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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미나 영어 프레젠테이션

청중의 시선을 분산하지 않게 잡아 두는 방법

by 김지혜

이제는 통역보다 강의나 워크숍을 진행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새로운 고객 발굴을 하지 않으니 기존에 하던 고객은 대부분 10년을 넘은 고객이다.

내가 일하는 한 고객의 경우 매 분기별로 아시아 디렉터에게 한국 시장 매출현황과 향후 계획 브리핑 통역을 지원한다. 이 회사는 미국 제품의 한국 대리점으로 매년 아시아 지사에서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여해야 한다.

아시아의 특정 국가에서 진행되는 이 세미나에 사장님과 함께 매년 참석하기 위해 출장을 간다. 고객을 대신하여 고객과 같이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지원한다.


첫 번째 발표를 할 당시에는 발표자료 내용을 숙지하려고 읽고 또 읽었다.

오랫동안 지원한 고객이지만 내가 계속 근무하는 곳이 아닌, 몇 달에 한번 정도 만나서 통역을 하다 보니 직원만큼 내용을 속속들이 알기가 어렵다.


직원처럼 발표하기 위해 내가 취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고객이 PPT 자료를 주면 자료를 검토하고 질문들을 정리해서 사장님께 답변을 요청한다.

2. 현장에서 나올 수 있는 예상 질문을 확인한다.

3. 고객이 특히 강조하고 싶은 내용과 요소를 확인한다.


처음 고객사를 대표하여 영어로 발표를 진행할 당시 의료 관련 어려운 용어들을 틀리지 않으려 애쓰며 발표 자료의 내용들을 쳐내기에 바빴다. 누군가 질문을 할까 봐도 두려웠다. 그 질문에 내가 답을 못하거나, 사장님에게 답변을 요청해서 나의 고객이 영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도 싫었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하시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이 복잡하면 분명 통역을 원하실 것인데 그런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나의 고객을 다르게 보는 것도 싫었다. 언제나 30분 컷으로 국가별 빽빽한 스케줄로 이루어지는 세미나다. 질문 대응에 통역이 들어가 버리면 시간을 더 소요하게 된다. 시간 소요에 대한 압박감 또한 상당했다.


매년 세미나에서 발표를 진행하며 제품의 모델명도 익히고, 신제품에 대한 설명도 듣게 되면서 제품 모델이나 이름에 대해서는 좀 더 편해졌다. 여러 번 경험이 쌓이면서 스크립트를 외우듯이 진행하기보다는 중요 핵심 포인트가 무엇인지 파악하면서 발표 중 속도를 조절한다. 앞에 듣고 있는 사람들도 점점 많이 보이고 눈 맞춤도 조금씩 자연스러워진다.

한 해는 2일간에 걸쳐 20개가 넘는 국가별 대리점 발표 순서에서 전체 국가 중 마지막 순서로 예정되어 있었다. 모두들 하루 종일 발표를 듣고, 질문을 하는 세션이 이어지며 오후가 되면 집중력 흐려진다.

발표 내용은 모든 국가가 동일하다. 본사에서 준 발표 자료 양식에 따라 정보를 입력하여 제출한다.

기본적인 회사 연역과 자국의 시장현황(SWOT), 매출 추이, 주요 고객, 경쟁 상황, 주요 마케팅 방법과 성공 및 실패 사례, 그리고 1년 간의 매출 목표 금액으로 마무리된다.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진 발표는 지루해지기 쉽다. 저녁 식사 직전 마지막 세션 발표라는 건 거의 듣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발표전 대표님에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지 다시 확인했다. 이것만은 꼭 알아줬으면 하는 게 무엇인지 물었다.

회사 소개는 이미 알고 있는 청중이 많으니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고 필요하다면 저녁 먹으며 추가 인사를 나누자고 했다. 한국 시장과 한국 고객의 특수성을 설명하고, 대표님이 강조한, 한국 판매에 있어서 도전과제를 설명하고 올 매출 목표를 발표하였다.

사람들이 딴생각을 못하게 아주 빠르게 발표를 진행하였다. 마지막 페이지인 매출 목표 나오자 사람들은 발표가 끝났다는 생각에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그 틈에 다시 한번 한국 시장의 더 큰 성장을 위해 필요한 본사의 지원 부분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잘 부탁한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약간의 웃음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저녁을 먹으며 미국 본사에서 온 이사님은 발표가 아주 간결하고 인상적이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몇 년간의 발표 후 다른 국가의 발표를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시아 시장의 유사성일 수도 있는 관계 중심의 비즈니스 형태와 도전 과제들, 국가별 특수한 전략과 해결 방법들을 들어야 더 임팩트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다.

준비해 온 자료를 기반으로 스크립트를 읽듯 외워서 하는 것은 하루 종일 여러 국가의 발표를 듣고 있는 입장에서는 지루하다. 다른 국가의 발표를 열심히 들어야 한국 시장의 특수성과 다른 시장과의 유사성을 빠르게 파악해야 어떤 점을 강조하고, 어떤 점을 빠르게 넘어가야 할지 파악할 수 있다. 발표를 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경청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시아 권의 유사점에서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공감하듯, 이전의 발표 국가와 연계하여 발표한다.

예를 들어, “한국도 홍콩과 같이 고객을 만나기 위해서는 00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In Korea, as in Hong Kong, we need to go through 0000 to meet with customers.” 이렇게 언급하며 그 담당자와 눈을 맞추면 자연스럽게 그 담당자는 나의 발표에 몰입하게 되고 딴짓을 못한다. 그 사람의 이름을 알면 더 효과적이다.


"제임스가 필리핀은 판매 채널은 00이라고 했는데 이와 다르게 한국은 이 채널의 효과가 없다."(James said, the sales channel in the Philippines is 000], but it is not effective in Korea.)와 같이 다른 점을 이야기할 때도 차이가 나는 국가를 언급하면, 청중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

이렇게 청중과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 다른 청중들도 언제 자기 이름이 불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집중하게 된다.


다른 발표자의 내용을 들으면 한국 시장의 특수성과 다른 시장과의 유사성을 빠르게 파악해야 어떤 점을 강조하고, 어떤 점을 빠르게 넘어가야 할지 알 수 있게 되고 내용을 기억하여 관련 청중과 상호작용을 하며 발표를 이어갈 수 있다.


이번에는 대만에서 13개 국가의 지역 대리점 발표를 진행하였다.

발표를 들으며, 집중하기 힘들었던 발표 요소들을 분석해 보자면,


1. 다른 국가와 별 차이 없는 영업 활동을 장황하게 설명

첫 번째나 두 번째 발표자가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발표를 이미 많이 들은 후 발표 순서라면 앞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느낌의 내용은 간략하게 넘어가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영업을 얼마나 열심히 했고, 그것을 인정받고자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영업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듣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매출이 얼마인데?”라는 의문을 갖는다. 영업의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그럼에도 이어 나가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좋지만 이 부분이 너무 길어지면 매출 목표와 연결되어 실망감을 주게 된다.

그렇게 하는데 ‘매출 목표가 겨우 저 정도?’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구체적으로 설명했던 매출 활동이 진짜 그렇게 하는 거 맞아?라는 생각을 일으켜 신뢰감을 떨어뜨린다.

특히나 영업 인력이 발표를 하는 경우 실수하기 쉬운 부분이다. 신뢰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영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다는 판매 활동에 있어서 특수성으로 설명해야 한다. 영업 활동에 있어서 관계가 중요하고, 그 관계는 어떻게 형성하며, 어떤 방법을 통한 영업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 효과가 없었는지를 알려주면 국가의 특수성으로 이해하게 된다.


2.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에 빡빡하게 내용을 포함

내용이 많으면 그것을 읽기 위해 발표자의 말에 집중할 수 없다. 그럼 읽지 말고 들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시각적 효과는 크다. 이미 글자가 보이면 읽게 된고 멈추기 힘들다.

PPT 발표 자료에 중요 단어들을 굵게 표시하거나, 다른 색상으로 표시했다면 사람들의 시선은 굵게 표시되거나 다른 색상의 글자에 집중하여 문장 전체를 읽지 않는 효과가 있다. 눈이 글자 맨 처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눈에 띄는 단어에서 멈추게 된다. 이후 나의 발표를 들으며 그 강조한 단어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이런 강조된 색상이나 굵게 표시를 한 단어는 발표자에게도 좋다. 키워드를 쉽게 볼 수 있어 어떤 내용을 설명해야 하는지 스크립트를 보지 않아도 내용을 충분히 숙제했다면 빠르게 설명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발표 자료 양식(templete)을 받으면 거기에 충실하게 작성하게 된다. 하지만 한 페이지에 넣을 내용을 쪼개서 몇 페이지를 만들어도 상관없는 상황이라면 한 페이지의 내용을 줄이고 페이지를 늘려야 가독성이 높아진다.


3. 매출 관련 자료에 엑셀표를 캡처해서 가져온 경우

최악의 발표 내용처럼 느껴졌다. 엑셀의 매출을 읽고, 년도를 보고, 시선을 올라갔나 내려갔다 해가며 파악해야 하기에 청중의 브레인은 바쁘다. 지치면 그것도 안 하게 된다.

조금의 노력만 보태면 년간 매출은 막대그래프나 선그래프로 쉽게 만들 수 있다. 발표자료의 이미지 시각화는 청중의 집중력을 흐리지 않게 하고, 그들의 생각의 에너지 소모를 줄여준다.

엑셀 자료를 그대로 캡처하여 PPT에 넣은 이유를 생각해 봤다. 제품별 세분화된 매출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제품의 종류도 여러 가지고, 각 제품별 매출 추이도 다르고, 이를 통해 전체 매출과의 연관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본인이 설명하기 쉽도록 자기가 관리하던 자료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청중보다는 발표자 중심적 사고에서 준비했다고 할 수 있다.

연간 매출은 막대나 선그래프로 추이를 보여주고 연도별 제품군별 비율과 매출은 파이 그래프로 표시해 주면 된다. 제품별 판매율이 연간 달라졌다면 제품군별 막대그래프로 만들어줘도 되고, 파이크래프의 크기 차이로 연락 매출 추이를 보여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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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발표의 요소

인도네시아 대리점의 마케팅의 두 가지 사례였다.


첫 번째는 인도네시아에서는 K 드라마가 인기라고 한다. 고객층의 연령대가 낮을수록 K 드라마에 관심이 많고 SNS 나 유튜브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고객을 상대로 한국의 드라마를 뒤져 관련 제품이나 유사한 제품이 나오는 부분을 홍보에 활용하였다.


두 번째는 이벤트 진행이다. 진지하기만 한 학회에서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제품의 특징은 가격은 좀 비싸지만 사용의 편리성과 품질이었다. 사용의 편리성을 느끼게 하기 위해 현장에서 빠르게 테스트를 하게 하고, 속도에 따라 이벤트 참여자들에게 상품을 주었다. 다른 부스나 학회에서 진행되는 세미나 팀에게 민원이 들어올 만큼 사람들은 떠들썩하게 이벤트에 참여하고 사진을 찍고, 흥분한다고 한다.


이런 구체적인 마케팅 사례는 청중에게 질문을 유도하고,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발표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인 What’s in it for me?(그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는데?)) 를 채워주는 것이다.

같은 사업을 하더라도 나와 크게 상관없거나 지루한 이야기, 자기 자랑처럼 늘어놓는 이야기는 흥미를 끌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요소, 우리만의 특수성, 청중과의 유사성을 통해 그들의 관심의 끈을 잡고 있어야 사람들은 나의 프레젠테이션을 끝까지 듣는다.


https://blog.naver.com/janekimjh

#영어프레젠테이션 #세미나발표 #청중의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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