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편적 스토리는 아이의 생각을 멈추게 한다.
어른의 불완전한 이야기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고 호기심의 문을 닫아버린다.
영어로 진행되는 청소년 국제 교류 프로그램의 퍼실리테이터로 일을 했다.
다양한 국가의 청소년들과 한국 청소년 간의 토론을 이끄는 퍼실리테이터 역할이다.
토론 중에 한국 학생 현준(가명)이는 인도 학생 프리야(가명)에게 질문했다.
현준이가 영어로 물어본 질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인도는 거리가 엄청 더럽다고 하더라. 많은 사람들이 집에 화장실이 없어 밖에 나와서 똥을 싸고 들어가고, 거리에는 소들이 돌아다니고 아무 데나 똥을 싸고 다닌다 던데 맞냐?”
인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고등학생 현준이는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인도의 모습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현준이 엄마는 잠깐의 경험 혹은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로 인도라는 국가를 정의하고 현준이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누군가의 단편적인 경험으로 한 국가를 일반화해버린 것이다.
현준이 엄마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한 국가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호기심과 기회를 보는 눈을 가려버렸다.
우리는 흔히들 개발 도상국에 대해 편견을 가진다.
물론 편견이 아니라 단편적인 사실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사실은 한 국가가 가진 모든 스토리의 단편에 불과하다.
흔히들 코끼리 다리만 만지고 코끼리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 마냥 말하는 것과 같다.
내가 중국에 근무할 당시, 은행 계좌를 오픈하기 위해 21살 중국 직원 장리와 은행에 방문했다.
한국의 은행 시스템에 익숙한 나로서는 너무나 느리게 느껴지는 은행의 행정 절차에 화가 났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조금씩 흥분했고, 나는 장리에게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시스템이 얼마나 잘 발달되어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빠르게 업무가 처리되는지를 구구절절 자랑하듯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들은 장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도 곧 그렇게 될 거야”라고 했다.
당당한 그녀의 대답에 순간 내가 한국의 시스템을 자랑하며 중국의 선진화되지 못한 상황을 비하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중국은 내가 근무하던 당시와 비교한다면 정말 빠르게 성장했다.
금융 핀테크는 이제 한국을 훨씬 앞서가고 있다.
내가 한국보다 발전하지 못한 어느 단편적인 사실을 언급한 그때, 당당하게 답했던 장리,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그게 현실이 되어가는 중국을 바라보며 내가 얼마나 작은 단편으로 중국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는지 반성했다.
그때의 나처럼 현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도의 일부 상황을 인도 전체로 가정하며 질문한다.
나는 인도인 프리야가 내가 중국서 만난 장리처럼 당당하기를 바랐다.
질문을 받는 내내 인도인 프리야의 표정을 살폈다.
프리야는 당황하지도 않고, 장황한 질문에 대해 수긍하며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프리야의 대답은 현실을 부정하지도 왜곡하지도 않았다. 또한 그런 자국의 현실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프리야는 인도의 빈부 격차에 대해 설명했다. 집에 화장실이 없는 빈민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하였다. 하층민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태도로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음을 설명한다.
부모에게서 들은 인도의 작은 단편을 인도라고 생각하고 눈을 가려 버린 현준이에게 또 다른 눈을 뜨게 해주고 싶었다.
프리야의 설명이 끝나자 나는 프리야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프리야에게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에 대해서도 알려달라고 했다.
프리야는 벵갈루루의 발달된 IT 기업들과 물가와 발달된 도시에 대해 알려주었다.
인도에 대한 작은 단편을 인도라 여기는 현준이에게 벵갈루루의 이야기로 인도를 보는 눈을 다시금 뜨게 되길 바랬다.
나는 글로벌 비즈니스 업무를 지원하며 미국에서 성공한 많은 인도인들을 만나왔다.
여전히 인도 영어의 악센트가 남아있는 미국 내 인도인들은 성인이 되어서야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말이다.
그들은 수많은 크고 작은 글로벌 기업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고 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인도인은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설득력이 뛰어나고 상대를 설득하는 협상력이 우수했다.
우리가 아는 세계 유수 기업에서 수장의 자리에 많은 인도인이 자리 잡고 있다.
‘흙수저’, 가난한 집안 출신인 구글의 CEO 순다르 피차이, 어도비시스템즈의 샨타누 나라옌 CEO,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IBM의 아르빈드 크리슈나, 이렇듯 알만한 기업의 CEO 자리에는 인도인들이 있다.
이런 인도의 또 다른 면을 알지 못한 채 빈민의 삶에 대해서 일반화해버린 현준이는 과연 멀어진 눈을 뜰 수 있었을까?
많은 성공 사례와 신화를 보며 살고 있는 인도의 청소년 프리야는 인도의 어두운 단편에 대한 질문에 기죽지 않았다. 프리야의 당당한 모습은 중국에서 만난 장리와 다르지 않았다.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작가의 TED TALK [The Danger of a single story(단편적 이야기의 위험성]은 어른들이 말하는 단편적 이야기와 편견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TED TALK에서 그녀는 개인과 국가에 대해 단편적인 이야기는 그곳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엄마가 전한 하나의 이야기는 아이에게 유일한 정의가 되어 버렸다.
그런 어른의 불완전한 이야기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고 호기심의 문을 닫아버린다.
특히나 아이들은 더욱 쉽게 어른의 생각과 말에 물들어 버린다.
아이를 대하는 우리가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내가 마주하는 단편적 경험과 불완전한 이야기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삶이 지속되는 한 어떤 이야기도 단편적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호기심의 끈을 놓지 말고 더 많은 탐구와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나 보다 더욱 글로벌 세상에 살아야 할 아이의
글로벌 마인드의 눈을 가리는 부모가 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