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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Jul 28. 2020

32. 이런 책이 있었더라면

- 산책 중 떠오른 단상

어릴 때 부모님에 관한 정보가 담긴 책이 필독도서 목록에 들어있었다면 어땠을까?


엄마와 아빠에 대해 각각 따로 담은 책. 


제목은 '엄마입니다. 이해해주세요.', '아빠입니다. 말 걸어 주십시오.' 쯤으로.


전국의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은 모두 부모의 인생의 시기에 대한 내용을 다룬 책을 최소 두 권 이상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 



- 당신의 엄마는 지금 '갱년기'라는 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러니, 당신이 무작정 대화를 거부하고, 짜증을 내고, 밥도 먹지 않고, 집에 들어오고 싶지 않은 그 생각을 엄마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엄마를 방해하지 마세요. 


-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밥해주고, 당신의 짜증을 받아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과 같은 시간을 겪은 적이 있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다가오는 겁니다. 


- 아빠는 지금 회사에서 승진의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까딱하다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밀려날 수도 있고, 이직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얘기를 미성년자인 당신과 의논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어느 밤, 술냄새가 잔뜩 나는 몰골로 당신 방문을 열고 하염없이 지켜보거나 자고 있는 당신의 얼굴을 어루만져도 짜증은 삼가 주십시오. 아빠는 나름 당신을 보며 참아내고 있는 중이니까요.


- 지금 엄마는 모든 게 귀찮은 상태입니다. 50여 년을 열심히 살았는데 잠깐 쉬고 싶다는 게 그렇게 큰 문제입니까? 허리 아프다고 그러지 말고 운동을 해라. 밥맛없다 그러면서 단팥빵은 왜 먹냐. 엄마도 그 전에는 열심히 운동했고 밥맛만 좋았습니다. 그저, 지금은 그런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니 잔소리하지 마십시오. 엄마가 그래 줬듯이 당신도 엄마 손을 잡아주는 걸로 위로가 됩니다. 


- 기억이 안 나 어버버 거리는 엄마/아빠를 답답해하지 말아 주세요. 엄마/아빠도 당신보다 기억력이 더 짱짱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다만, 뇌를 하도 많이 써버려 이제는 메모리 용량이 조금 떨어지는 것뿐입니다. 엄마/아빠가 유명인 얘기를 하면서 성을 잘못 붙이면 지적질하지 마시고 고개만 끄덕여주세요. 엄마/아빠는 자신이 똑바로 얘기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젊은 우리도 그런 실수 한 번쯤은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말입니다.


그랬다면, 그랬다면 말이다. 


여름에 속옷도 안 입고 모시 속옷만 입고도 땀을 '콩죽'같이 흐르는 자신을 지겨워하는 엄마를 보며 희한하다고 놀리지 않았을 텐데. 


어떤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데, 그 물건 이름이 기억이 안 나 저기, 뭐냐 하면서 계속 내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소리 지르지 않았을 텐데. 


다리가 그렇게 얇아지면서 왜 운동도 안 하고 누워있기만 하냐고 소리를 질러도 들은 척도 안 하는 엄마를 보며 답답해하지 않았을 텐데.


밤을 새워도 끄떡없었는데 이제는 몇 시간만 집중해도 쉬이 피곤해지는 내가, 절대 엄마 나이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나이가 되어버린 내가 이제야 떠오른 아이디어.


결혼도 하지 않은 자식도 낳아보지 않은 내가 엄마라는, 아빠라는 인간을 이제야 아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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