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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Feb 12. 2022

그림책을 읽어본다 1

<Officer Buckle and Gloria> 1/2

-<모든 그림책은 저작권 보호 대상의 저작물로 통상적으로 표지의 이미지와 아주 짧은 내용 글 인용 정도만이 그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각 그림책 이미지 사용을 최대한 지양하고 내용 글의 인용도 최소한으로 한다. 독자들은 YouTube가 제공하는 그림책 읽어주는 사이트를 방문하면 해당 그림책을 읽어/들어 볼 수 있다.>     

 

<Officer Buckle and Gloria>      Peggy Rathmann      1995     G. P. Putnam’s Sons     

1/2

<Officer Buckle and Gloria>(버클 경관과 글로리아)는 안전수칙 교육을 담당하는 버클 경관과 그의 경찰견 글로리아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두 페이지로 펼쳐 그려진(스프레드) 장면에 주인공 버클 경관이 공중에 떠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회전의자 위에 서서 게시판에 무언가를 붙이려다 굴러 떨어지는 모양새다. 그의 아래로 회전의자는 밀려 뒤집어지고 열린 압침 통에서는 압침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안전사고다. 그걸 예고하듯 게시판에 붙여져 있던 안전 수칙 메모 몇 장도 떨어져 날리고 있다. 아마 1초 후에 버클 경관이 바닥에 떨어질 때 만약 그가 균형을 잘 잡지 못한다면 최소한 그의 손바닥과 엉덩이가 압침 몇 개 위로 내려앉을 것은 분명하다. 버클 경관은 여러모로 날렵해 보인다기보다는 다소 둔해 보여서, 무겁게 압침 위로 떨어질 것만 같...아... 위험하다.  

   

그런데, 이 그림 아래 쓰인 글은 다음과 같다. “버클 경관은 누구보다 안전수칙을 많이 알고 있어요. 새로운 것이 생각날 때마다 써서 자기 게시판에 붙이곤 해요. 안전수칙 77번: 절대로 회전의자에 올라서지 말 것.”    

  

그림을 다시 자세히 보자. 방금 버클 경관이 게시판에 붙이려던 안전수칙이 77번이며 또 바로 앞 속표지에서 그가 책상 앞에 앉아 골똘히 써 내려가던 수칙이 77번이다. 여기까지 오면 “아 하!” 하고 이 그림책을 다 읽은 것 같은 감이 온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다. 만화처럼 그려진 삽화에 빨강, 노랑, 파랑 등 밝은 원색을 연하게 써서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살리고 간단히 선으로 처리된 디테일에, 웃음을 선사하려는 이야기다.      


이 지점에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로 연결될지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대 여섯 가지 설(說)은 풀 것 같다. 단지, 제목이 버클 경관과 글로리아인데 아직 글로리아를 만나 보지 못해서 확실한 건 아니고 그리고 경관 이름이 버클(Buckle)이라 조금 신경이 쓰인다. 버클, ‘꽉 붙들어 조이라’는 뜻이고 그리고 경찰관인데... 아예 익살스럽게 만들어진 과장된 표현인가 싶다가 앞표지가 생각난다. 거기서 아마 글로리아를 본 듯하다.      

  

앞표지. 멋들어진 리본 같은 휘장 속에 검은색으로 단정히 쓰인 Officer Buckle과 그 아래 너 댓 배나 굵게 붉은색으로 휘날리게 쓰인 Gloria가 그림책 제목이 앉혀진 모양새다. 바로 그 휘장 위로 하늘을 나는 듯 무대 위쪽에서 공중제비를 하고 있는 경찰견, 글로리아의 모습이 있다. 버클 경관 가슴에 달린 것과 같은 별을 목에 걸고 있다. 바로 아래 무대 위에서는 영문을 모르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버클 경관의 모습이 보인다. 표지의 중앙에 자리 잡고 한 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어 주인공임은 분명한데 중심을 잡지 못한 듯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다. 무대 아래에는 환호하는 청중이 있지만 버클 경관에게는 이 상황이 이해 부득인 것 같고 그가 서있는 위치는 자신의 머리 위를 날고 있는 글로리아가 보이지 않는 각도다.     


만화처럼 표현된 두 주인공의 표정, 간단하게 선 몇 개로 처리한 그들의 눈 모양과 입매에서 인생(?) 최대의 행복함을 만끽하는 글로리아의 흡족함과, 뭔가 이상한데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버클 경관의 답답함을 거의 완벽하게 읽을 수 있다.      


표지의 가장자리는 경찰을 상징하는 푸른색을 두껍게 테두리로 넣고 그 위에 흰색의 보안관 별들을 둘러 그려 넣었다. 물론 버클 경관의 푸른 경찰 제복과 그의 가슴에 달린 별과 동일성이 강조된다. 이 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깨알같이 작고 가는 글씨로 “하지 마”(Never)로 시작되는 안전 수칙들이 써져있고 글로리아의 몸동작까지 그려져 있다. 버클 경관과 무대 앞의 어린이 청중들은 그 푸른 별 장식 테두리 안에 있지만 무대 위 공중을 나는 글로리아의 모습은 그 테두리를 넘어 그 위로 그려져 있다. 이미 글로리아는 그 누구의 통제도 뛰어넘는다는 선언이며 제목처럼 A “and” B로, 버클 대(對) 글로리아로 설정된 대결이면 버클 경관의 참담한 패일 것처럼 보인다. 


이 표지 삽화를 이렇게 세심하게 조사해 보고 나면 이제 이 그림책의 이야기를 내부 구조까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누구도 여기서 읽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표지의 제목을 글자가 쓰인 모양새 그대로 그 뜻을 넣어 읽어보자면 ‘버클 경관과 그, 을, 로, 오, 오, 오---리, 아--아’가 될 것이라 결코 여기서 책을 덮고 ‘알겠어’하고 지나갈 수 없다. 어떻게 버클 경관이 무너지는지 깨알 같은 이야기가 재미날 것 같고, 버클 경관이 그리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데 그가 어떻게 당할지 몹시 궁금하기 때문이다.    

  

저자 페기 래쓰만(Peggy Rathmann)에 의하면 <버클 경관과 글로리아>는 디자인 학교의 야간반 일러스트레이션 수업을 들으며 과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감정 전달이 쉬워서 만화풍의 삽화로 만들었고 또, 그림에 웃음의 포인트가 들어있다는 작가의 말만큼이나 글보다 그림이 진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곰 같은 버클 경관이 여우 같은 글로리아에게 경쾌하게 당하는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는 말이나 그 말의 정당성의 근거로 따라붙는 권위라는 것이 얼마나 실없는지를 뒤가 조금 켕길 정도의 농담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림책에서의 글과 그림의 관계를 따지는 설명에 의거하면, <버클 경관과 글로리아>는 글과 그림이 서로 다른 쪽이 언급하지 않은 부분을 전달하는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며 동시에 그 둘의 접합점이 모호할 때 그 사이에 긴장 관계가 만들어진다. 독자는 이런 긴장, 글과 그림의 ‘다툼’을 해소하고 연결하며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만들어 내면서 이야기를 읽어나간다. 어렵지만 그래서 즐거울 수 있는 과정이다.   

   

<버클 경관과 글로리아>에도 이런 긴장관계가 제법 있다. 그러나 안전수칙 77번이 이 이야기의 접합점이 되면서 글과 그림의 불일치는 치열한 긴장관계가 아닌 조크, 아마 약간 따가운 조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심각한” 경찰이 아닌 듯 한 버클 경관이 그 조크의 중심이며 첫 페이지의 그림이 글과 함께 전달하는 메시지는 시쳇말로 ‘버클 경관 웃긴다’이다. 더구나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가벼운 수채화풍의 원색 채색과 만화같이 경쾌한 선은 이야기가 우선은 웃길 것이고 이것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해석의 바탕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2/2로 이어집니다)   


본 글의 내용과 사진 이미지는 저작자의 허락 없이는 어떤 형태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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