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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Feb 12. 2022

그림책을 읽어본다 1

<Officer Buckle and Gloria>  2/2

<Officer Buckle and Gloria>      Peggy Rathmann      1995     G. P. Putnam’s Sons     

2/2

관내의 학교를 방문하여 어린이들에게 안전수칙 교육을 시키는 일이 주 업무인 버클 경관은 교육을 나갈 때마다 대상 학생들이 안전수칙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중에 우연히 경찰견 글로리아를 데리고 안전수칙 강연을 가게 되고 그때부터 버클의 안전수칙 강연은 학교 등에서 유치 희망 무순위의 일급 엔터테인먼트가 된다. 물론 경찰견 한 마리가 같이 출연하였다 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안전수칙 강연이 갑작스럽게 흥미진진한  콘텐츠로 탈바꿈된 것은 아니다. 단지, 버클이 그의 안전수칙을 무덤덤하게 읽어 내리면 뒤에 앉아있던 글로리아가 몸을 사리지 않는 현란한 자세로 이 수칙을 실제 연기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에 선 버클 경관은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어린이 청중들의 즐거움을 증폭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잔소리 같기만 한 안전수칙 강연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경찰견의 몸 연기와 그것의 대성공.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좀 심심할 것 같다. 제목에서 예고된 버클 대(對) 글로리아의 일전은 어디에 있는가?     


처음 무대 위에서 아이들에게 글로리아를 소개할 때 버클 경관이 “애들아, 글로리아는 내 명령을 따른다”라고 한다. '내 말을 들을 생각을 아예 않는 너희들과는 달라'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듯도 하다. 경관은 무대 위에서 글로리아에게 “앉아!”라는 명령을 하고 글로리아는 그대로 따른다. 버클 경관은 글로리아의 자리를 무대 뒤쪽, 강연하는 자신의 뒤 쪽으로 정해준다. 따라왔으니 말썽 피우지 말고 뒤에 조용히 앉아 있으라는 의미다. 그리고 강연 도중 버클 경관은 몇 번이나 자신이 말한 대로 글로리아가 가만히 앉아있는지 확인-감시한다. 당연히 “명령을 따르는” 글로리아는 그대로 앉아있다.     

 

글로리아를 데리고 온 첫날부터 청중의 이전과 같지 않은 열렬한 반응을 보게 된 버클 경관은 안전수칙 강연에 보람을 느끼고 글로리아를 아낀다. 그러나 당연히 버클 경관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고 글로도 써져있지 않은 글로리아의 현란하고 과장된 안전수칙 연기이며 이것에 청중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버클 경관은 글로리아에게 뒤에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명령하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무대를 장악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유 없이 통제(buckle)를 당하고 있는 글로리아로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이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기 이름만큼이나 득의양양한(glory) 방법으로 '통제 거부' 즉, 버클 경관에 대한 반박 아닌 반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리아의 연기는 그야말로 답답한 버클 경관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양으로 페이지 전면 위로 그려져 있다. 물론 버클 경관이 보지 못하는 각도이기도 하고 순진한 버클 경관은 자신이 전문가로서 발령하는 안전수칙의 중요성에 몰입되어 그런 가능성을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는 모양새로 그려져 있다. 강연을 들은 어린이들이 글로리아의 몸 연기를 크게 그린 감사편지를 보내와도, 또 길에서 자기 뒤로 글로리아가 몰려든 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어도 버클은 두 번 생각해 보지 않는다.      

  

작가 래쓰만이 “그림에 조크를 담았다”라고 한 말이 다시 확인된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잔소리의 통제와 감시에 찌든 쪽은 이 조크에 시원함을 느낄 것이고 실체 없는 전문성의 권위를 배경으로 이 잔소리를 발령하는 쪽은 다소 켕기는 기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숙맥” 같은 경찰관과 그를 속이고 신나게 “뛰어노는” 글로리아의 모습 외에 또 다른 그림 조크는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버클 경관이 알려주는 대부분의 안전수칙은 다른 사람이나 경관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저지른 실수를 보고 만들어진다(열어 놓은 압침 통, 쏟아진 푸딩, 풀어진 신발 끈,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바나나 껍질 등). 여기서 조크는 ‘안전수칙의 전문가도 그냥 보통 우리와 다르지 않다’이다. 또 ‘어른도 애들만큼이나 안전수칙을 지키지 못하는구나’가 된다. 버클의 방문을 환영하며 내건 현수막을 행사 후 내리는 교장선생님이 힐을 신고 회전의자 위에 올라서서 망치로 못을 뽑아내는 모습은 특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권위 파괴용 조크다.    

   

그러나 래쓰만은 마지막으로 안전수칙 기본 101번 ‘항상 친구와 함께 하라’(Always stick with your buddy’)를 발령하며 버클 경관을 구해낸다. 글로리아와 버클 경관은 나란히 손을 잡고 청중 앞에 서서 다른 한 손은 청중을 향해 내밀고 있다. 글로리아처럼 버클 경관도 같은 모습의 미소를 짓고 있고 글로리아의 이 몸 연기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조용한 것이지만 청중은 꼭 같이 환호한다. 글로리아는 더 이상 버클 경관 뒤에 있지 않고 앉아 있지도 않다. 경관이 또는 페기 래쓰만이 “우리 어른들이 사실 뭘 몰라서 그랬어. 미안하구나.”라고 말하는 듯하다. 동시에 글로리아가 명령에 복종하도록 정해진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친구(“buddy”)이며 무엇이든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있다.  

   

권위나 통제 등을 비판하는 이야기는 그림책의 내용으로는 상당히 심각하지만 래쓰만은 글로리아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모습과 ‘뭐가 뭔지를 모르는’ 버클 경관의 느린 표정을 묶어 웃음 뒤에 오는 잔잔한 깨달음으로 이를 전달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종류의 통제 속을 헤치며 살다시피 하는 어린이들 혹은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이야기는 언제든 낯설지 않다. 동시에, 글로리아의 반란은 일상에의 파격을 선사하는 상쾌한 바람 같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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