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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Jul 25. 2022

행복의 유지 시간

뭐가 그렇게 좋아!


미루고 미뤘던 벽난로 유리청소. 가운데 일정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을음이 많이 끼어서 벽난로 안의 예쁜 불꽃이 보이지 않는다. 잔디 깎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깨끗한 벽난로를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청소를 시작한다.

남편이 하는 것을 볼 때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지만 실제로 청소를 해보니 쉽지 않다.  특히 좌우측 아랫부분은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오래전 사다 놓은 벽난로 청소용 약을 스프레이로 뿌리고 닦았더니 조금 지워지는 듯하다가 여전히 두껍게 자리 잡고 있는 그을음은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무엇이든지 궁금하면 물어보는 유*브를 검색했더니 벽난로에 있는 재를 묻혀서 닦으면 청소가 쉽다는 영상이 있다. 종이타월에 물을 적시고 재를 묻힌다음 유리를 닦았더니 신기하게도 잘 지워진다.

여러 방법을 사용해도 완벽하지 않았던 얼룩이 나무의 재를 이용해서 닦자, 깨끗하게 빛나는 유리를 보면서

나의 행복을 찾아가던 여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을음이 심한 유리문과 쌓인 재





행복이라는 감정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허기를 느끼고 간식이나 끼니를 먹어서 채워야 하는 것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점이 되는 내 마음과 닮았다.

마음에 드는 옷을 사면 하루는 행복하고 사고 싶은 물건을 사면 며칠 또 행복하다. 여행을 해도 그 기간이 조금 지나면 도돌이표처럼 다시 그 자리에 있는 감정들. 가끔은 더 다운되기도 한다.

이 벽난로의 청소 방법처럼 제대로 된 원인을 찾아야 했다.

심리상담 중 알게 된 내가 원하는 부모와 많이 달랐던 나의 부모님.

모든 사람들의 인식에는 부모란 결점도 없으며 나를 전적으로 사랑해 주는 자비로운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부모들도 있지만 자식을 학대하고 방치하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인식에 저장된 이미지와 현실의 차이가 클수록 결핍은 생길 수밖에 없다.

나도 모든 사람들처럼 부모로부터 관심과 보호를 받으며 필요할 때 도움도 받을 수 있다는 당연한 욕구가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았고 마음속에 결핍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나의 부모님을 보며 '세상의 부모님들은 다 그렇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내가 원하는 부모의 상을 만들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비교 대상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는 고등학교 일 학년 매일의 점심시간이었다. 나의 도시락 반찬은 아주 흔한 멸치볶음, 진미채, 계란말이 등 마른반찬이었다. 내 주변 가까이 앉는 친구였는데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친구의 도시락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 친구가 도시락을 열면 그녀의 엄마 향기가 흘러나왔다. 나물 반찬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늘 두 세가지 나물반찬에 도도하게 올라앉아 있는 고소한 깨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반찬들이 부럽기만 했다.

친구와 나를 계속 비교하며 뭔가를 원했던 시간.

그런데 나의 문제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상태라서 대화도 불가능하고 해결방법이 없었다.




상담사는 내게 꽃을 사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찾아가라고 했다. 가서 물어보고 싶은 모든 것을 물어보고 만약 꽃을 가져가고 싶지 않으면 그냥 가라고 하면서 욕을 하고 싶으면 욕도 하고 소리 지르고 싶으면 고함도 쳐도 된다고 했다.

소리 지르거나 욕은 하지 않았지만 많은 질문을 했고 그 시간 속에서 적지 않은 나를 꺼내보았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맛있고 정성이 가득한 도시락 반찬이 아니었다. 그냥 따뜻한 사랑을 매일매일 확인받고 싶었지만 보호받고 있다는 온기가 아니라 다음 기회에 라는 무관심의 서늘함이었다.

그 서늘함이 더해지고 더해진 냉기가 내 행복의 문을 차갑고 두껍게 막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호주 점심시간은 학생이나 성인 모두 30분밖에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짧다 보니 대부분 도시락을 준비한다. 일 평균 4개의 도시락을 주 6일 준비해야 하는 나로서는 힘도 들지만 나의 트라우마가 가미된 도시락에는 사랑과 정성이 넘친다.

하지만 넘치는 정성이 상대방에게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 가끔 힘들 때는 도시락 없는 날도 만들어 볼 생각이다.

행복도 좋은 생각도 습관이라는 심리학에서의 말은 그저 지식에 불과했다. 무작정 습관을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나를 드려다 보며 혼자 꺼내보기, 힘들 때는 상담사와 함께 하나하나 들추어 보기를...




벽난로 유리청소처럼 원인을 제공한 대상을 찾아 해결하고 보니 마음속이 깨끗해진 느낌이다. 언제 다시 그을음이 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원인을 찾는 일부터 할 것이다.

벽난로 그을음의 원인은 나무였고 나무의 재로 닦았을 때 그 그을음이 가장 완벽하게 사라진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유리가 맑고 투명해서 거실을 비춘 모습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원인을 제대로 찾아서 하나하나 대화와 위로, 이해가 지나간 나의 마음에서 피어난 행복은 그 어느 때보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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