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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May 19. 2022

유학에서 이민으로

1. 부모로 산다는 것

맞벌이를 하며 아들 딸을 키웠다. 부모가 처음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남들이 보내는 학원, 피아노, 학습지, 과외 다 시켰지만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정리했다.

딸은 알아서 공부도 사교육도 무난하게 잘 따라 줬지만 큰 아들은 달랐다. 학교 끝나면 축구, 자전거, 테니스 등 놀기 바빴고 공부는 학교에서만 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담임선생님께서 면담 요청을 했다.

그때는 거주지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려면 일정 수준의 성적이 필요한데 아들은 거의 턱걸이 수준이라며 거주지보다 먼 거리에 있는 학교로 가야 할 수 도 있다고 했다. 놀기를 좋아하는 아들이라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던 나는 약간 당황도 했고 걱정이 되었지만 과외라도 시작해서 관내 학교에 입학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상의 후 외대 수석 학생부터 고대 장학생 등 과외를 과목별로 시켰지만 선생님들이 아이가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가르칠 수가 없다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모두 그만뒀다.

유명대학은 아니지만 수학을 정말 잘 가르친다는 선생님을 소개받아 과외를 다시 시작했는데 그 선생님과 수업을 시작하면서 공부에 취미가 붙기 시작했다. 조금씩 성적도 오르고 관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수학에 자신감이 생긴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더니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다.

우리는 조건을 제시했다. 유학을 가고 싶으면 우리가 보내줄 수밖에 없는 너의 모습을 결과로 보여달라. 중간고사 성적이 반에서 5등 이 내거나 전교에서 50등 이내에 들면 유학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공부하라고 잔소리 한 번 해본 적 없는 우리는 때가 되면 다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키웠다.

그런데 고등학교 처음 중간고사 성적이 반에서 2등 전교 23등이라는 성적표를 가지고 왔다.

그 시절에는 학교 수업이 8시에 시작해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밤 9시였다. 학교에서 바로 학원으로 학원 수업이 끝나면 11시,  집에 오는 길에 차에서 잠깐 눈 붙이고 집에 도착하면 바로 책상에 앉는다.

우리 아들이 맞나 할 정도로 낯선 모습에 자주 놀라기도 했지만 스스로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처음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눈은 늘 충혈이 되어 있고 방에 들어가 보면 교복도 벗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잤다. 그렇게 3년간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고등학생의 삶을 나도 겪었지만 그 힘든 생활을 하는 자식을 지켜본 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저 정도의 의지라면 유학을 보내도 충분히 적응하리라는 생각을 했고 남편은 유학생활의 가장 안전한 나라를 알아보았다. 지인의 딸이 호주에 유학 중이어서 정보도 많이 받았고 인종차별이나 생활하기에 안전한 쪽으로

조사를 하다가 호주로 결정했다.



유학 1년 차 남편이 아들을 보러 호주를 방문했다. 함께 지낼 때보다 엄청 마른 아들을 보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유학생활 1년 사이에 10kg 정도 체중이 줄었다. 식사를 어떻게 하는지 물었더니 아침은 시리얼, 과일은 항상 식탁에 있지만 거의 먹지 않고 점심은 샌드위치, 저녁은 피자나 치킨 등으로 식사를 하다 보니 본인은 체중이 그렇게 줄어든 것도 잘 모르고 있었다.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있냐고 물었지만 호주에서 공부하는 것이 너무 좋다며 계속 있겠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인 딸도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아들 생활을 보고 온 남편은 딸 혼자 유학을 보낼 수 없으니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같이 호주를 가서 아이들 대학교 들어가면 그때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계획으로 호주로 이민을 왔다.

주변에서 작은 사업이지만 꽤 괜찮은 상태인 사업을 포기하고 이민을 간다는 건 좀 경솔한 거 아니냐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들 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하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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