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음 생의 바람은 단 하나 제니의 엄마가 되는 것
어느 날 갑자기 제니에게 메일이 왔다.
지금의 현실이 힘들다는 하소연과 뜬금없이 아이들 먹거리를 보내주겠다며 주소를 묻는다.
또 다른 나처럼 느껴지는 미국인 친구, 제니
나와 생긴 건 비슷한데 미국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제니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고 그때 난 그녀의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한 통역사였다.
그녀는 친부모님을 찾지 못했지만 아기 시절 1년 반 동안 자기를 돌봐 준 foster mother (보모)를 만났다.
당시의 보모인 엄마를 만나기 위해 제니와 함께 서울에서 대전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대전으로 가는 길!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왜 그랬을까?
우리는 순식간에 울며 웃으며 마음속 깊은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제니가 내게는 특별해진 것은..
우리는 동갑이고, 꾸미지 않는 외모에 평범하게 생긴 아줌마,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지나가던 사람이 길을 묻거나 말 걸기 쉽게 생긴 그런 아줌마다.
내가 통역을 하면서 몇 번의 힘들었던 고비를 생각한다면 그중 하나는 제니를 통역할 때였던 것 같다.
잠시 돌봐준 보모는 친부모가 아니기에 친부모를 처음 만나듯 감동, 감정의 동요는 없을 거라 여겼지만 누군가와 헤어졌다 만난다는 건 역시나 과거의 슬픔을 다시금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어느 순간 할머니가 된 엄마(foster mom)의 한마디..
“내가 너를 끝까지 키워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 한마디는 내 귀로 들어오고 다시 입으로 나오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통역사로서 머릿속에서만 움직였어야 할 단어가 가슴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입까지 몰라오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통역으로서는 아주 큰 실수인 그 상황이 아직도 제니에게 미안하다.
그 말을 빨리 들었어야 할 사람은 제니였다. 내가 그 말을 소화할 이유가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제니는 나와 아주 멀리 사는 베프가 되었다.
제니는 이후에도 그 엄마에게 꾸준히 메일로 편지를 보낸다. 그러면 나는 제니의 메일을 번역해서 프린트한 후 우편으로 보낸다.
제니가 엄마(보모)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난 제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고 나서 그 보모였던 엄마의 짧은 답변 전화를 받고 다시 메일로 제니에게 답변한다.
그렇게 난 제니와 계속 연결되어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날 한 모임에서 아이스브레이킹 질문으로 다음 생에는 어떻게 태어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의 답변을 생각하며 알게 되었다.
난 다음 생에는 제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는 것을…
난 내게 다음 삶이 어떤 삶이든 난 그녀의 엄마이고 싶다.
사실 이 생각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냥 동정심인가, 현실에서 제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생각은 분명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다.
더군다나 난 아이들을 잘 챙기고 아끼는 그런 이상적인 엄마도 아니다.
내 안에 ‘왜(why)’ 를 찾고 싶었다.
혼자서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나와 그녀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적어두고 한 달간 내가 그녀와 연결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를 써봤다.
나안의 어떤 감정이나 상황, 경험이 분명 제니의 무엇이 만난 것이라 생각하며..
내가 찾아낸 것은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공통점과 차이점뿐이었다.
나의 무엇이 제니와 연결되었고 그것이 내 안의 무엇일까?
입양아로서 과거의 삶을 가진 제니는 아기 시절의 기억이 없다.
친엄마를 찾지 못한 제니는 1년 반 돌봐준 보모(foster mom)에게 과거 자신이 어떠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자기가 떼 부리는 아이였는지 그래서 힘들진 않았는지, 많이 우는 아이였는지, 어렴풋이 기찻길의 기억이 있는데 혹시 기찻길 옆에 살지는 않았는지...
하지만 70이 넘은 할머니에게서 아주 오래전 1년 반이라는 시간은 많은 기억을 남겨 두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떨어진 사탕을 주워 먹던 일, 부서진 초콜릿을 받았다고 새로 사달라고 난리 쳤던 순간, 아빠와 엄마의 무릎에 앉아 있던 나,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은 이렇게 나에게도 아주 어렴풋이 단편적인 기억들만 존재한다.
그럼 제니와 내가 다른 건 뭘까.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내게는 있다는 것과 제니는 없다는 것이다.
난 언제든 물어보거나 오롯이 그 일을 통째로 간직한 그 누군가와 함께 하여 내 삶이라는 역사를 오롯이 세울 수 있다.
제니의 어린 시절은 통째로 사라져 버린 듯, 그 시절 어린 제니를 기억하는 이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나의 과거는 어떠했는가, 지금의 내 아이와 같았을까, 나도 그러했을까?
아마도 제니는 아이를 키우며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건 내 삶을 온전히 지탱하며 살아야 하는 순간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기억 없고 보이지 않는 흙 속의 뿌리에 대한 믿음은 다르다.
당연히 엄마와 아빠를 가진 내게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흙 아래 뿌리에 대해 굳이 궁금해하지 않아도 누군가 간직한다. 그리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제니에게는 아마도 보이지 않은 흙 아래 뿌리처럼, 저 깊은 흙속에 나를 받쳐 줄 뿌리는 존재하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했을 것이다.
어디에도 내세우기 부끄러운 그냥 보통 엄마 보다도 못한 내가 제니의 엄마가 되고 싶은 이유는 그것이었다.
절실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삶에 흐릿한 삶의 기억을 의심하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고 그냥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우린 모두 어른의 삶이 벅차다.
내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식이라는 이름의 어른으로 살아도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뭐하나 제대로 하지 않는 못난 인간임을 스스로 느껴가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나를 키우고 사랑하는 부모에게서 자란 나, 크게 아프지 않고 커가는 아이들의 엄마인 나는 뿌리에서부터 삐쭉삐쭉 자라도 뭔가 바람에도 폭풍에도 견딜 것 같이 자란 나무다.
제니 또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그런 버거운 삶을 지탱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니가 맞닥뜨린 폭풍은 뭔가 그녀를 한없이 흔들어 놓을 것만 같다.
삶의 과거를 찾지 못한 주름진 아이지만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제니의 엄마가 되면 꼭 말해주고 싶다.
잘 살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저 뿌리 깊은 곳에 너와 내가 함께한 우리의 삶이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