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트가 될 수 없었던 누룽지

간지 나는 영어를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던 통역사

by 김지혜

버터가 사르르 녹아서 먹음직스러운 따뜻한 토스트의 아메리칸 스타일 아침식사, 커피와 함께 여유롭게 먹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참 그럴사하다.

내가 영어 통역을 할 때 상상하는 나,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버터 바른 토스트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10년 넘게 이 일을 해오며 이제는 알고 있다.

나에게 그런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통역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중국어나 다른 언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냥 봐도 나에겐 없는 그런 아메리칸 간지 때문 아닐까?

난 지금도 통역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영어를 입 밖에 내는 것이 부끄럽다.

통역이 시작되면 나의 초 집중 상황이 시작된다.

그 순간 나의 그 모든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내 앞에 부끄러워야 할 사람들은 그 순간 보이지 않게 된다.

이 초집중의 순간이 내가 통역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심장이 쫄깃한 순간이다.


간지 나는 영어로 맛난 토스트 빵처럼 버터 바른 발음으로 멋지게 해내는 통역사들도 참 많다.

너무 멋있고, 부럽다.


내가 다르지만 유사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 때도 있다.

정말 어려운 통역을 했을 때, 기술용어가 아주 많은 기술 세미나에서 한국말 조차도 어려운 통역을 했을 때 고객들은 나의 노동자스러움과 수고스러움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 순간 또한 토스트스럽다기보다는 뜨거운 불 위를 견딘 누룽지스럽다.


물론 국내파임에도 잘 나가는 통역사들도 많다.

그 이유는 통역이 영어 외에도 다른 중요한 역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영어는 내게 제일 어려운 과목이다.

하지만 통역을 하다 보면 영어보다 더 어려운 한국어를 마주하기 일수다.

우리가 말하는 한국어의 특성, 문화, 문맥을 파악하는 것 또한 통역만큼이나 중요하다.

“눈치가 없다”는 상황을 고객은 통역을 못한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알아차리는 능력,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 또 다른 역량들이 필요하다.

고객이 하는 말을 소화하려 하지 않고 이해만 하는 습관도 중요하다.

무언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이야기 속에 빠지는 경험처럼, 우리는 그 이야기 속으로 자꾸만 들어간다. 그리고는 다음 이어질 이야기를 기대한다.

통역을 할 때 그렇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버리면 내가 들어야 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느라 방금 들은 이야기를 놓쳐 버린다.

즉 순간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아주 잠깐 사이에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통역사라면 나는 listening을 해야 하지만 listener가 아니다.

나는 전달자이지 듣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야기를 듣고 맘에 담고, 내 속에 그 이야기와 관련된 나만의 생각에 잠기거나 기승전결을 정리할 여유는 통역사에게는 없다.

순간 멍 한번 때리면 집중 못하는 통역, 말을 못 알아먹는 통역으로 낙인된다.


통역사는 수도 없이 듣고 담고, 쏟아내고 비우고를 반복한다.

앞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빨리 비워내야 다음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순발력과 빠른 정리 능력과 맥락을 알아차리는 것은 통역의 핵심 역량 중 하나이다.

이런 연습과 반복적 실행을 통해 습득한 역량이 버터 바른 토스트 느낌이 없는 내가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지 나는 토스트가 될 수 없다는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두 가지 중 결정을 해야하는 나와 마주했다.

어떻게 해도 그런 멋진 통역사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른 것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구수한 누룽지 같은 통역사로 살아갈 것인가?

토스트가 있어야 할 곳에 누룽지를 놓지는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은 존재했지만 내가 그래도 지속하기로 결정했던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난 여전히 이 일이 좋다.

여전히 나를 찾는 고객은 존재하고 그 고객을 지원하는 그 일에 있어서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토스트 위에서 녹아내리는 버터는 여전히 멋지게 간지 나는 아침식사다.

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토스트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절대로 멋진 누군가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은 절망일 수 있지만 내가 꼭 그 멋진 누군가처럼 될 필요는 없다.

지금 난 토종 누룽지지만 한국인에게 맞는 새로운 구수한 누룽지 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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