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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Feb 12. 2022

즐겁게 그림책 읽기

그림책은 대부분의 경우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어른들이 ‘즐겁고,’ ‘행복한,’ ‘아름다운,’ 혹은 ‘순수한’이라는 수사를 사용한다. 이런 말들은 아마 그림책을 읽었을 때 일반적으로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느낌이 사실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며 이에 도달하는 경로도 단순하지 않다. 즐겁고 행복한 내용의 동화를 읽으면 바로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슬픈 내용의 그림책을 읽은 후에는 슬프다는 느낌만이 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그림책을 읽으며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즐거움인 것이 확실하지만 이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림책이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따지면서 읽어야 한다’(read and think critically)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말하자면 평론가처럼 읽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따지면서 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동화, 백설공주를 읽으며 백설공주가 몇 번 계모 왕비의 술책에 속아 넘어가는 지점에서 ‘아, 백설이가 또 당하는구나,’ 라거나 ‘백설이는 왜 이렇게 답답해!’라는 반응을 넘어서야 한다. 백설공주 이야기 밖으로 나와 이 이야기, 허구가 만들어진 주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것과 이야기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비평적 읽기의 간단한 예가 된다. ‘백설이가 이번에는 안 속겠지’ 하다가 다시 또 그야말로 대대적으로 속아 넘어가 독사과를 삼킨 채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백설아, 생각을...’ 하다가 멈추고 ‘고귀한 공주는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인가?’ ‘백설이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왜 난쟁이이며 일곱 명인가?’ 등으로 이야기 세계의 감정의 문을 열고 나와 인식의 세계로 뻗어 나오면 된다. 그것이 따지는 읽기의 핵심이다. 

     

이런 따지기가 따듯한 동화의 내용에 편안하게 빠지는 기회를 뺐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감정적 읽기와 더불어 비평적 읽기를 자연스레 해왔으면서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따져보는 것이 인간의 기본 지적 능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읽기가 모든 연령에 다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아요. 머리가 굳은 어른들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라고 유머성 펀치라인을 날릴 수밖에 없다.  

    

비평적 읽기는 읽는 이가 혼자 하는 추론과 이에 이은 자연스러운 조사, 예를 들어 일곱 명의 난쟁이에 관해 조사해 보는 것 등이 따를 수 있고, 한 사람 이상이 이 읽기에 참여한다면 다양한 토론이 곁들여지며 따지는 읽기의 외연은 무한히 넓어질 것이다. 

    

이런 비평적 읽기는 그림책 속의 그림 읽기에서 그 묘미가 더해진다고 할 수 있다. “시각 디자인 문법” (grammar of visual design)이라는 용어가 말하듯 그림도 말의 경우와 같이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법칙에 의거하여 표현되지만 글보다 더 복합적인 의미 혹은 상징들을 담고 있어 더 깊은 개인적, 사회적 분석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림책의 그림을 잘 읽기 위해서는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의 역사(Art History)를 좀은 알아야 할 듯하고 거기에다 시각 이미지 디자인(Visual Image Design)의 속내를 또 좀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외에 기호학(Semiotics), 도상학(Iconography) 뿐 아니라 지각과 관련한 심리학까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정론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름조차 어려운 학문을 해봤을 리 없는 일반인들은 그림책 표지 한 장도 제대로 넘길 수 없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다행히 이런 “일반인”들은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아동문학과 문해력 교육을 연구하는 프랭크 세라피니(Frank Serafini)가 간단히 정리한 관련 가이드를 빌려 볼 수 있다. 그 가이드에 의하면 그림책 독자는 먼저 그림을 

1. 기본의 자연적인 의미로 생각해보고, 

2.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사회 속에서 통상 이해되는 의미로 생각해보고, 그리고 

3. 그 그림이 만들어진 사회 문화적 배경 속에서 그 그림이 표방하는 내재적 의미를 종합하여 이해해보는 단계를 거치면 된다.  

    

이 세 가지도 얼핏 보기에는 까다로운 것 같지만 1, 2번은 평소에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하는 기호 이해 행동이고, 평균적으로 3번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식적으로 시도하면 이도 결코 어렵지 않다. 작가가 미리 설정해 놓은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자기의 세상과 연결하여 ‘따지면서 생각’만 하면 된다.      

 

위의 세 단계에 더하여 그림책 속의 시각 이미지와 디자인 요소를 찾아보도록 만든 세부적인 그림책 탐색 항목도 있다. 위의 1, 2, 3번과 동시에 적용되는 것이라 보면 된다. 

이 항목들은, 

1. 책의 크기, 외형판의 모습, 종이 재료 등과 글 내용의 관련성 

2. 작가의 다른 그림책에 대한 이해

3. 책 표지, 속표지 등에서 전해지는 메시지

4. 표지 삽화의 재료(펜화, 수채화, 유화 등)

5. 글과 그림이 페이지에 놓인 모양새

6. 그림 페이지 설정(한 페이지, 두 페이지 스프레드, 꼴라쥬, 인물화 등)

7.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림 속 이미지들의 사이즈의 변화

8. 책의 디자인과 내용의 연관성

9. 주로 사용된 색의 유무, 패턴화 된 이미지의 유무, 비정상적으로 표현된 이미지 유무, 페이지 포맷(여백 유무 등), 이야기 내용의 표현 방법(사실적, 은유적 등)이다.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를 합해 실전 투입용으로 만들어진 표는 더 간단하다.

1. 그림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인지, 

2. 그것이 해당 그림책 속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3. 이것이 결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공책 한 페이지에 표를 실제 만들어 놓고 공란을 채워가며 그림책을 읽어보면 그런 것들을 몰랐을 때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도 이런 방식으로 구체적으로 그림책을 읽도록 도와주면 혼자서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며, 즉 비평적으로 읽는다고 하니 일반 사람들도 못할 리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의사소통을 해왔다면 그림 읽기도 말과 글의 이해 정도만큼은 저절로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과 글을 주 소통 도구로 배우고 익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이라는 시각적 기호로 소통되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이런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다. 또, 말을 하고 글을 읽듯이 그림도 읽는 것(연습)이 무엇보다 많이 필요하다고 보면 된다. 그림 읽기 연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림책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많은 이미지가 보내오는 뜻을 읽게 되고 약간은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 읽기 '연습'이 평상적인 그림 읽기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 와중에 깨닫는 즐거움에 더욱 놀라게 될 것이다. 

      

생각을 한 단계 높여 잠깐 관련 학계 석학의 말을 빌려보자. ‘익숙한 것을 가까이하면 즐거움을 느끼고 낯선 것을 이해하려고 가까이할 때는 희열을 느낀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말씀을 극단적으로 간단하게 만든 것이다. 편안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더욱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림책이 주는 “즐거움”에 겨워 지칠 때는 아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그림책을 들고 앉아야 할 것 같다. 그러면 그림책 읽기의 목표와 결과는 “희열”로 업그레이드된다는 뜻인데, 석학의 말씀이니 믿고 따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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