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1%는 무엇일까?
동남아시아에서 나름 잘 나가고 말레이시아에 본사를 둔 교육업체는 한국 시장 개척을 위해 시범적으로 1단계 교육을 한국에서 오픈하였다.
영어 워크숍에서 한국어 통역은 많이 하지만 영어 워크숍을 직접 참가자로 듣기는 처음이었다.
정말 괜찮은 워크숍을 통역할 때 내가 가장 괴로웠던 점은 내가 그 워크숍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을 하고 몰입을 하는 순간 교육을 하는 트레이너의 말을 놓친다.
2일의 워크숍 동안 참여자로서 교육을 받는다는 건 제대로 몰입하고, 생각하고 질문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1차 교육이 시범적으로 한국에서 진행되었지만 2차 교육까지는 한국에서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고급(advance) 과정인 2차 교육을 받기 위해 난 직접 말레이시아로 갔다.
워크숍이 시작되는 첫째 날 호텔 회의실에 도착하자 참여자로 말레이시아인 외에도 독일인, 중국인, 파키스탄인, 그리고 나 한국인 이렇게 다양한 국가의 참여자가 있었다.
말레이시아 참여자 중에는 다리 한쪽에 위족을 한 장애인 여성 참여자도 있었다.
‘이 워크숍은 다양성과 포용(diversity and inclusion)을 실천하는 교육이구나, 이것이야 말로 정말 내가 원하던 교육이야!’
이런 생각에 차비와 비용을 들여서 왔지만 정말 잘 왔다고 생각했다.
간단한 조별 인사 후 단체 Ice breaking 게임이 시작되었다.
내 마음에 문이 닫혀 버린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풍선을 불어서 최대한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협동 게임이었다.
서로 손을 잡고 해야 하는 순간,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은 남자랑 손을 잡기가 불편한지 얼른 다른 여성 사이로 자리를 바꾸었다.
게임이 시작되자 서로가 잡은 손으로는 많은 풍선을 잡기가 힘들자 땅에 떨어지는 풍선들은 발로 차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위에 있는 공은 손으로 아래쪽에 있는 풍선은 발로 차서 최대한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애를 썼다.
다리 한쪽에 위족을 한 여성은 발로 차는 행위가 힘들었다.
우리의 행동 때문에 흔들리는 그녀가 약간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게임이 끝난 후, 게임을 하며 느낀 생각과 성찰을 나누기 위해 우리는 카펫 바닥에 앉았다.
장애인 여성은 다리 때문에 바닥에 앉을 수 없었다. 누군가 얼른 의자를 가져와 그녀가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바닥에 앉은 우리는 그녀의 눈높이는 같지 않았다.
난 첫날의 이 아이스 브레이크 게임에서 그 교육의 수준이 낮다고 정의 해 버렸다.
내가 기대했던 다양성과 포용이 하나도 고려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는 다양한 종교와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품질 나쁜 교육이라는 생각이 박여 버렸다.
우리는 품질을 디테일로 인식한다.
품질은 작은 요소지만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하여 얼마나 섬세하게 고려를 하였는가로 충분히 판단될 수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고객관점을 이해할 때 중요한 과정 중에 한 가지는 극단적인 상황의(extreme) 고객 관점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대부분이 가장 많이 팔리는 소비자 층을 상대로 고객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인식하는 품질은 극단적인 상황을 감안했는가로 인식된다.
전설이 된 디자이너 지방시는 오래전 “럭셔리는 작은 디테일에 있다”라고 간파한 바 있다.
‘디테일(Detail)’은 몸통(Trunk) 보다 작고 덜 중요한, ‘사소한 꼬리’ 같은 개념이다.
주방의 거품기를 생각해보자.
'몸통'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소비자는 가끔 아니면 일주일에 몇 번 빵을 만드는 사용자일 것이다.
사용자의 범위에서 꼬리에 해당하는 극단적인 사례를 보자.
하루에 몇 번씩 아니면 종일 사용해야 하는 빵집의 직원일 수 있다. 아니면 거품기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아이가 처음으로 요리 실습을 하며 거품기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사용자가 '꼬리'에 해당하는 사용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꼬리'에 해당하는 사용자도 고려했는가가 바로 우리가 품질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잘 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디테일은 감동적이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의 솜털까지 표현한다. 그래서 디즈니에서 영화가 나오면 그냥 믿고 본다.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게임의 구성과 종교를 감안하지 않은 게임 진행을 경험한 후 4일 내내 나는 몰입하기 힘들었다.
차비와 비용을 들여 날아간 말레이시아의 교육이 헛되지 않도록 부단히 도 애를 썼다.
‘담당 직원이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실수했을 수도 있어. 분명 내가 배울 부분은 아직 많을 거야’ 라며 스스로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이렇게 나에게 미운털이 박혀 버린 교육은 이후 교육을 받는 내내 지적할 거리들만 자꾸 보이기 시작했다.
농담처럼 오가는 작은 차별과 성적인 이야기에 화가 나기까지 했다.
한때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작은 성적 행동과 농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인식하며 남녀 모두 웃어넘기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 매일 같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당연히 여기게 된다.
나의 불편한 감정들은 별난 감정, 과민한 감정으로 스스로 눌러 버린다.
한국의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러한 농담들에 대해 이미 한국은 인식하고 개선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내게는 보인다.
분명 유익한 내용과 콘텐츠도 있었다. 이러한 작지 않은 작은 것들에 실망해버린 나에게 교육의 신뢰도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사실 말레이시아 문화를 이해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 부분이다.
한국의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말레이시아의 지방 도시 시장님을 수행하고 통역을 담당한 적이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시장은 임명직이다. 문제가 없다면 거의 종신직처럼 할 수 있는 큰 권력을 가진다.
한국의 담당자는 시장님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시장님과 더 소통이 잘 될 수 있도록 한국말을 잘하는 말레이시아 유학생을 어렵게 섭외해서 통역사로 고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기대와 다르게 시장님은 그 통역사와 그다지 개인적으로 소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학생과 시장은 말레이시아의 위계 구조에서 큰 격차가 있다.
이후 전문 통역사를 고용하니 시장님은 더 많은 소통을 한다고 하셨다.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위계적 구조가 존재한다면 분명 내가 느낀 워크숍의 차별은 사실 그들에게는 일상일 수 있는 일이다.
4일이라는 기간은 문화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가능했지만 내가 그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짧은 기간이었다.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과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큰 갭이 존재한다.
워크숍을 마치고 교육 만족도 조사에 대한 설문지를 받았다.
한국과 다르게 본인 이름을 적고 관련 만족도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익명이 아닌 설문지에 진심으로 피드백을 한다는 건 사실 쉽지 않다.
아마도 이러한 요소 또한 디테일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장애인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과 설문지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불편한 심정만 피드백으로 제출하였다.
나머지 피드백은 교육을 진행한 몇몇 트레이너의 행동과 발언에 대한 지적으로 개인적으로 문제시될 수 있겠다는 우려로 하지 못했다.
결국 내가 그곳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스킬과 역량이 아니었다.
미팅이나 워크숍을 준비한다면 이러한 작은 차이가 결국 회사의 신뢰와 워크숍의 품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버리기 쉽다는 것이 가장 큰 배움이었다.
중국 기업 컨설턴트 왕중추의 저서 [디테일의 힘]에서는 1%의 실수가 100%의 실패를 부른다고 말한다.
1% 때문에 내가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준비한 서비스, 워크숍 혹은 미팅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내 눈에 보이지 않는 1%의 디테일은 분명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잊지 말자.
https://www.youtube.com/thewiser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