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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역량을 인정하지 않는 오지랖질

도움과 간섭의 경계에 선 오지랖의 모호한 정의

by 김지혜

프랜차이즈 떡뽂이 점에 신메뉴인 마라 소스가 나왔다며 아이들은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딸아이는 친구들과 많이 와봤는지 어디서 무엇을 가져와야 하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난 가져오는 것들을 그냥 끓이기만 했다. 이 떡볶이 집은 떡볶이 재료들을 취향대로 가져오고 떡볶이 소스도 마라, 매운 소스, 크림소스, 짜장 소스 여러 가지 있어 골라서 먹을 수 있다. 그러고 나서 후식으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일정 금액으로 여러 가지를 먹고 싶은 아이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대부분의 손님은 청소년들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4명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아직 아기 같은 목소리로 "4명이에요"라고 하고 자리를 안내받는다.

우리 바로 뒷자리에 앉게 된 아이들은 재잘재잘 흥분된 모습이다.

레고 박스를 자리 옆에 둔 한 친구를 보니 아무래도 오늘 생일인 친구이고 생일 축하 겸 엄카(엄마카드)로 친구들에게 한턱을 쏘는 분위기다.

3명의 아이들은 떡볶이 재료를 가지러 우르르 몰려 갔다. 재료들 앞에서 무엇을 담을지 이야기를 나눈다.

“이거 먹을까?” “엉, 아니 아니 이거 말고 저거, 좀 더 얇은 떡볶이로 먹자. 이건 좀 더 담자.”

그러고 나서 떡볶이 재료들을 수북이 담는다.

나머지 한 친구는 떡볶이 소스들을 담고 있었다. 소스가 놓인 선반보다 아주 약간 더 키가 큰 정도의 아이는 국자로 소스를 퍼서 담는 모습이 버거워 보인다.

자리로 돌아온 아이들은 튀김 그릇을 가지고 또다시 우르르 몰려가 또다시 의견을 나눈고, 여러 가지 튀김을 가져왔다.

이미 충분히 배불리 먹고, 후식을 먹으며 귀여운 손님들을 구경하는 건 흐뭇한 일이었다.

귀염둥이 손님들은 모든 재료 준비가 완료되자. 불을 켜고 끓이기 시작한다. 불이 켜지니 약간의 걱정이 몰려온다. 아이들이 담아 온 재료들에 야채가 하나도 없다. 어른과 함께 온 게 아니니 아이들 마음대로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수 있는 기회였다. 이미 와본 적 있는 아이는 라면은 나중에 넣어야 한다며 끓기를 기다린다.

자리에 비치된 국자로 조리를 하니 힘이 드는지 “집게가 없나?” 라며 불편해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집게를 찾지 못하고 국자로 조금씩 넣으면 뜨거운 국물이 튀지 않게 주의하는 모습이었다.

익어가는 떡볶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사실 집게는 소스통 바로 위에 있는데 아이들의 눈높이보다 조금 높았다.

아이들은 소스만 담아 오고 집게를 보지 못했다.

나는 “집게 저기 있는데 갖다 줘야겠다”며 일어나자 두 딸아이가 동시에 나의 팔을 끌어당긴다.

“엄마 제발” 그 뒷말은 안 들어도 안다. ‘엄마 제발 오지랖 떨지 말아 줘’

나는 어른 한 명 없이 온 아이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집게를 가져다줄까 하는데 그걸 왜 막는 거지?

그건 아이들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좋은 일인데 왜 못하게 하는 걸까?

결국 난 아이들의 만류로 집게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집게가 없어서 불편해 보이긴 했지만 "하하 헤헤" 웃으며 떡볶이가 익어가고 그것을 먹는 아이들은 신나고 행복해 보였다.

집게는 그들만의 행복한 저녁 만찬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집게를 가져다주는 게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걸까?

작은 선행이라고 여겨지는데 왜 두 딸아이는 나를 막은 걸까?

딸아이들의 설명은 이러했다.

어른들을 따라 식당에 온 게 아니라 친구들끼리 이렇게 식당에 온다는 것,

그들이게 이 순간은 상당히 긴장되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한다.

어른들의 도움 없이 이곳에 와서 음식을 시키고 만들어 먹는다는 건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그들에겐 엄청난 도전이다.

그 도전을 오롯이 누리고 어려움과 두려움을 극복하면 정말 뿌듯해진다.

두 딸아이가 모두 초등학교였을 때 난 생각 보다 일이 늦어져 밥을 챙겨줄 수 없었다. "카드 들고 가서 집 앞 김밥집에서 먹고 계산하고 와"라고 전화를 한 뒤, 퇴근해 보니 두 아이는 내가 시킨 데로 분식점에서 저녁을 사 먹은 적이 있었다.

나의 지나친 오지랖을 이해시키기 위해 아이들은 당시 기억들을 소환했다.

처음으로 어른 없이 자기들끼리 분식점에 가서 음식을 시키고 먹고 계산까지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두렵고, 긴장되지만 배는 고프고, 엄마가 늦는다고 하니, 첫째는 동생과 용기를 내서 분식집에 갔다. 그리고 밥을 먹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너무나 뿌듯했다고 한다.

둘째도 엄마 없이 언니와 무언가 사 먹었다는 것에 기분이 들떠 있었던 기억을 한참이나 설명한다.


어른 도움 없이 떡볶이를 먹으로 온, 손님들의 성취감을 오지랖 넓은 엄마가 망치면 안된다고 했다.

누군가 도와주었다는 것은 “집게가 없네”는 자기들의 말을 듣거나 관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른이 자기들을 케어하고 보살피고 있었다는 느낌을 주게 되어 이를 알아차리게 되면 지금의 기분을 망칠 수 있다.


아이들이 나를 막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옆 테이블의 귀한 손님들의 경험을 망칠 뻔했다.

나 스스로는 도움이라고 이름 붙인 원하지 않은 조언과 도움.

불편함이 주는 어려움은 눈에 보이고 쉽게 알아차렸는데, 그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 성취하고 그래서 더 행복해질 누군가의 마음은 왜 읽지 못할까?

오늘 아이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어린 손님들의 행복한 저녁 경험을 망칠 뻔했다.


우린 모두 각자 어느 정도의 능력과 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 그 역량을 발휘하고 싶어 한다.

그 역량과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나는 인내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꼰대같이 행동한다.

지나친 배려는 누군가의 역량을 인정하지 않는 행동일 수 있다.

나의 행동에 친절과 배려라고 이름 붙이기 전에 타인이 가질 경험과 기회를 더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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