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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Mar 05. 2020

31. 일상이 깨지니

전염병'따위'가 아니었다. 다른 나라에서 시작된 이 죽일 놈의 전영병은 세계화되어가고 있다. 그에 따라 모두가 영향을 받고 있다. 크게 봐서는 국가가 휘청거리기도 하고, 사라지나 싶었던 국수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폭력과 차별이 난무하다.


작게 봐서는 내 일상까지 흔들리고 있다. 한 달 전, 익숙하던 동네를 벗어나-그래 봤자 아는 사람은 없지만-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가르치던 아이들을 많이 정리했다. 그리고 이제 새로 시작하려고 하는 시점에 이놈의 전염병이 모든 걸 멈추게 했다.


교육청에서 휴원 권고 문자가 오고, 학부모님도 걱정을 하시길래 2월 마지막부터 계속 휴원 중이다. 모든 영세 자영업자가 그렇듯이 여유돈이 있는 상태에서 사업을 하는 게 아니기에 매우 힘들다. 그나마 나는 학생 수라도 적고, 다른 소득원이 조금이라도 있으니 견딜 수 있지만 오래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학생수가 많은 친구는 대출을 알아봐야 될 것 같다고 고민 중이다.  보습학원 원장은 수업을 중단하니 월세에, 관리비에, 강사 월급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모두 힘드니 어디 가서 힘들다는 하소연도 할 수 없다.




한 장에 오백 원 하던 마스크는 천오백 원이면 아주 싼 거고, 만원이 훨씬 넘는 것도 이제는 품절이 부지기수이다.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애를 쓰고 있지만 실제적인 효과가 시장에 닿으려면 아직 멀었다. 며칠 전 마음먹고 아침에 동네 약국을 다 돌아다녔지만 나는 너무 게으른 사람이란 걸 깨달았을 뿐이다.


동네에 있는 하나로 마트에 갔더니 오후 두 시에 판매 시작이라고 해서, 택시를 타고 다른 동네에 있는 하나로 마트에 갔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줄을 섰지만 마스크를 써도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얼마 안 가 직원이 나오더니 39명밖에 못 준다네. 운동삼아 걸어와서 한 시쯤 다시 동네 하나로 마트에 갔더니 다 팔렸다는 거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앞에 할머니  분이 여기 직원이 분명히 2시에 오라고 그랬는데  그런 소릴 하냐고 호통을 쳤다. 나도 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보다 높아 보이는 그분은 건물 안에 사람들이 북적댄다고 건물주인지 어느 곳인가가 면박을 줘서 그냥 팔았다는 것이다. , 이게 말이야, 방귀야?  받지 않으려고 감정조절을 엄청나게 했지만, 결국 집에 와서  장에 천오백 원짜리 마스크  개를 주문해버리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나는 몸이 으스스해서 보일러를 엄청 틀어놓고 잤다. 감기라도 걸리면 억울할  같아서.


이렇듯 당연하던 일상이 깨지니 자꾸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꾸준히 하던 만보 걷기도 하루 이틀 거르고, 스트레스에 자꾸 먹으니 살이 찐다. 독서도 안 하고 자꾸 멍하게 TV 앞에 앉아 재방송만 보고 있다. 엄마 말대로 진짜 TV보다 망할 것처럼.




다행히 임계점이 왔는지 며칠 전부터 정신을 차렸다. 하루 만보 걷기를 다시 시작했으며, 먹는 양을 줄였고, 읽다 만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내 의지는 곳곳에서 꺾일 준비가 되어있다. 현재 내 수중에 있는 마스크는 한 개다. 아직도 발송 전인 마스크 주문을 보고 갑자기 열이 올라서 읽던 책을 내팽개치고 싶다. 후우.


이런 일이 생겨야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는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라도 어렵게 교훈을 얻어야 또 정신을 차리는 게 나라는 인간인데.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라지 않으리라. 어렵게 얻은 평화를 전염병 따위에 뺏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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