만 조금 안정을 찾은 남편은 간호사를 찾아가 아내를 잠깐만 볼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했다. 평소 둘의 사랑을 지켜본 간호사였지만 규정상 둘의 만남을 허락할 수 없었다. 가장 인상적인 대사가 다음에 나오는 간호사의 말이었다. “나는 커피를 타러 아래층에 갈 거야. 그리고 당분간 당신을 보러 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바보 같은 짓 하지 마”라고 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간호사의 책상에는 이미 뜨거운 한 잔의 커피가 놓여 있었다. 간호사가 사라지자 남편은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아내의 방으로 갔다. 아내는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사랑의 기적으로 우리가 함께 떠나게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좁은 침대에 누워서 둘은 손을 잡고 굿나잇 인사를 했다.

다음날 간호사가 아내의 병실에 들어갔다. 둘은 어제의 모습 그대로 손을 꼭 잡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지해 있었다. 여기서 또 터진 나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의 눈물 포인트 아니 가장 슬픈 순간을 보았다.

내가 학교에 간 시간에 어머니는 친가에 있는 아버지가 임종이 임박하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내려가셨다. 어머니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셋이나 되는 딸들이 모두 학교에 간 상황이고 지금처럼 편리한 교통과 통신 수단이 아니었던 그 시절, 우리들까지 챙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없었으리라 생각했다. 아버지는 그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장례를 마치고 유골함에 있는 아버지와 함께 돌아오셨다. 유골은 그때 아버지의 사업장이 있었던 천호동과 우리 집이 있었던 광장동 사이 한강에 뿌렸다. 

준비도 없이 말도 없이 생각해본 적 도 없는 아버지의 죽음,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내면에 있는 그 슬픔은 위로받아본 적도 오열하며 울어본 적도 없이 숨어 있다가 죽음을 만나는 사람이나 장면을 보면 그 슬픔을 건드리는 원인이 되었다. 숨어있던 슬픔과 마주하고 눈물이 마르도록 울고 또 울었다. 이유도 모르고 흘렸던 수많은 눈물들. 

그날 이후 신기하게도 나의 눈물 포인트가 달라졌다. 객관적인 눈물 포인트, 감동을 받거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흐르는 눈물 그리고 오열이 내게서 사라졌다.

충격을 받았거나 억울할 때 ‘그냥 잊어버리자’라고 생각하는 것, 참는 것 등은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서 자신도 모르게 좋지 않은 일들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참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그 순간의 감정을 느끼고 편하게 표현하고 자신을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있는 미움이나 감정들이 상대가 사망하면 끝이며 사라 질 거라 생각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충분한 위로를 받았을 때 비로소 상처의 딱지가 떨어질 수 있다. 

한 상담자는 사망한 아버지에게 심한 학대와 부당한 일들을 많이 당했다. 그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자 “이제 끝났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행복하지도 심지어 늘 괴롭다고 했다.  이제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인데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지 이유를 찾고 싶다고 했다. 상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내린 처방은 꽃 한 묶음 사서 아니 그것도 원하지 않으면 빈손으로 아버지 무덤에 다녀오기였다. 거기서 하고 싶은 말들, 참았던 말들, 감정들 욕이 나오면 욕을 해도 된다고 했다. 처음엔 금방 좋아지진 않았지만 여러 차례 반복한 결과 그는 지금 현재에 머물며 현재를 잘 즐기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자신에게 안무를 자주 묻는 건 식사를 하는 것처럼, 호흡을 하는 것처럼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제인 오늘 기분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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