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도 한번 본적도 없는 조상님 제사를 위해 나는 전을 붙이고 설거지를 하며 종일을 보냈다.
함께 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밥 먹는 잠시의 시간뿐...
누군지도 모르는 조상을 위해 이 고생을 하고 식어빠진 전을 먹는 것,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의문을 가지며 며느리로서 어설픈 명절 노동을 할 때면 정말 괴롭고 원망스러웠다.
결혼이란 걸 한 것도 바보 같았고, 나름 곱게 자랐는데 내가 안 하던 육체 노동을 해야 하는 것도 원망스러웠다.
결혼한지 15년, 내가 왜 이런걸 하고 있나? 왜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은 이미 안 한지 오래다.
결혼 초 그런 생각을 가지고 명절 노동(?)을 할 때면 자꾸만 화가 났다.
생각해 봐도 내가 그 노동을 해야 할 이해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 이후 그런 이유를 찾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냥 영혼 없이 전을 붙이고, 제사 준비를 하자! 라고 맘먹었다. 죽은 영혼이 먹는다는 부침개를 난 영혼없이 붙이는거다.
1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 나름의 일들이 익숙해 지고, 누군가는 또 결혼하고 며느리라는 이름을 가진 노동 분담을 할 이들도 늘어났다.
이젠 쓸데 없어 보이는 형식들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된다.
그 동안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 유독 심하게 보수적인 경상도 시댁의 허례허식은
그래도 며느리들을 위해 느리지만 차츰 합리화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형식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고집스레 제사를 지내는 부모세대와 나의 차이는 무엇인가?
생각 해보면 그 차이는 결국..
삶의 가치에 대한 기준점
우리는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
부모님은 그 가치를 과거와 미래에 두고 있다.
그들이 지내는 제사의 이유는 한마디로 ‘과거의 조상을 잘 모시면 미래의 후손이 잘 된다’ 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누군가는 내 미래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의 현실이 더 중요하고 내가 가진 미래는 결국 나 하기 나름이다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결국 그 생각의 차이로 제사는 나를 힘들게 하는 형식일 뿐이다.
명절 제사라는 형식은 나에게 세상 쓸데 없는 짓 이다.
정말 제사와 조상 모시기에 빠져 계시던 나의 아버지 조차도 그렇게 복을 누린 것 같지지 않다.
나의 아버지의 삶은 조상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막연하고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검증된 사례이다.
현재의 나, 또는 나와 비슷한 우리는 현재 함께 있다면 지금의 함께임을 누리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싶다.
복잡한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을 운전에서 오래간 만에 만난 ‘우리’이다.
적어도 함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과거의 누군가를 위해 현재의 나와 그 공간에 함께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바쁘다.
결국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함께 하지 못한다.
현재의 가치를 누리지 못하는데 과거의 누군가가 미래의 우리를 행복한 기억으로 남겨 줄까?
현재에 가치를 두고 사는 지금의 나에게는 여전히 그 시간에 차라리 함께 떠들고 놀았으면 좋겠다.
노동으로 힘들고 노동 후 쉬느라 서로 대화하지 않는 지금, 함께 한 시간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와 미래의 가치로 지금을 살아가는 부모님 세대를 보면 그들의 현재도 마냥 좋아 보이진 않는다.
지금의 내가 느끼는 이 현실을 오랫동안 겪어왔고 현재도 겪고 있으며 그들은 앞으로도 그렇게 살것이다.
지금의 부모세대의 삶의 가치는 더 이상 현재가 아니다.
그들은 현재의 그들을 위해서 살아가지 않는다.
과거의 조상들이 그들의 후손 즉 나와 나의 자식들이 더 잘 되게 도와 줄 것이라는 것에 가치를 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자가 와서 정말 그것을 먹고 가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식어빠진 부침개와 밥과 떡을 드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 종교인들 조차 제사 지낸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런 믿음이 제사나 차례라는 형식의 전통을 지속하게 하고 일부 종교에서는 그것을 거부한다.
믿지 않으면 거부할 이유도 지속할 이유도 없다.
지금의 부모 세대보다 젊은 나는 아직도 현재의 가치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나와 나의 아이들을 위한 그들의 애씀을 굳이 원망하고 싶지 않다.
본인들이 해 오던 오랜 전통과 허식일지라도 그들이 그것을 통해 그나마 지금의 나와 아이들이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을 거부한다면 그들에게 아마도 엄청난 불안감을 줄 것이다.
결국 그 허식에 내가 노동을 기여하고, 함께 있지만 함께 하지 못하는, 어떤 추억도 만들어 주지 못할지언정, 15년이란 세월의 고집스런 노동은 결국 부모 세대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익숙해 지지만 두려운 게 늘어난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보다 내게 의지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삶은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 내 맘대로 안된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깨닭게 해주며
내가 아무래 애를 써도 이루어 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적어도 몇 번씩은 겪으며 살게 된다.
내 현실의 상황들이 어찌되었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미래는 긍정적이었음 하는 바램!
괜찮을 거야! 좋아질 거야! 최선을 다했잖아! 라는 맘으로 현재를 살지 않으면 불안한미래로 현재도 힘들어진다.
지금 내가 희생하고 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조차 모르는 그 상황에서도 미래의 긍정을 위해서 그냥 최선을 다하는 부모세대의 삶의 방식을 이제는 거부하고 싶지 않다.
이해 하려 해도 이해 되지 않는 방식은 나를 힘들게 했다면 지금은 그냥 내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다른 그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싶다.
결국 그들도 그들만을 위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님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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