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쇼핑의 효과; 정체성 착각
나는 학습의 목표는 무엇인가? 지적 허영심인가 성장을 위한 것인가!
더글라스 B. 홀트의 저서 [브랜드는 어떻게 아이콘이 되었는가]에서 소비자들이 어떤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재미와 의미’ 그리고 이 브랜드를 통해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자신의 ‘정체성’ 이 뚜렷하다면 그 브랜드에 열광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자전거를 사고, 싸이클링을 통해 더 건강한 나를 지향하고, 꾸준한 나의 운동으로 나는 스스로를 관리하고 건강한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에 딱 맞는 자전거 브랜드를 구매할 한다.
누군가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내가 가진 무엇, 자전거로 표현하고 누군가는 어떠한 행위,자전거를 열심히 타는 나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무엇을 하고 있는 나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바로 학습이다.
가족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지내온 중년의 여성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는 아직도 벅찬 많은 책임을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잊어가는 나의 정체성을 붙잡고 싶고, 잊어버린 정체성을 찾고자 애쓴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가, 나는 무엇을 잘하던 사람이었나? 이를 찾기 위해 많은 중년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학습한다.
학습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싶은 나의 욕구를 가장 쉽게 채워주는 방법이다. 학습은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고 그 지식을 통해 또 다른 도전의 기회가 생기고, 그 기회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과정은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바람직한 정체성 확립의 과정이다.
이러한 니즈에 맞추어 소비되는 것이 수많은 학습 사이트이다.
[브랜드는 어떻게 아이콘이 되는가]에서는 소비자들은 아이코닉 브랜드를 현실 문제나 갈등에 대한 상징적인 진정제로 사용한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부담을 덜기 위해 제품을 사용할 때 그 제품이 상징하는 신화를 활용한다.
이와 유사하게 학습을 통한 정체성 정의로 보자면, 학습을 통해 전문가의 지식과 내용을 습득하는 것으로 그 전문가의 정체성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드러내게 된다.
나 또한 학습을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소비자 중 하나다. 처음에는 두 아이의 육아로 경력 단절 기간 중, 다시 사회에 나오고 싶은 나의 바람을 이룰 수 없는 현실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육아하는 엄마로서는 찾기 힘들었다. 특히 육아하는 엄마를 훌륭한 정체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는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이전에 통역일을 하고 해외에서 근무를 하던 나는 누구엄마로서의 나로 인식되는 나에게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게 육아하며 영어공부를 하는 엄마들을 모았다. 키즈카페에서 아이를 업고 영어 교재로 학습하는 모임을 운영했다. 하지만 아이의 이유식을 먹이고, 업고 서서 흘들며 재우고, 울거나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신경 쓰느라 대부분의 엄마들은 학습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첫 모임의 뿌듯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몇 분의 시간을 나를 위해 썼고, 그런 내가 바로 나의 정체성이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아이 육아로 5년간의 경력 단절 이후에 내가 기어이 다시 사회에 나와 통역사로 다시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정체성을 나 스스로 인정할 만큼 만들어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습을 지속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기를 꿈꾸며 도전을 거듭하는 경우도 많지만 학습 그 자체로 머무르는 경우도 흔하다.
학습을 쇼핑처럼 즐기는 경우다. 학습하는 내가 바로 나의 정체성이 되고 배움은 취미에 가깝다.
이렇게 학습 자체만을 누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소비자들은 그 학습이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성장을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연결되기를 원한다. 학습에 훨씬 더 큰돈을 쓰고, 그 학습의 효과를 검증하고 적용하는 기회에 훨씬 더 작은 돈을 받는다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즉 특정 기술을 배우는 학습에 100만 원을 쓰고 이후 실제 필드에서 그 학습을 활용한 일에 10만 원을 받아도 많은 중년의 여성들은 학습에 투자하고 기회에 뛰어든다.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학습해야 하는 프리랜서 통역사라는 일은 학습으로 정체성을 가지는 나에게 참으로 잘 맞는 일이다.
문제는 통역이라는 일이 언제나 전문가와 함께 하기에 가끔 그 전문가의 말을 통해 나오는 메시지가 나의 정체성이라 착각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태를 난 지적 허영심의 상태라 부른다. 데이터에 불과한 내용을 지식이라 착각하며 전문가의 정체성을 나라고 착각하는 상황이다.
어느 날 내가 함께 일한 자동차 데이터 전문가와의 업무로 전문가의 전문적 지식을 아주 조금 알게 된다. 이 외국 전문가의 지식을 듣기 위해 한국인 전문가들이 또 몰려든다.
나는 그 중요한 정보를 통역하고 전달하고 양측의 정보를 습득한다. 이런 나의 상태는 그 산업 밖에서는 누구보다 특별한 지식을 가진 이가 된 것처럼 착각한다. 그 정보의 접근성이 없는 이들 앞에서 나의 단편적인 데이터로 그 외국인 전문가의 정체성인양 착각한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한국의 편의점 산업 전문가를 통역하고 나면 편의점 산업에 상당히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된다. 즉 일반인들보다 더 많은 편의점 산업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난 편의점 사업을 하지 않는다. 그 분야에 있지도 않고 그냥 편의점 이용객일 뿐이다. 그냥 내 머릿속에 있는 데이터일 뿐이지 어떤 지식으로도 활용되지 않는다.
우리가 학습하는 많은 지식들도 이렇게 그냥 우리의 머릿속에 머물러 있거나 그냥 지나가는 데이터에 불과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 지식의 전달 과정에서 우리는 전문가의 정체성에 머물게 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착각한다.
난 그 착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하지만 쉽지 않다.
난 여전히 학습한다. 일을 통해서, 일 외의 여러 모임이나 사이트를 통해서 학습을 지속한다. 과연 이 학습은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비현실적인 정체성의 착각일까 아니면 실현 가능한 이상적 정체성을 위한 나의 단계적 학습과정인가. 오늘도 스 착각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정의 하고자 애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