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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Dec 24. 2023

AI는 사람을 대체하지 않는다.

AI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대체할 것이다.

광주 출장을 다녀오며 역에서 내려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앱으로 목적지를 입력하고, 자동 결제로 하면 택시를 타도 기사님과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 정말 피곤할 때는 타자 마자 눈을 감는다. 혹시나 기사님이 말을 시켜 나 또한 입이 터지면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택시 기사님의 이야기들은 흥미롭다. 세상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현실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다. 

기사님에게 앱으로 콜 하여 타는 고객과 길에서 택시를 잡아서 타는 고객의 비율을 물었다. 거의 90%가 앱을 통한 콜 고객이라고 한다. 

콜을 받는 기사님 입장에서 앱의 기능과 경험을 집까지 오는 내내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콜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서, 고객의 위치와 목적지의 대략적인 정보만으로 수락하게 되어있어, 고객을 골라 받기 힘들다고 한다. 다른 기계를 추가해 골라서 콜을 수락하는 꼼수를 쓰는 기사님들도 있다고 한다. 또한 그 기계는 어떤 앱을 추가하는 디바이스를 붙이는 건데 비싸서 일부 택시 기사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님은 화가이고 생계로 식당을 하다가 3개월 전부터 택시를 시작한 신입 기사님이셨다.

택시 콜을 받으며, 손님을 찾아가는 길, 목적지까지 가는 길, 이모두가 앱을 통해서 나오게 되고, 가장 가까운 곳의 택시에 콜이 먼저 뜨고, 나처럼 수원이 목적지인데 화성에서 콜을 하면 인근 수원택시에게 먼저 콜이 뜬다는 것이다. 화성에서 수원택시를 타니 예상보다 5천 원이나 요금도 적게 나왔다.

기사님이 택시 운전을 시작하고 3개월간 가진 경험(UX)은 이렇다.  콜이 오면 앱이 알려주고 지도상의 내비게이션을 따라 손님을 태우고 손님을 태웠다는 버튼을 누르면, 다시 앱은 손님이 가야 할 목적지의 경로를 표시하고 그 길을 따라 운전만 하면 된다. 그리고 고객이 내리고 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자동결제가 되는 시스템이다. 결제된 금액은 알아서 회사 시스템과 연동되고 본인의 수입이 책정되는 자동화 시스템이다.

이런 데이터 기반, 최적화 서비스 시스템 상에서 기사님이 하는 건 운전밖에 없다. 기사님을 스스로를 운전만 해주는 노동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어릴 적 택시는 내가 사는 도시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우리 기사님이 동네 외에는 지리를 알기도 힘들었고, 길을 잘 아는 기사님,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아는 기사님이 인기도 많고 수입도 많았다. 

이제는 0.1초라도 빠르면 바로 다른 길을 안내해 주는 기술이 있고, 더 이상 기사님은 길을 외우지도, 지름길을 찾아내지 않아도 된다. 그 중요했던 부가가치의 기능들은 이제 필요 없는 기능이 되어 버렸다. 

기사님의 말처럼 운전이라는 기능만 수행하면 되는 노동자라는 말은 충분히 공감된다. 현재 열심히 개발 중인 자율 주행차만 상용화된다면 결국 사라질 직업군이다. 

현재의 기술과 제도가 아직 자율 주행 자동차의 완성도를 더 요구하지만 머지않아 그런 세상이 온다는 건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손자손녀에게 택시에서 기사님과 대화를 하며 목적지까지 갔었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 것이다.   

사라지는 직업 리스트에 항상 등장하는 것도 바로 통. 번역사이다.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때 해외에 이메일을 영문화해서 보내주거나, 영문 이메일을 한글로 번역해서 보내주는 일을 짬짬이 했었다. 

하지만 현재, 이런 일을 요청하는 고객들은 거의 사라졌다.

물론 지금도 번역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번역기를 사용할 경우, 정확한 이해가 어려운 문장일 경우나 까다로운 내용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chatGPT나 번역기로 충분히 번역이 가능한 내용의 메일을 보내는 고객에게는 번역 기능 사용을 권하고 사용법을 알려드린다. 고객들이 정보를 모르거나, 사용법을 몰라 그 기능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번역기를 사용해 봤는데 잘 안 돼요”라고 하는 건 분명 원문에 무언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주어나 목적어 없이도 문장이 되는 한국어는 더욱이 불완전한 문장으로 번역기를 돌리면 이상한 번역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주어/목적어를 넣으세요.’ 등 최상의 번역이 나오기 위해 한글 문장 다듬는 법을 알려드리기도 한다. 그런 팁을 알려드리고 나면 그 업체와의 거래는 사라지고, 아이 간식, 외식 비용 정도의 수입은 사라진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다.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못 보고 있는 분들에게 알려드리고,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택시 기사님이 지금의 운전이 노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야 거기에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얼마 전, 정말 까다로운 계약서의 일부 번역을 요청받았다. 한 개의 문장이 거의 6줄 이상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만 보낸 걸 보면 번역기로 이해되는 부분은 그냥 두고, 번역기로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만 나에게 요청한 것이 분명하다.

7장의 번역을 하루 만에 해달라는 일을 오케이 하며 받았다. 종일 다른 일정이 있었지만 저녁에 집에 가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저녁 10시부터 작업하여 3시간 정도에 7장을 마무리했다. 계약서는 아무리 빨라도 1시간에 1장 정도가 가능하고 까다롭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는 계약서를 확인하지 않고도 일을 마치고 저녁에 시작해도 다음날 완료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 이유는 ChatGPT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초벌 번역을 ChatGPT로 하고 번역된 내용을 다시 검토,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했더니 1장에 1시간 이상 걸리던 계약서의 번역 7장이 3 시간 만에 완료할 수 있었다. 

사라질 직업군의 일을 한다는 건, 두려운 일이고, 우울한 현실이다. 지금 내 세대에서는 지속할 수 있는 수입원이라면 지속하고 싶다. 하지만 그곳에 그대로 머문다면 나의 노동과 에너지를 동일하게 오롯이 소요해야 한다.  번역하는 친구들에게 번역을 빨리 하는 방법으로 이 번역 방법을 권해봤지만 마치 전통을 무시한 반칙인양 받아들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현실에 눈을 가린다면, 기술을 이용하지 않는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지속하는 수밖에 없다. 

AI는 사람을 대체하지 않는다. 

AI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대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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