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라고 묻지 말자!

어차피 난 공감할 수 없다.

by 김지혜

첫째 아이 세 살, 둘째를 임신한 나는 아이와 함께 예방접종을 하러 보건소로 가고 있었다.

저보다 나이가 좀 더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뒤에 걸어오면서 말씀하신다.


“애들은 저 때가 젤 예뻐, 그렇지?” “맞아, 이젠 컸다고 엄마 말도 안 듣고 지들 맘대로 하고!'

"저 때는 애교도 부리고 예쁘잖아!”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인다.

“근데 그래도 저 때로 돌아가기는 싫어!”

“맞아 맞아.. 힘들었어.”


이 두 가지 멘트 중에 어떤 맨트가 정말 그 당시 나에게 더 좋은 말이 었을까?


1번 아이가 가장 이쁜 시절?

아니면

2번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육아 선배님들의 첫 번째 맨트를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육아에 임신에 힘들어서 이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고 살고 있구나. 아이가 얼른 크기만 바라고 살고 있었는데, 그렇구나! 이때가 젤 예쁘구나! 내가 엄마가 처음이라 몰라봤네, 미안해! 그 이쁨 몰라줘서 T T ‘


선배님들의 두 번째 멘트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어땠을까?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그들도 그 시절 나만큼 힘들었구나, 나만 별나고 모자라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나이라는 걸 더 먹은 그 시절에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건 젊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시절이었구나!’


선배님의 반전 멘트는 차라리 나만 힘들다고 투덜 대는 게 아니라 정말 힘든 게 맞다고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당시에 내가 느끼는 어려운 상황을 온전히 공감받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공감한다는 것이 그렇게 꼭 좋은 말만 하고 희망적인 말, 위로의 말만을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나는 친구가 힘들 때 참 쉽게 위로한다.

“힘내, 파이팅, 곧 좋아질 거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희망적인 조언이 힘이 될 거라 여기며 난 "파이팅"을 외친다.

생각해보면 이 말은 결국 ‘네가 감당해야 돼!’를 전제로 한다.

공감의 정의를 살펴보자. 화자의 감정과 같은 것을 함께 느끼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라고 한다.


육아 선배님들은 나를 보고 잠시 아이가 어렸던 시절로 돌아가 그 어려움을 똑같이 느끼는 순간 ‘아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공감은 내가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의 상황을 같이 느끼고 그 느낌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비슷한 상황을 겪었고 그 상황의 감정과 정서가 내게 남아 있다면 그래도 공감할 수 있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상황에서는 누군가에게 공감한다는 건 참으로 어렵다.


마치 나는 집안에 있고 친구는 추운 밖에 있는 것이다. 창으로 바라보면 움츠린 친구는 너무 추워 보인다.

나에게 친구는 추워 보일 뿐이지 난 춥지 않다. 한걸음 걷는 게 얼마나 죽을 것 같은지 절대로 집안에서 느낄 수 없다.

내가 보기엔 친구는 조금만 열심히 걸어오면 집안에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 빨리 친구가 집으로 들어와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어 보이는 친구가 집까지 올 기운이 남았는지 걱정된다. 그래서 물어본다 “괜찮아?” 그리고 “파이팅 힘내!”를 외친다.


난 힘든 친구에게 묻는다.

"괜찮아?"

그럼 친구는 대답한다.

“응 괜찮아!”

사실 이 질문은 ‘괜찮다’고 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입장에서 똑같이 느끼는 공감을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괜찮아?"라는 질문 아닌 질문으로 내가 안심하는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할 수 없는 난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질문을 하기로 했다.

“지금 어때?”

적어도 자기의 상황과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내가 공감할 수 없어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물음을 던진다면 거기서부터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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