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힘

내가 가진 최고의 환경은 내가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by 김지혜

나는 첫째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었다.

소풍날이었다.

같은 반 아이의 엄마는 일이 바빠 소풍날인 것을 잊어버렸다.

결국 그 친구는 소풍날 도시락을 챙겨 오지 못했다.

난 그 소식을 듣고 상당히 흥분했다.

모두가 싸온 도시락을 보며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는 아이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상상하며 말이다.

그리고는 바쁘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내가 기꺼이 그 아이 김밥을 함께 싸겠노라 전화해서 오지랖을 떨었다.


이런 나의 행동을 보고 함께 공동육아를 하던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도시락을 안 가져오면 그냥 다른 친구들이랑 나눠 먹으면 되지, 그게 그렇게 안타까운 일이야?”

"아이는 차라리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데 왜 그런 일에 그렇게 흥분하지?"

혹시 어릴 적 내가 힘들었던 기억은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도시락을 안 싸 줘서 속상했던 기억 같은 건 없다. 근데 왜 그랬을까?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기억을 쥐어짜 결국 초등 저학년 시절 이웃 자매에게 가끔 괴롭힘을 당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함께 재밌게 놀다가도 어느 순간 자매는 철저한 한편이 되어 나를 공격했다.

그렇게 울며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엄마는 나보다 더 속상해했다.

엄마는 왜 직접 따지고 싸우지 못했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엄마는 오래 살아온 동네의 이웃과 사이가 나빠질까 내가 당한 괴롭힘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난 이후 내가 그 자매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도와줄 수 없고 나보다 더 속상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당시 우리 집은 2층이었다.

그렇게 속상한 일을 겪은 날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그 계단에 앉아 한참을 울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나서야 아무 일 없는듯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계단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그 계단에 앉은 나의 감정과 도시락이 없는 아이의 감정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너무나 바쁜 엄마의 상황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

도시락이 없어도 그냥 울거나 화낼 수 없는 아이의 마음에 들어간 것일까?

내가 계단에 앉아서 울던 그 과거의 이야기를 생각해 낸 이후부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 이후 어린이집에 비슷한 일이 있어도 흥분하지 않았다. 그 친구처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또한 아이가 나눠 먹을 수 있도록 넉넉히 싸주고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것을 발견해 내고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될 수 있고 개선될 수 있었던 건 그냥 친구의 지나가는 한마디였다.

몇 년 뒤 그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웃기게도 그 친구는 자기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게 타인의 관점을 바라보는 일상의 삶을 살아간다.

나에게 던진 질문은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대화일 뿐이었다.

그냥 일상의 삶에서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어떠한 가치로 다가갔는지 그녀는 모른 체 그녀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뼈 때리는 질문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동기부여 강연이나 자기 계발 책과 같이 의도된 영향을 받기 위해 애를 써도 얼마 못 가 그 에너지는 식어버린다.

현실에서 오랫동안 그 영향을 유지하고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은 굳이 남들에게 뭘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에겐 일상의 수다 속에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친구 줄리가 있다.

내가 경력단절을 극복하고 다시 사회에 나와 프리랜서로 자리잡기까지 처절했던 과정의 도전을 지켜보며 하소연을 들어주던 친구다.

그런 나의 삶을 보며 줄리는 스스로 멈춰 있다고 느끼곤 했다.

사실 줄리는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 멈춰 있었던 친구가 아니었다. 나보다 훨씬 수입이 높은 인기 영어 과외 선생님이었다.

어느 날 나에게 초등 영어 스피치 심사위원 의뢰가 들어왔다.

당시 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본 적이 없는 그냥 통역사였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줄리였다.

분명 줄리는 아이들을 오랫동안 가르치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평가하고 격려하는지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줄리에게 이 일을 의뢰했다. 그리고는 의뢰업체에게 소개를 위한 이력서를 요청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나의 제안과 의뢰가 그녀를 자극하고 일으키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동네에서 줄을 선 인기 과외 선생님이었지만 이 일에서 요구하는 그런 이력이 없다고 느낀 것이다.

이후 어느 순간 대학원을 준비하더니 대학원을 진학했다.

두 아이를 기르며, 과외일도 지속하고 학교도 다니는 숨 넘어갈 만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냈다.

결국 그녀는 명문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본인의 콘텐츠를 준비하여 홈스쿨을 시작하더니 발전과 성장을 거듭한다.

얼마 전에는 코로나라는 모든 것이 멈춘 그 상황에서 과감하게 학원을 오픈했다.

난 여전히 프리랜서이며 그녀는 이제 대표님이 되었다.

코로나라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녀의 학원은 잘 굴러간다.

줄리는 매번 지금의 그녀에게 큰 자극을 준 것은 바로 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 질문을 던지던 그 친구처럼 그냥 일상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난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분야에 더 잘할 줄리가 떠올랐을 뿐이고, 그녀에게 의뢰했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상황에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생각하여 나와 상대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똑같은 걸 보고 들어도 다르게 받아들이며 다른 가치로 다가온다.

나의 작은 질문에 줄리는 성장했다. 이후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장한다.

지금의 줄리를 바라보면 이제는 내가 도전을 멈춘 듯하다.

우리는 타인이 주는 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가진 에너지 속에서 내게 필요한 가치를 찾아낸다.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아 성장하고 발전하고 진화한다.

내 주위 환경은 내가 가진 관계를 포함한다.

미국의 사업가이며 동기부여 강연가인 짐 론은 말한다.


"당신은 가장 많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다.

(You're The Average Of The Five People You Spend The Most Time With.”


내가 성장이 필요하다면 성장을 거듭하는 이들과, 내가 치유가 필요하다면 마음을 다스리는 이들과 함께 하면 결국 나도 그렇게 살게 된다.


내가 가진 최고의 환경은 바로 내가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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