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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Feb 24. 2024

통역을 시원하게 말아먹은 날

어느 하나 잘하는 게 없는 나라고 여겨지는 순간

정말 오래간 만에 새로운 고객의 통역을 맡았다. 자료를 자세하게 주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의 통역은 거뜬해 해 오던 일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최근에는 기존 고객만 계속 지원해 왔었다. 정말 오래간 만에 새로운 고객의 일을 받았는데 그냥 기존 고객처럼 준비했더니 결국 망쳐 버렸다.

고객은 “자료를 못 드려서 많이 당황했죠”라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 고객의 반응은 더욱더 나를 미안하게 만든다.

여러 가지 이유를 떠나 프리랜서는 그냥 잘 해내야 한다. 내가 한다고 한 이상,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아웃풋을 내야 하는 게 프리랜서 일꾼의 의무이고, 돈 받는 값을 하는 것이다. 이 일도 기존에 알던 고객이 다른 회사로 옮긴 후 처음 요청받은 건이다. 내가 예전처럼 그렇게 해 낼 것이라 믿어서 나를 부른 것이다.

헤어질 때 ‘자주 봅시다’라며 건네는 그 고객의 인사는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10년 이상 함께 하는 고객들과 일을 해오며, 새로운 고객을 만날 때, 통역 준비의 감을 잃은 듯하다.

너무 속상하고, 부끄럽고, 미안한데 이런 기분 조차 예전 같지 않다.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는 순간까지 정말 미치도록 내가 미웠는데 광역버스에서 한판 자고 집 앞에 내릴 때쯤에서는 또, 그 속상함이 훅 줄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몇 개월씩 이불킥을 해야 할 일인데 말이다. 심각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나에게 ‘정신 못 차리고 있구나’ 라며 자꾸만 다시 반성하려 나의 실수를 끄집어내 본다.


업종 전환을 하게 되며 통역 외의 일들이 60%를 넘어갔다. 강의를 하고 워크숍과 해외 프로젝트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오며 그래도 통역일은 꾸준히 해야지라고 쉽게 생각했다. 새로운 고객은 준비시간과 스터디 시간이 많이 드니까 기존 고객 위주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 생각에 속아 넘어진 꼴이다. 통역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닌데 말이다.


기존 고객의 일을 지원한다는 것은 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직원처럼. 업무의 흐름과 내용에 이미 익숙하다는 것이다. 대충 이야기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먹고, 회의 중 빠진 내용도 내가 보충해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신규 고객은 경력직으로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첫날 같은 느낌이다.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파악할 것이고, 없다면 시간이 걸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업체에 통역하러 가더라도, 회사 들어갈 때부터 수집할 수 있는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여 파악했었다. 회사 소개서를 주지 않는 고객은, 회사 웹사이트로, 입구를 들어서면 문에 걸려 있는 부서명으로, 받은 명함으로, 회의 어젠다로, 공지에 붙어 있는 메모들로, 그 무엇이든 정보로 빠르게 스캔해서 파악했었다. 회의가 시작되면 처음에는 내용을 따라잡지 못하더라도 이 회의가 싸우는 건지, 잘해보자는 건지, 원래 갈등이 있었던 건지, 서로 설명을 미루는 건지, 정작 앉아 있는 저 담당자는 실세인지, 최대한 빠르게  상황 파악하여 회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도록 통역을 이어 나가야 한다. 겨우 몇 시간 계약되어 갔는데, 몇 시간을 헤맬 수는 없다.

 

근데 그런 감각이 다 내게서 사라진 기분이다. 긴장도 하지 않았고, 준비도 충분하지 않았다. 뭘 준비했어야 하는지도 놓쳤었다. 오늘 통역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나서야 내가 그랬었지, 하면서 모든 게 다시 떠올랐다. 그런 감을 잊어버린 채 맹순이처럼 매일 출근하던 회사에 가듯 일하러 간 것이다.


강의는 창의력과 공감 능력이 요구된다. 통역은 이해력과 정확도가 요구된다. 강의 콘텐츠를 만들 때면 파해치고 분석하고 다시 재해석해서 창조해야 한다면 통역은 상상을 죽이고, 최대한 화자의 의도에 맞는 정확함에 집중해야 한다. 그게 맞고 틀리고는 내가 판단하지 않는다. 이 둘은 상반된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 무엇이든 내게는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되고 결국 한 가지를 더 하게 되면 다른 한 가지의 품질에는 영향을 주게 된다.  

무언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분야의 능력을 잃어가는 나를 마주하는 게 괴롭다. 그럼에도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놓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금도 난 그 중간 어디쯤에서 허우적 거린다. 통역도 강의도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한 날은 어느 하나 잘하는 게 없는 나를 마주해야 해서 너무 힘들다.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이상 그곳에서 마주하는 낯선 상황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다. 가끔 마주하는 기존의 길도 낯설 때면 난 그 어느 길도 내 길이 아닌 거 같다. 그럴 때면 다시금 방황하고 돌아갈까 고민하기도 한다.   


나는 통역일을 정말 좋아했었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도전들도, 힘겨웠지만 좋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강의 또한 너무 재밌고, 그 도전이 힘겹지만 좋다.


오늘 다시 한없이 흔들리는 나를 마주하며

예전에 잘했던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을 것은 좀 내려놓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한 걸음 한걸음 돌아보지 않고 가도록 인내하자.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하는 길을 걸어가자.

  

오늘의 못난 나를 마주한 이 글을, 미래 어느 날 미소 지으며 읽고 있을 나를 상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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