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저주에 빠진 꼰대

풀리지 않는 저주~

by 김지혜

모 기업에 임원 워크숍에 통역을 하러 갔었다. 허태균 교수님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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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외국인 임원 옆에서 위스퍼링 통역(옆에서 조용히 1대 1 통역)을 맡았다.

허태균 교수님은 팀장, 이사급 이상인 참여자에게 말한다.


“여러분들은 회사에서 굉장히 일을 잘해서 그 자리에 계신 겁니다.

여러분의 지시에 딴지 거는 사람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다. 역시나 그들은 높은 자리에 있는 훌륭한 임원분들 이었다.


그러고 나서 교수님은 임원들에게 다시 묻는다.

“집에 가면 가족이 집에 있는 강아지보다 물고기보다 화분보다 나를 더 챙겨준다, 나를 더 반기고 서열이 높다 하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그곳에 계신 임원분들은 서로 어설픈 미소와 함께 눈치를 보며 자신 있게 손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허태균 교수님의 마지막 맨트


“내일 가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부하직원들에게 해보세요.
그럼 분명히
‘제가 해보겠습니다.’ 하는 인간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여러분은 완벽한 꼰대입니다. "


나이 먹는 만큼이나 쉬운 것이 꼰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내고 있는 나를 자각하는 건 쉽지 않다.

20대들이 주로 참여하는 골든 마이크라는 시민 연사 대회 예선에서 나는 20대 심사위원에게 피드백을 달라고 했다.

괜찮겠냐고 묻더니 한 심사위원이 “ 교회 설교 듣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칭찬인 줄 알았다. 다른 면접관이 답답했는지 다시 직설적인 피드백을 주었다.

“꼰대 같아요, 교회에서 목사님 지루한 설교 같아요”

20대 초반인 관중 앞에서 40대인 내가 뭔가 좋은 메시지 하나쯤 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아마도 기업의 임원 정도 된다면 힘들게 배운 교훈들을 알려주고 누군가가 시행착오를 줄이고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소통이라는 이름의 조언을 했을 것이다.


어느 겨울, 아이와 함께 등굣길을 걸으며 발목이 덮이지 않은 양말을 신은 중학생의 발이 너무 추워 보였다. 나와 평생을 같이 살아온 나의 큰딸은 갑자기 엄마의 팔을 꽉 잡는다.
오랫동안 나의 오지랖질을 바라본 아이는 충고한다.


“오지랖을 떠는 입장에서는 100프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오지랖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도움을 주는 것과 간섭하는 것.”


받는 입장에서 간섭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거 생각해보란다.
항상 나에게 가장 적나라한 피드백을 주는 나의 아이들.

엄마의 행동이 받는 입장에서는 간섭이라고 여길 수 있다는 것, 필요하지 않은 조언 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다.

나는 오지랖이 조금 넓고, 사람들이 필요하다면 내가 아는 정보를 나누는 걸 좋아할 뿐이었는데 꼰대 소리를 들었다.

이런 나는 지식의 저주에 걸려있다. 그래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기 힘들다.


칩 히스 형제의 저서 [스틱]에서 말한다.

우리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 ‘답변 단계’와 타인에게 전달하는 ‘전달 단계’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내가 아는 사실이나 경험에 대한 답변에 치중하다 좋은 정보가 간섭과 쓸데없는 조언, 듣기 싫은 이야기로 둔갑하여 전달단계에 문제가 생긴다.

나는 뭔가 알게 되고 심지어 경험을 통해 뼛속까지 체험한 지식이라면 그것을 몰랐던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없다. 누군가 그것을 모르는 이들을 마주할 때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나는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알게 되면 절대로 모르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 바로 "지식의 저주"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상대가 나와 똑같은 가치로 내 말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여기며 소통하려 든다.


그래서 상사의 입장에서 부하직원은 내 말을 못 알아먹는 것 같고,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꼬아 듣는 것 같고 내가 하는 삶의 피와 살 같은 소중한 정보의 가치를 못 알아먹는다고 여긴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보며 세상을 잃은 듯 울었던 5살 나는 이제 바닥에 아이스크림이 떨어져도 울지 않는다. 나는 이미 다른 맛있는 것들도 많고, 다시 사면되고, 아이스크림 따위 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하고 맛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

난 5살 때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심정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


혹시 TIM (Too Much Talk)은 없었나, 그 속에 몇 프로나 꼰대스러웠을까? 그냥 나를 접대하듯 떠들게 받아 준 것인가? 나의 100을 누군가 0으로 받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슬픈 현실을 저주에 걸린 나 스스로 알아내기는 어렵다.


내가 선택한 솔루션은 바로 누군가의 피드백이다.

채찍같은 피드백은 사실 아프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가치 없는 이야기를 착각하고 쏟아내는 나를 상상하는 것은 더 슬프다.

너무 많은 피드백에 내 이야기는 쓰레기였나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취할 수 있는 개선을 하나 정해서 거기에 집중한다. 한개씩만 개선한다.

그럼 누군가의 피드백은 내 소통의 아주 중요 포인트를 개선해 주며 소통의 시도는 지속 가능하다.


난 “꼰대 같아요” 알려주는 이가 있다면 그들과 더 대화하고 싶다.

적어도 그런 친구가 나에게 있다는 건 나와 소통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누군가일 것이다.

나와 소통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에 혹시 내가 꼰대인가 의심이 든다면 찾아보자.

내가 피드백에 유연해진다면 내가 저주에 걸려 있음을 너무나 알려주고 싶은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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