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 퇴원하는 날이었다.
퇴원 전에 신생아는 병원에서 주는 배냇저고리를 벗고 부모가 가져온 속싸개와 배냇저고리 입고 퇴원하게 된다. 신생아실에 준비된 옷과 싸개를 전해주면 갈아 입히고 퇴원 준비를 해준다.
둘째를 낳고 엄마와 떨어져 지냈던 첫째가 심한 열감기에 걸렸다.
퇴원 전 같은 건물의 소아과에 들러 감기 처방도 받아야 했다.
열이 나는 아이의 약을 받아 먹이고 병원 입구, 주차장에서 남편이 차를 몰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병원에서 전화가 온다.
둘째 아기는 새 옷을 입고 퇴원 준비를 했는데 엄마는 왜 데리러 오질 않느냐는 전화였다.
“아! 맞다, 이제 내게 아이가 한 명 더 있었지!
연구에 의하면 이런 출산 후 건망증 현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몇 달간 지속된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가 되면 건망증은 오래오래 지속된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우리는 아주 기억 상실에 가까운, 심한 건망증에 시달린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왜 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방을 열었는데 뭘 내려고 했는지 모르겠는 일은 아주 흔한 일상이다.
첫째 아이 6개월경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주차장으로 왔다.
6개월 아이는 카시트에 앉혀야 한다. 안전벨트도 해줘야 한다.
보통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과 팔로 아이를 안고 있다.
아이를 앉히고 안전벨트를 하려면 두 손이 필요하다. 핸드폰을 잠시 차 지붕에 얹어 두고 아이의 안전벨트를 해준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트럭이 자꾸 따라온다. 빵빵거린다.
언제나 그랬듯, 나의 운전 실력은 그렇게 누군가의 화를 부른다.
내가 운전하며 또 뭘 잘못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분명 나의 어설픈 운전 실력이 그를 화나게 했을 것이다.
빵빵거리는 트럭이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지만 옆으로 다가와 나에게 손가락질할까 봐 무섭다.
음악을 틀었다. 빵빵거림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화가 빨리 풀리기를 바랄 뿐이다.
빨간 신호에 걸려 결국 서게 되고 뒤에 트럭도 섰다. 트럭 아저씨의 빵빵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아저씨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좀 많이 무섭기 시작한다. 나의 음악소리를 묻어 버릴 만큼 아저씨는 심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줌마 차 위에 좀 보라고, 핸드폰”!
그제야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전화기를 차 위에 올려 뒀구나.’
"그래서 계속해서 트럭 아저씨는 나를 따라오며 빵빵해주었구나, 그리고 소리까지 질렀구나.'
나는 계속 그의 신호를 무시했다.
너무 부끄럽고 죄송했다. 그럼에도 무서웠다. 차를 나가면 아저씨와 눈이 마주칠 것 같았다.
그냥 창문을 내리고 손을 내밀어서 지붕을 더듬었다.
아저씨가 다시 소리친다. “거기 말고 뒤에, 아줌마!”
차에서 결국 내려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하고 차 지붕을 살펴보았다.
달랑달랑 차 위에서 떨어지기 직전! 아저씨가 갈길을 마다하고 그 핸드폰을 구해주기 위해 나를 따라온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러는 걸까?
출산을 하고 나면 우리는 모든 정신이 오롯이 아이에게 가 있다. 그 작은 생명체가 어떻게 될까 봐 초보 엄마들은 너무나 불안하다.
모든 생활의, 정신의, 삶의, 우선순위가 아이를 낳고 나면 바뀐다. 바로 그 아이가 1순위다.
영국의 한 연구팀의 조사에 의하면, 아기를 낳은 엄마는 처음 1년 동안 수면시간이 평균 700시간 줄어든다고 한다. 신생아 엄마의 64%가 하루 평균 약 3시간 30분밖에 못 잔다고 한다. 수면의 절대량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질도 형편없다. 수면이 마음과 육체를 회복시켜주는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결국 우리는 그렇게 들 떨어진 사람이 되어 간다.
우리는 누구나 세상의 중심이 나인 듯, 한때는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았다.
나의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가 된다는 건 어느 순간 내가 가졌던 이전의 삶을 다 잊고 사회와 단절된 채 외계어를 쓰는 아이와 단 둘이 있어야 한다. 모두들 열심히 달려가는데 나 혼자 멈춰 있는 기분이다.
나의 엄마는 그 힘들었던 육아에 대해서 왜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엄마에게서 나의 아기 시절 힘들었던 육아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왜 그럴까? 내가 해보니 이렇게나 힘든데…
아이가 자라며 나의 엄마도 그병에 걸렸구나 알게되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주인공인 자신을 내려놓기 시작했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모성이 그냥 붐 하고 생기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내가 나를 내려놓는 것도 참 힘들고, 어쩌다 내가 아이보다 더 우선하는 나 자신을 느끼면 죄책감을 느낀다. 아픈 아이를 보며 일을 하러 나간 나를 탓하고, 넘어지는 아이를 보고 내가 잠시 딴생각을 했다고 자책한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는 조금씩 잊어가고 누구의 엄마로서 더 많은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는 서서히 잊어버린다. 힘들었던 육아의 기억을…
출산 후 겪은 우리의 불치병, 건망증은 그렇게 평생 지속된다.
아이의 미소에, 잠자는 모습에, ‘엄마 따랑해’ 뭐 이런 어설픈 말 한마디에
자신도 조금씩 잊어가는 우리는 엄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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