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미안해' 한다면 '고마워'라고 답하자.

Win-Win 하는 커뮤니케이션

by 김지혜

상상해보자. 회의에 꼭 와야 하는 직원이 회의 시작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고 있다. 내가 회의 주체자라면 기분이 어떨까? 정말 중요한 회의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누군가 늦어서 시작을 못하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결국 늦게 도착한 직원에게 우리는 아마도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왜 이렇게 늦었냐? "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겁니까?”

“내가 너 때문에 못살겠다. 일단 회의 시작하고 나중에 이야기하자.”


아주 인성이 좋고 참을성이 많은 상사라면 ‘일단 얼른 시작하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늦은 사람이 늦었지만 일을 잘 마무리하고 다음부터 늦지 않게 반성하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주로 하는 일은 통역이나 강의이다.

내가 늦으면 회의나 워크숍을 진행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절대로 늦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지각의 경험이 있다.

월요일 아침은 유난히 길이 막힌다. 통역이 예정되어 있었던 어느 날 한 시간 정도 일찍 출발해도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더 시간이 걸렸다.

결국 그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10분 정도 지각이었다.

도착하면 가장 먼저 내가 받는 게 뭘까?

바로 고객의 저주의 눈빛이다.


나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임금님 앞의 무수리가 된다.

회의가 이미 지체되었으니 인사는 대충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통역하는 내내 미안한 마음에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못한다.

무수리는 일을 마치고 나면 임금님의 어명으로 큰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급하게 뛰어온 나는 아직도 심장이 콩닥 거리고 일에 집중이 안된다.

5분 10분의 지각은 종일 죄책감을 가지기에도 충분하다.

죄책감에 집중력도 떨어지고 퍼포먼스도 좋지 않다. 좋은 표현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을 마무리했지만 내게는 엉망진창인 하루 같다.

일반적으로 무사히 일을 잘 끝내고 나면 종일 저주의 눈빛을 보냈던 고객은 괜히 미안한 마음에 수고했다고 미소를 짓는다. 일이 문제없이 마무리되면 고객도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하지만 고객에게 용서받지 못한 채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 일을 마친 난 여전히 죄인이다.


그럼 누군가 중요한 일에 늦어서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한다면 “ 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라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늦은 것도 미워 죽겠는데 뭐가 고맙다고 우리는 고맙다고 까지 해야 하나!

늦은 자에게 ‘지금이라도 와줘서 고마워’라고 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지금이라도 와줘서 고마워”라는 말은 용서의 의미가 포함된다.

조금 늦었지만 아직도 내가 충분히 기여할 가치가 있다고 인식된다.

용서를 통해 죄책감은 어느 정도 사리지고 내가 기여할 가치에 집중하게 된다.

늦었지만 남은 시간 동안은 최선을 다하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는다.

사람은 용서받지 못할 거 같을 때 용서를 받으면 감동하고 변화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오니 뒤늦게 사춘기가 왔다. 갑자기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다.

수업은 들었지만 제대로 듣지 않았고 공부라고는 안 하는 1년을 보냈다.

어느 날 반에서 뒤에서 4등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당시에 성적표를 우편으로 보냈다. 엄마가 받아서 아빠 보기 전에 감춰두고 계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엄마에게 성적표 봤냐고 물었다.

그 순간 엄마는 “ 네가 최선을 다한 거라면 괜찮다”라고 했다.

뒤지게 혼날 줄 알았는데 엄마의 용서와 신뢰는 사춘기 병을 뛰어넘는 충격을 주었다.

그 성적은 내가 최선을 다한 게 분명 아니라는 걸 엄마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용서받은 나는 엄마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고 최선을 다하는 난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 인간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내겐 공부를 해야 할 엄마의 신뢰라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있었다.

마치 성당에서 물건을 훔친 장발장이 촛대는 왜 안 가져갔냐고 묻는 신부님의 말에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다.


늦었을 때 최대의 피해자는 늦은 사람이다. 그 순간 누구보다도 힘들고 괴롭다.

빠르게 그를 구해주고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빠르게 현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win-win 전략이다.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늦어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얼마나 곤란했는지 설명해도 충분히 늦은 자는 반성하고 이해한다.

늦은 자의 사과만 받고 만다면 죄를 지은자와 그를 참아내는 자의 관계가 된다.

누군가 늦었다면 왜 이제 왔냐고 질책하지 말고 ‘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라고 한다면 늦은 사람은 용서받은 사람이 되고 상대는 용서하는 사람의 관계가 된다.

아마도 용서받은 그는 앞으로 오랫동안 본인이 가능한 역량 이상을 상대에게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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