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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Oct 17. 2019

30. 반짝반짝 빛나는

당신이 화양연화는 지나갔나요?


 

사람은 누구나 반짝거리는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을 흔히 '전성기'라고 한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희진은 옛사랑 진헌을 만나기 위해 모진 병을 이겨내고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그의 곁에 있어도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한다. 모두가 반짝거리는 시절이 있는데, 난 이제 지난 것 같다고. 더 이상 반짝거리지 않는다고. 그러자 당시 혜성처럼 나타난 혼혈배우 다니엘 헤니가 맡은 헨리가 아직도 기억에 콕 박혀있는 대사를 한다. "You still shine." 넌 여전히 빛나. 하지만, 희진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헨리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대상으로서 그녀가 빛나 보였던 거고, 희진은 개인으로서 혹은 여자로서 자신의 화양연화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의미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만의 화양연화, 즉 전성기가 끝났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끝날 걸 알면서도 안 끝난 척 행동하는 사람도 있고, 이제 늙을 일만 남았다며 자포자기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30대, 40대, 아니 50대를 넘어서도 화양연화를 다시 한번 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성기가 끝난 건 아닐까 자꾸 의구심이 불쑥불쑥 올라오면 아무것도 집중할 수가 없다.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다. 희진의 대사처럼 물리적으로, 절대적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화양연화도 있다. 이쯤 되면 모두 다 알겠지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데 막 낭비하는 "젊음"이다. 물론 그 시절이 불행한 사람도 있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시절, 당신의 모습은 아무 치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반짝반짝거려 눈이 부실 지경이다. 다만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하고 싶은 걸 하고 무작정 부딪혀 보고 경험해야 정신을 차리는 20대를 거쳐 30대가 되면 - 한 길만 걸었다면- 조금이라도 성과를 보게 된다. 외적인 성과와 내적인 자신감이 결합하면 그 반짝거림은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다. 외모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이다. 이 자신감이 계속해서 오래갈 줄 알았다. 마치 30대가 계속 될 것처럼. 


40대가 되니 아무리 외적인 성과가 높아도 내적인 자신감은 반비례한다. 어린 데다가 아이디어까지 반짝거리는 후배들과 일하면 어느 한순간에 나만의 빛이 스러져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그렇게 반짝거리는 데 더 반짝거리는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다니, 후배님들,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물론, 예쁘고 부러워서 하는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액세서리를 잘 착용하고 다니지 않았다. 일할 때 신경이 많이 쓰여 귀찮은 적이 많았다. 귀걸이는 귀에 박히는 게 아니면 걸리적거려 하지 않았고 반지는 껴봤자 손 씻다가 잃어버려서 어느 순간 안 하게 되고, 목걸이는 이물감에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 그런 것 따위 없어도 나는 나로서 충분히 반짝거렸으니까.    


하지만, 이제 왠지 조그만 액세서리라도 달고 다녀야 그나마 밤바다에 저 멀리서 희미하게 점멸하는 등대만 한 빛이라도 날 것 같다. 가지고 있던 반지를 껴보니 마음에 안 들고, 팔찌를 세트로도 사보고, 목걸이도 사 본다. 싸다고 사서 해 보면 그나마 있던 빛이 아예 꺼져버리는 것만 같다. 그런데 또 큰 돈은 지를 배짱과 능력이 없으니 패키지로 할인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웃긴 건 그것도 한 철이라는 것이다. 결국 귀찮아 다시 어딘가에 처박아둔다. 


지난주에는 손가락을 보다가 실반지를 끼고 싶은 마음이 훅 커져버려 주얼리 코너에 무작정 갔다. 오후 2시인데 개시도 안 했다는 직원은 지난번에 목걸이 체인 사러 갔을 때도 똑같은 대사를 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할인의 순간. 만원씩, 만원씩 점차 내려간다. 그런데 지난번 목걸이 체인만큼 할인율이 좋지는 않다. 이런......


손가락이 굵어 인터넷 쇼핑에서 파는 치수 중에는 어림도 없다. 쉽게 휘어지지 않을 만큼의 굵기로만 두 개를 주문했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 드디어 연락이 와서 찾으러 갔다. 그 자리에서 바로 끼어봤다. 손가락이 부을 때를 대비해 반 치수 크게 맞췄더니 좀 남아돌지만, 뭐 어때, 질리면 목걸이 펜던트라도 하지 뭐. 


밖으로 걸어 나오는 내내 반지 낀 손가락을 자꾸 움직여본다. 조명에 반짝이라고. 내가 빛나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겁을 먹지는 않을 테다. 잘하고 있다고, 잘 적응해가고 있다고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해줄 거다. 이게 뭐라고. 반짝거리니 기분이 좋은 거 보니, 나의 화양연화가 돌아왔을라나? 에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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