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용기

꼰대가 되는 건 나이 먹는 거 보다 쉽다.

by 김지혜

정보가 돈이 되는 세상, 상대가 원하는 정보를 알면 내 정보도 돈이 된다.

정보를 나눠주고 돈을 받는 전문가와 투자사의 인터뷰 통역을 오랫동안 해왔다.

주로 3자 통화로 이루어지는 한 시간 가량의 전화 통역이다.

투자사(밴처 캐피털, VC)는 투자 전에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분석한다.

정보의 입수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 하나가 그 업체, 업종, 업계의 전문가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는 관련 업종에 오래 일을 하거나 현재 일을 하고 있어서 그 분야에 대한 인사이트와 전망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내가 박사나, 학자가 아니어도 된다. 투자자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에 대한 정보와 미래의 전망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투자사는 그들을 전문가(expert)나 조언가(advisor)로 인정한다.

해외 투자사와 한국 전문가의 인터뷰는 직접 만나서 미팅을 하기도 하지만 전화로도 이루어진다.

인터뷰 통역은 아주 냉정하게 진행된다.

비싼 돈을 주고 한정된 시간 동안 정보를 받는 것이다 보니 미사여구 따위의 말은 하지 않는다.

통화가 시작되면 바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이젠 전화 넘어 들리는 투자사의 I got it, Ok 만 들어도 원하는 답을 받았구나 감이 온다.

시간이 돈인 이들의 대화는 원하는 정보를 전문가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아주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 버리기도 한다.


한 번은 한국의 전문가는 투자사가 알고자 하는 정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전문가는 그 정보를 모른다고 답하는 대신, 질문과 상관없는 본인의 전문 분야에 대한 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질문이 마음에 안들 수도 있고, 내 전문 분야 관련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전문가는 질문을 똑바로 다시 하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통역인 나로서는 초 긴장 상태이다. 잘못하면 이해를 서로 못해서 그렇다고 통역 탓으로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정신 차려서 통역을 진행하고 질문을 정확히 이해했는지 매번 확인해야 한다.


한 번은 질문을 정확하게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전문가는 질문 관련 분야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전화기 넘어 전문가의 목소리는 여전히 뭔가 본인의 전문성과 연결점을 찾고 싶어 한다.

이미 투자사는 원하는 정보를 모르면 더 이상의 대화는 시간 낭비라고 하며 전화를 끊을 태세다.

투자사는 냉철하다. 원하는 정확한 목적의 정보가 있다. 그래서 그 정보를 위해 돈을 지불한다. 시간을 중시해서 상관없는 정보를 들을 시간이 없다.

전화를 끊으려는 투자사에게 한 번만 다시 설명해보겠다고 1분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다시 한국인 전문가에게 원하는 정보를 설명했지만 여전히 모른다는 말 대신 다른 말을 했다.


결국 투자사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XX에 대해서 아는지 모르는 지만 말해주세요.” 한마디로 open question 즉 많은 정보를 받기 위해 열린 질문 했다면 이제는 단답형으로 질문 “예, 아니오” 로 답을 원한다.

전문가가 원하는 정보 외의 답을 하지 못하도록 질문하기 시작했다.


결국 전문가에게서 ‘모른다’라는 답변이 나오기까지 30분이 걸렸다.


투자사의 목소리가 까칠해지기 시작하면서 그 전문가에게 너무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투자사의 개념은 투자를 해서 돈을 벌 수 있는가 없는가의 정보를 알고 싶다.


대부분 수치와 %, 점유율, 경쟁사, 투자 계획, 매출 예상, 가격, 기업 상황 등 투자 결정에 영향을 주는 정보다. 한마디로 정량적인 내용들을 수집하고 싶어 한다.

내가 아는 전문분야에 대한 답변을 % 나 수치로 이야기한다면 만족감의 리액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치와 % 는 반드시 근거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받고 투자사는 정말 빠르게 분석한다. 전화는 하는 도중에도 바로 단가 계산을 해서 역으로 질문을 한다거나, 향후 시장 점유율에서 확률을 물어본 뒤 왜 현재까지는 그렇게 가능한 점유율이 XX 년간 고전했는지 근거를 알기 위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미래에 대해서 질문하지만 과거의 분석적 근거가 논리적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투자사는 한 명의 전문가에게서만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전문가 관점에서 정보를 수집한다.

근거 없는 내 정보일지라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확실하면 투자사는 이해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정보는 이미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고 같은 분야에 다른 전문가에게서 이미 일부 정보를 이미 확보하고 있을 수 있다. 신뢰성을 확보하고자 다시 다른 전문가에게 묻는 것일 수도 있다.

관련 분야에 대한 이런저런 스토리텔링이나 내 감정이 들어간 이야기는 원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그 시장에서 내가 얼마나 몸담았고, 내가 어떤 걸 해냈고 그런 이야기를 전문가가 한다면 통역 중 듣지도 않고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사실 통역을 해보면 나와 상관없는 분야라서 모르겠다고 솔직히 바로 말씀하는 전문가도 있다.

만약 이런 경우는 중간에 전문가를 매칭해 주는 업체의 잘못이다.

투자사의 관심사와 전문가의 분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케이스이다.



누구나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면 모르는 것을 ‘모른다’라고 하는 것이 낯설어진다. 하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
진정한 전문가는 내가 잘 아는 분야와 내가 그렇지 못한 분야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놓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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