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고 싶은 순간 필요한 누군가의 한마디

그래도 당신은 나에게 최고야!

by 김지혜

"김지혜 씨 이제 그만 가셔도 돼요."

5년간의 경력 단절 이후 매번 단순한 통역만 하다 겨우 얻은 한 단계 높은 통역의 기회였다.

5년의 공백은 정말 잔인할 만큼 나의 실력을 깡그리 앗아가 버렸다.

그러다 얻은 기회였는데, 난 그렇게 통역 첫날을 말아먹고, 통역 교체라는 고객의 결정에 집에 가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VIP 수행과 통역을 하는 동안 나랑 함께 재기를 꿈꾸며 통역을 하던 은영이는 전시관 통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정말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그 순간,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실력에 순순히 집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 뒤 갑자기 고객은 다시 원래 계획했던 데로 다음날까지 통역을 진행해달라고 했다.

이미 잘릴 위기를 겪은 나로서는 모든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고객의 눈도 못 맞출 정도로 순간순간 견디기 힘든데 그럼에도 계속해달라니.. 정말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그때 옆 전시실에서 일하던 은영이는 나의 이런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는 한통의 문자가 왔다.

“언니! 누가 뭐래도 언니는 나에게 최고야!”

그 순간 바닥에 가라앉은 자존심에 힘들어하던 나를 정신 차리게 하였다.

'부족한 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책임과 최선을 다하자, 적어도 은영이에게 최고인 나는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난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했다고 은영이에게 말하고 싶었다.

마지막까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억지로 끄집어내며 통역을 이어갔다.

마지막까지 고객이 보내는 저주의 눈빛을 견뎌가며 일을 마무리하였다.

단 한 사람의 응원, 은영이가 내게 보내준 그 신뢰의 한마디는 3일 동안 나를 지탱해 주었다.


10년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도, 그날 은영이의 한마디는 문득문득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나의 도전이 힘들어서, 무언가 다시 시작하며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놓아 버리고 싶은 순간이 되면

은영이의 한마디는 내 머릿속을 맴돈다.

"그래도 나에겐 언니가 최고야!"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에게 난 최고였음 하는 기대와 신뢰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힘은 내려놓고 싶은 순간 나를 온전히 지탱하게 한다.


가정환경이 열악하고, 문제가 있는 양육 환경의 아이들은 어긋날 확률이 크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가족, 양육자, 혹은 그 누군가가 적어도 한 명은 그 아이를 믿고, 지지한다.

마치 은영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나처럼,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믿고 있다면 우린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바르지 않은 결정을 하고 싶은 그 유혹의 순간! 우리는 나를 믿는 그 사람을 떠올린다.

내가 이런 짓을 한걸 알면 엄마가 실망하실 거야! 은영이가 내가 포기 한걸 알면 실망할 거야!

단 한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는다.


고등학교 입학 후, 1년 정도 정말로 공부가 하기 싫었다.

나는 반에서 가장 떠드는 아이였고, 체육선생님이신 담임은 나와 함께 떠드는 친구 때문에 힘들어했다.

왜 그렇게 꼴통처럼 행동했는지 모르겠지만 고등

학교 1년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춘기 시절이었다.

당연히 나의 성적은 바닥을 기어 다녔다.

꼴찌에서 몇 번째 성적!

당시 성적표는 우편으로 날아왔다. 하교하자마자 엄마나 아빠가 보기 전에 성적표를 접수해야 했다.

'오늘쯤이면 도착할 텐데, 아직 안 왔나?'

이상하게 여기며 엄마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엄마에게 슬며시 물어봤다 “ 엄마 우편물 혹시 안 왔어?”

엄마는 눈도 맞추지 않고, “ 왔다”라고만 했다. 그리고는 아빠가 볼까 해서 얼른 치워뒀다고 했다.

그런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엄마의 한마디!

“네가 최선을 다한 거면 괜찮다!”

부끄러웠다. 난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그 정도가 나의 최선 일리 없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 그거 내가 공부 안 해서 그런 거야, 내가 공부하면 그 정도는 아니야!”

이후 난 나를 믿어주는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의 성적이 나의 최선이라는 건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이후 난 뒤에서 몇 번째이던 성적을 결국 앞에서 몇 번째로 올려놓았다.

엄마의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암묵적 응원은 나를 다시 달리게 하였다.


나는 알고 있다. 은영에게 나는 분명 최고가 아니었을 것이다. 나의 엄마도 그 정도가 나의 최선이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응원과 신뢰의 차원은 도대체 어떤 경지 인지 궁금하리 만큼 깊고 숭고하다.

엄마가 된 난 과연 나의 아이들에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내가 나를 믿지 않음에도 누군가 보여준 믿음은 스스로의 에너지를 찾게 만든다.


힘든 그 순간,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잠시 멈춰 생각나는 나의 단 한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또다시 부여잡고, 지탱하게 하는 이!

그들의 숭고한 믿음에 오늘도 나는 나의 도전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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