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나와 마주하는 힘

용기가 필요한 순간

by 김지혜

늦은 저녁이었지만 마무리해야 하는 일로 책상에 앉아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뒤에서 4학년 둘째 아이는 혼잣말을 해가며 하루에 책을 몇 권 읽겠다고 정하더니 열심히 읽고 있었다. 얼마나 지속할지 모르는 그 책 읽기 프로젝트는 며칠간 계속되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책 읽는 게 재밌어?”

사실 난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아이였다. 재미난 그림책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글자가 빼곡한 책은 더더욱 읽지 않았었다.

아이는 대답한다.

“재밌을 때도 있고 재미없을 때도 있어”

내 기억의 나는 그 시절 책이 재밌었던 적이 없었다. 재밌을 때도 있다는 게 기특하고 신기했다.

다시금 질문했다. “근데 책을 왜 읽는 거야?”

“똑똑해질 수 있잖아”

나는 여전히 노트북을 쳐다보며 일을 하다 아이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왜 똑똑해지고 싶어?”

아이가 한참이나 대답이 없다. '못 들었나?' 싶은 생각에 다시 물어보려 아이를 쳐다봤다.

아이는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가 똑똑하면 좋아하니까!”

엄마라면 이 순간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얼마나 못난 엄마인가~!’

아이에게 암묵적으로 똑똑하기를 강요하던 똑똑하지 않은 못난 엄마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난 그런 엄마가 아닌 줄 알고 살았다.

나는 아니라고 구분 짓던 ‘그런 엄마’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다르다는 생각은 내가 가졌던 가장 위험한 생각이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은 분명 연결되어 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기에 그런 말을 둘러 하든, 대놓고 하든 했을 것이다.

결국 그 생각과 말은 행동으로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서 냄새처럼 흘러나왔을 것이다. 엄마는 똑똑한 아이가 좋아라는 표현을 말로 하지 않더라도 행동과 눈빛과 반응으로 해왔던 게 분명하다.

똑똑한 아이가 사실 좋다.첫째 아이다 둘째보다 똑똑하게 잘해낸다고 그 아이가 더 좋은 건 아니지만 그 똑똑함이 자랑스럽고 좋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둘째 아이 앞에서 칭찬했을 것이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둘째는 스스로 똑똑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자라고 있었다.


똑똑하다는 의미는 무언인가! 이렇게 어리석음을 한 번에 알게 해 준 내 아이보다 난 뭐 그리 똑똑하다고....

똑똑하지 못한 내가, 나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도 이해하지 못한 채 아이에게 엉뚱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며 모순된 생각이 나일 거라 여기며 살아왔던 난 참 똑똑하지 못한 인간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 그것을 열심히 하다 보면 그 분야는 잘하게 되고 똑똑해진다.

누구나 한 분야를 오래 하다 보면 내가 똑똑하다고 느끼게 된다. 나 또한 통역을 오래 하며 내가 하는 전문분야는 내가 똑똑하다고 여기게 되면 그 자신감으로 일을 지속한다.

사람이 계속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다가 살아가도 되는 세상이면 참 똑똑하게 마지막까지 갈 수 있겠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뭔가 좀 잘한다 싶으면 다른 것들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혹은 다른 뭔가를 더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유가 어떠하든 결국 내가 하던 그 똑똑하던 분야를 떠나기만 하면 약간이든 심하든 일순간 모두가 바보가 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며 그 바보가 되는 순간을 견디는 게 사실 쉽지 않다.

내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나에게 “바보야”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이에게 “넌 똑똑하지 못해’라고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새로이 시작한 분야에서는 사람들은 눈빛으로, 둘러치는 말로, 작은 행동으로, 혹은 대놓고, 아니면 뒤에서 지속적으로 ‘바보야 그것도 못하니’라는 표현을 하염없이 한다.

새롭게 시작한 분야, 새롭게 입사한 회사,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서는 항상 바보인 나와 마주해야 한다.

그 상황을 겪어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건 사실 좀 고통스럽다.

바보 같아 보이는 내가 참 싫다. 그런데 심지어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거나 대놓고 지적하면 내가 이미 어렴풋이 알아가는 나의 어리석음에 쐐기를 박아 주듯, 그런 나를 오롯이 마주해야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 견뎌 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것이든 바보인 상태로 계속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경험과 지식과 실패는 결국 똑똑해질 수 있는 디딤돌이라는 것을 적어도 한 번은 겪었을 것이고 그러다가도 결국 나는 안돼 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아는 누군가일 확률이 높다.

아마도 이런 나와 마주하는 내 안의 힘은 이런 나를 견뎌내게 한다.


나는 브렌 브라운 (Brené Brown)의 TED TALK에서 말한 ‘The power of vulnerability(취약점의 힘)’을 ‘부족한 나, 실수한 나, 모자란 나와 그대로 마주하는 힘’으로 해석했다.




그 힘이 부족하면 결국 바보 같은 나를 마주하기 싫어 새로운 분야의 도전을 멈추게 된다.

우리가 도전이 힘든 이유는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아니라 무지한 나를 마주해야 하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어서 이다.

내가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에게 공부를 왜 못하냐고, 왜 안 하냐고 묻지 않았다. 똑똑한 아이가 좋다고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힘든 그 무엇을 누군가 해내는 모습을 보며 똑똑하지 못한 나와 마주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 상사의 모습, 누군가의 모습에 작아지는 나는 부족한 나를 대할 힘을 잃어 간다.

아이들이 도전을 멈추는 이유와 어른인 내가 도전을 멈추는 이유는 별반 다르지 않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내가 가장 두려웠던 부분은 그것이었다.

누구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겠다고 마음먹기 전 모르는 것을 배우고, 역경을 이겨 내겠다는 각오 정도는 하고 시작한다.

문제는 내가 마주하는 나의 어리석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현실과 마주하면서 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모자라고, 부족하고, 어리석은 나는 아직 마음에 준비되지 않는 나의 취약함까지 껴안을 힘을 가져야 했다.

한마디로 내가 모르는 게 뭔지를 모르는 것! 그 미지의 무지함의 세계가 얼마나 심오하고 깊은지를 알게 되고 그런 나를 마주 하는 건 생각지 못한 힘듦이다.


나는 그런(?) 엄마가 아니라고 머릿속은 생각하지만 똑똑한 아이가 좋다고 표현 해온 나는 오늘도 얼마나 내가 모르는 영역을 안다고 여기며 살고 있을까!

뛰어난 리더로 존경받는 사람들이 쉽게 자세를 낮추고, 학습하고 배우는 겸손함을 가졌다. 그들은 모르는 것 숨기려 아는 것을 주저리 읊어대는 꼰대도 아니다. 존경받는 리더가 그런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건 스스로 모르는 영역이 얼마나 되는지 다른 이들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어딘가 새로운 도전과 영역에 무지한 스스로를 마주할 준비된 사람들이야 말로 스스로의 취약성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제 것, 무언가 도전할 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아는가에 집착하고 더 많이 알고자 했다면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그런 ‘바보 같은 나’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You can’t get to courage without rumbling with vulnerability.
당신은 취약성에 맞서지 않으면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Brene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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