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육아!경력 단절 후 사회로 나온 첫날

나는 이런 하루를 보냈다.

by 김지혜

2010년 11월 29일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5년 만에 다시 일을 하러 나왔다.

5년간 타인들이 바라본 나의 휴지기, 일을 쉬었지만 난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4시간의 통역일

오래된 정장을 다시 꺼내 입었다.

나의 왼팔 팔뚝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겨우 끼워 넣었다.

5년간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었다 놓았다 하는 나의 왼팔만 마동석이다.

슬리퍼나 운동화를 신다가 정말 오래간 만에 구두를 신었다.

내 발이 이렇게나 두꺼웠나, 부은 건가?

그렇게 구두를 신고 마치 당당한 커리어 우먼처럼 걸어 본다.

버스를 탔다.

뭔가 신경 쓸 일 없이 창밖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니... 졸리면 잠시 잠을 자도 된다.

이런 게 삶의 여유인가!

버스를 내려 미팅 장소로 가는 길.

사람들은 참 바빠 보인다.

사람들이 바람처럼 내 옆을 지나간다.

내가 이렇게나 걸음걸이가 느렸나!

항상 느릿느릿, 아이의 걸음에 맞추어 걸었던 난 이젠 빨리 걷는 법을 잊어버렸나 보다.

아이의 걸음에 맞춰 느릿느릿 걷거나 아이의 긴급 상황에 뛰거나…둘 중 하나만 했구나!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겨 놓고 한 시간이나 일찍 왔다.

아이 재워놓고 졸린 걸 참아가며 밤마다 공부했던 용어와 단어들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다른 통역사들도 보인다.

그들은 이 일을 많이 해 온 듯 멋져 보인다.

나도 다시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내가 통역할 외국인을 만났다.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를 보며 회사에 대해 설명해준다.

내 눈을 보며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게 얼마만인가.

사람들이 나의 눈을 쳐다보며 저렇게 진지하고 중요한 사업 이야기를 해주다니..

마치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거 같다. 이 사회에서 내가 필요한 사람인 거 같다.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진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집중력이 흐려지면 사람들의 메시지를 놓친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지난주부터 공부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 그래도 내가 감을 잃지 않은 건지 통역이 가능했다. 다시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의를 하다 나의 고객이 생수를 마시고 뚜껑을 열어 놓은 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통역을 하려면 집중을 해야 하는데 생수를 쏟을까 불안해 집중할 수가 없다.

뚜껑이 열린 생수나, 모서리에 있는 컵의 물, 5년간 아이와 함께 하며 그런 상황에서는 100프로 아이들은 물을 쏟는다. 나는 너무 불안하다. 대화에 집중할 수 없다. 저 생수 뚜껑을 닫아야만 한다.

통역을 이어 나가며 나는 자연스럽게 물과 컵을 정리하는 척하면 뚜껑을 닫았다.

고객이 약간 이상한 듯 쳐다보긴 했지만 그래도 난 뚜껑을 닫아야 만 했다.

이제 마음이 놓인다. 이제야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사고 없이 무사히 넘기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테이블에 도시락이 배달되고 내 밥도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비빔밥과 반찬들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난다.

내가 이 밥을 오롯이 나 혼자, 1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누릴 수 있다니….

내 배속을 채우기 위해 빨리 먹지 않아도 되고, 먹고 싶은걸 골라먹어도 되고, 어느 걸 먼저 먹을까 고민해도 되고, 영양가 좋게 이쁘게 차려진 이 음식들이 다 내 거다.

그리고 한 시간이나 나에게 차근차근 먹으라고 시간을 주다니…

눈물이 자꾸만 고여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렇게 머리를 처박고 감동의 내 비빔밥을 20분 이상 누렸다.

밥을 먹고 커피도 누리고 싶었다. 남은 30분은 식은 커피를 원샷하는 게 아닌 따뜻한 커피를 조금씩 마셔보는 호사도 누리고 싶었다.

오늘 하루 내가 마주한 누군가의 일상은 나에게 감동이었다.

다른 통역사들이 보인다.

다른 통역사들이 어떻게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일을 하는 사람들과 친구도 만들고 싶다.

미소로 말을 걸어봤다.

약간 귀찮아하는 듯 대답한다.

저 사람이 인간성이 더럽겠지..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반응이 별 차이가 없다.

기분이 더 나빠졌다. 친구를 만들기는 어렵나 보다. 5년 사이에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변했나?

내가 친구 사귀는 법을 잃어버렸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무뚝뚝해진 걸까?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100년 만에 한 화장을 고쳤다.

거울에 비친 나, 그리고 그 옆에 다른 통역사의 모습.

알 것 같았다. 왜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대했는지..

오래된 유행 지난 정장, 그 속에 겨우 끼워 넣은 나의 팔뚝, 촌스런 머리, 10년 된 구두, 낡은 가방, 100년 만에 시도한 촌스러운 시골 아줌마 같은 화장

이런 내가 말을 건다면 누가 답하고 싶을까, 누가 친구가 되고 싶을까, 동정하지 않는다면, 안타까움이 들지 않는다면 누가 굳이 나와 함께 하려 할까,

난 이러지 않았다고 라고 이야기해본들 무슨 소용인가, 지금 난 이런데…

그렇게 꿀꿀한 기분으로 혼자 커피를 마시는데 착해 보이는 친구가 말을 걸어 주었다.

정규직 일을 관두고 프리랜서를 막 시작했다고 했다.

그럼 나와 비슷한 건가?

사회 친구가 생긴 거 같아 좋았다.

하지만 집에서 아이들과 대화만 하던 난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잘 모르겠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뭔가 사회 부적응자 같은 느낌이 든다.

뭔가 상대가 내 이야기에 흥미가 별로 없는 거 같은 표정이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두서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던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사람이었던가,

성인과 대화할 수 있는 소통 능력을 상실한 거 같다.


오후의 통역이 시작되었다.

very high라는 단어를 "엄~청 높다"라고 해석했다.

아! "상당히 높다"라고 하는 게 나았는데.... 아이들과 대화하면 "엄~청"이라는 말이 나의 일상 강조의 표현이 되어 버렸다.

"영향"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분명 아주 간단한 단어인데 머릿속에 맴돌기만 할 뿐 내 입으로 나오질 않는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단어인데..

내 머릿속에서 Information이라는 단어가 influence라는 단어를 입까지 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듯하다.

업체 관련 학습은 했는데.. 어려운 용어는 다 외웠는데 기본 단어를 망각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기본 영어도 안 되는 사람같이 느껴진다.

역시 난 그냥 집에 있어야 했나!

고객도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듯하다.

다시 외국인을 위해 통역을 한다는 기쁨에 집에서 전통 문양 열쇠고리 선물을 가지고 왔다.

새로 찾아온 기회에 고마워 준비한 선물을 외국인에게 건넨다.

마치 내가 제대로 잘 해내지 못한 것을 선물로 때우는 거 같이 느껴진다.

선물을 주는 내가, 별거 아닌 걸 전하는 내가 더욱 부끄러웠다.

누군가의 일상은 원래 내 것이 아닌 듯 느껴진다.

자신감이 더욱더 사라진 난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기 힘들다.

사람들도 "너는 이곳에 왜 나왔니" 하며 나를 보는 것 같다.

이 사회가 다시 필요로 하는 내가 되고 싶다. 그들이 누리는 일상을 나도 일상처럼 누리고 싶다.

난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난 과연 다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두 아이 육아로 5년의 경력 단절 후, 다시 프래랜서로의 꿈을 꾸며 사회로 나온 첫날의 일상과 그날의 기분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프리랜서로 안정되게 일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오래된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의 비빔밥을 아직도 기억하며, 그날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 빠르게 바람처럼 지나가던 사람들의 뒷모습

난 이제 그때의 누군가와 똑같은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어느 정도 독하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올 수 없었을 겁니다.

그만큼 힘들었습니다.

사회로 나가려는 나를 원하지 않는 시선과 너무나 부족하게 느껴지는 나, 두 가지를 견디고 극복해야 했거든요.


경단녀는

한때 일을 잘하던 직원이었고,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잠시 나의 직업과 일을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책임감이 높으며

소통이 쉽지 않은 작은 생명체를 인내하며

다양한 성격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배양 한 준비된 인력입니다.


누군가 육아로 경력단절 후 아주 촌스러운 모습으로, 아주 어설픈 실력으로 재취업을 꿈꾼다면 믿고 응원하고 조금만 기다려 주면 좋겠습니다.


그녀가 다시 원래의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오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Kmbopqj0xY


https://www.youtube.com/thewiser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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