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fired. 해고! 언제 짐 싸야 하나?

해고되면 언제 집에 가야 하나?

by 김지혜

숨은 챔피언으로 여겨졌던 기술력이 탄탄한 한국의 중소기업이 여러 사유로 인해 결국 미국의 투사사에 넘어가버렸다.

회사가 외국계로 넘어가면 오랫동안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간부는 여러 사유로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경우가 있다.

회사를 인수 한 투자사 대표, 로버트(가명)는 그 회사의 중요 실세(?)였던 상무를 해고를 위한 미팅에 외부 통역사를 고용했다.

해고와 해고 수당에 대한 협상 통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회사가 아닌 외부 호텔 회의실에서 미국인 사장과 변호사, 그리고 통역인 내가 해고될 상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민감한 사안은 내부의 인원이 관련되면 비밀 유지가 어려워 외부 통역사를 고용하고 회의도 외부에서 한다.


해고 대상자인 상무는 교통 체증으로 호텔 회의실에 약속시간보다 약간 늦을 것 같다며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해고를 앞둔 사람이라기보다 오늘도 활기찬 하루를 보내는 분 같았다.


상무가 도착했고 이후 해고에 대한 사유와 해고 통지가 이어졌다.

상무의 눈을 맞추기도 힘들고, 그의 눈을 바라볼 용기도 없었다.

통역할 내용을 열심히 메모하고 그 메모를 읽으며 통역했다.


“인수 후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였으며 그 조직도 상에서 상무님이 있을 자리는 찾지 못했습니다”라고 로버트는 해고를 통보했다.

상무는 연봉 협상이라도 하는 줄 알고 기분 좋게 왔다고 했다.

그렇게 해고를 통보하고 퇴직금과 보상금 협상을 진행하였으며 변호사는 즉시 준비된 계약서에 상무의 사인을 받았다.

해고와 법적 절차까지 마무리하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미국인 사장 로버트는 그 상무에게 1시간을 줄 테니 회사에 돌아가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물건을 정리해서 가면 된다고 했다.


이 매정한 사장 같으니라고! 나로서도 충격적이었다.

회사로 가는 길에 충격에 쌓인 나는 해고의 절차와 방식에 대해서 여러 질문을 했다.

로버트는 이런 방식의 해고가 미국에서는 일반적이라고 했다.

한국인의 정서와 그 상무님을 대변이라도 하듯 회사에서 어느 정도 정리할 시간은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로버트의 대답

“ 그래서 한 시간 줬잖아"


한 시간? 한 시간이면 제대로 작별인사도 다 못할 것 같은 시간 아닌가?

누군가와는 차라도 한잔 해야 할 것 같고, 송년회도 해야 하고, 거래처에 인사라도 하려면 적어도 한 달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퇴사나 해고를 할 때도 어느 정도 관계와 개인적인 신변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회사를 나간다는 것은 업무의 인수인계 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관계 정리도 포함된다.


로버트는 나의 이런 의견에 질문했다.

"그 사람이 해고를 당해 퇴사가 결정된 상황에서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다른 직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상무가 도착하기 전, 로버트는 변호사와 법적으로 회사 인수에 관련된 사항에 있어서 상무와 업무적으로 더 필요한 사안이 있는지 확인했다.

미국 업체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업무적인 기여도가 없는 고연봉의 관리자를 지속적으로 고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마도 미국의 고용 계약의 개념과 한국의 고용계약의 큰 차이점 중에 하나는 바로 Job description(직무 기술서) 일 것이다.

미국은 Job description를 아주 상세하게 작성한다. 그래서 내가 맡기로 한 일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해고가 되거나 퇴사를 하더라도 그 직무기술서에 나와 있는 업무 들을 맡을 다음 사람만 있다면 언제든 내가 없어도 일이 지속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내 고용 계약서에 뭐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직무기술서라는 게 있었나 싶다. 두리뭉실하게 적혀 있으며 구체적이지 않다. 그러다 보니 원래 해야 할 업무인지 아닌지도 모를 일들이 열심히 하다 보면 잘하는 그 누군가에게 조금씩 조금씩 추가된다. 아마도 일 잘하는 사람은 항상 일이 더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이런 정의되지 않은 내 일들을 누군가에게 인수인계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내가 해오던 일의 범위를 어쩜 나만 잘 알고 있을 수 있다. 티 나지 않게 내가 해온 일들, 표현하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자잘하고 손이 많이 가던 일들.. 알고 보면 그런 티 나지 않은 일은 누군가에게 인수인계할 때 간과되기 쉬운 부분이다.

내 업무의 사이클을 돌려봐야 정의되어 있지 않던 일들은 하나하나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서 다음 사람이 그 일의 사이클을 통해서 해야 할 일들을 파악해 간다.

당연히 업무적인 면에서 인수인계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국은 업무중심적 문화이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이며 개인적인 관계와는 별개로 생각한다. 고용 계약서에도 이러한 부분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내가 해야 할 일과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 충분히 그리고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것을 만족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든 그렇게 관계는 정리된다.


반면 한국은 관계 중심적 문화이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업무적으로 이미 정리가 되었다 할지라도 관계를 정리할 시간, 직원들과 헤어짐을 준비하고 환송회를 할 그런 시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버트의 질문을 생각해보면 고용자의 입장에서 이미 내가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된 상황에서 그것도 해고된 상태라면 다른 직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사실 그날 상무는 상당히 협상력이 뛰어났다.

허무하고 쓸쓸한 해고를 상상할 수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보상금을 받고 회사를 나가게 된 것이다.

상무가 다른 직원에게 끼칠 정서적인 부분 외에도 해고에 대한 보상금은 많은 직원들이 궁금해할 부분이다.


회사를 사고 가치를 높여 다시 파는 사모투자회사의 간부였던 로버트는 해고된 직원이 어떤 영향을 줄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하러 회사에 가지만 이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라는 중요한 역할과 임무도 가진다.

관계는 우리에게 일 보다 더 큰 어려움을 주기도 하고 더 큰 보람을 주기도 한다.

내가 가진 관계는 내가 가진 직무 이상의 가치가 되기도 하고 최고의 직무를 수행해도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면 함께 일하기 별로인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관계 중심의 문화인 한국에서는 일과 관계 두 가지 모두 가져야만 일을 잘한다 라고 인식한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누군가와의 소통을 위해 혹은 재충전을 위해 한잔 하러 가는 많은 한국의 직장인들.
리더라 불리지 않아도 언제나 소통력과 리더십을 키우고 있을 모두를 응원한다.


https://blog.naver.com/janekim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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