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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Feb 25. 2022

우리가 사랑하는 이미지

제인 '나이트버드' 마쳬스키(Jane 'Nightbirde' Marczewski)가 지난 토요일, 2022년 2월 19일,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미국 NBC  방송 저녁 뉴스(NBC Nightly News)가 보도했다. 미국의 재능 경연 쇼,  <America's Got Talent>에 참가하여 서른 살에 전신에 암이 퍼진 아픈 자신을 그대로 보여준 음악인의 부고다.  


그녀가 출연한  <America's Got Talent>의 영상으로 돌아가 본다.  


얼굴이 까칠해 보이는 20대 후반의 여성. 목선이 깊게 파인 검정 티셔츠에 무릎이 헤진 흰색 진 바지를 입고 그 아래 검정 부츠로 모양을 냈다.  몸에 딱 붙는 셔츠와 재치 있게 헤진 바지의 조합은 그녀의 짧은 머리와 잘 어우러져 우리 눈에 즐거움을 선사한다. 


살이 없는 날씬한 몸매에 처연한 얼굴로 온 몸에 암이 퍼져 있다고 말한다. '헉'하고 숨이 들이쉬어진다. 심사단에서 '얼굴 좋다, 아무도 모르겠다'라고 하자 '그렇죠. 암 걸린 것 빼면 아무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해 청중의 열띤 지지를 받는다. 


그런 후에 부르는 자작곡, 'It's OK'는 자신의 그간의 시련을 이야기하듯 들려주고 후렴으로 울려 퍼지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It's OK, It's OK, It's OK...)는 그녀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청중 모두를 위로하는 듯하다. 심정을 울리는 멜로디에 아름답고 비장한 창법이다. 


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 한 편이 아린 바로 그 모습이다. 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심사위원이 그녀에게 바로 준결승에 진출하는 골든 버저를 눌러 주자 청중들이 환호하고, 무대 위로 쏟아져 내리는 금박 종이 비 아래에 쓰러져 흐느끼는 나이트버드의 모습은 감동, 그 외의 말은 찾을 수가 없다, 감동이 바로 이 순간의 제인을 위해 만들어진 말이 분명하기 때문에. 


골든 버저 이후 제인은 건강 때문에 대회에 계속 출전하지 못했지만 영상으로 근황을 알리며 참여했다고 뉴스는 계속 전한다. 영상에서 차분히 웃는 얼굴로 자신의 노래를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공감해 주는 것이 감동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경쾌한 발성에 웃는 모습. 머리는 모양을 제대로 갖춘 짧은 쇼트컷. 얼굴은 경연에서 처음 봤을 때의 가무잡잡한 병색은 사라지고 화색이 돌고 예쁘다.    

 

뉴스는 또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사후에 올려졌다는 포스팅을 보여준다.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가 슬프고 또 비탄에 젖어 있다고 해서 현재 상황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없거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며 주위 사람들을 격려한다고 뉴스는 전한다. 그 마지막 모습도 단아하다. 쓰고 있는 연 보라색의 털실 모자처럼 잔잔한 화색과 웃는 얼굴에 목소리는 여전히 낭랑하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얼마나 긍정적인가? 겨우 서른 한 해를 살다 가려고 이 세상에 태어나 저 고생을 했다. 슬프면서도 따듯하고 애잔하다. 


힘을 다해 살고 떠난 나이트버드의 명복을 빌고, 경연대회에서 기쁨에 찬 모습으로 두 팔을 위로 활짝 뻗고 맴을 돌며 환호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에 감사한다. 이 뉴스 쪽의 마지막에 삽입된 나이트버드의 노래 소절 마저 '괜찮아'(It's alright)라고 우리를 위로하고 있어 따듯하다.  


이 뉴스 쪽을 보고 또 본다.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고 편안하고, '그래, 잘 살자' 그런 다짐이 들기 때문에.      


그런데, 

이 아름다운 사람의 요절 소식이 애잔하면서 그 끝에, 한참 끝에 쌀 한 톨만 한 불편함이 있다. 그 조그만 불편함이 가리키는 곳은 이 모든 것이 너무 아름답게 완벽하다는 바로 그 점이다. 31세의 요절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제인 마쳬스키는 그녀 자체로 완벽했을 것이다, 우리 각자 모두의 생이 자체로 그런 것처럼. 그녀는 흉악한 병마 앞에 몸부림을 치면서 필사의 투쟁을 했을 것이다. 싸우고 운명을 욕하고 때론 미치도록 발악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녀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육체가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릴 정도로 피폐해 갔을 것이다. 그랬어도 괜찮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녀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나서가 아니라 우리는 그런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그런 이미지를 서비스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미지는 정형의 반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야 한다.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하는 죽음도 아름다운 이미지로 포장되어 배달되지 않으면 우리는 소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본 대부분의 암 말기 환자들은 나이가 많이 들었다. 그러나 스물몇 살짜리 위암 말기 환자도 보았다. 뼈가 칼같이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마주쳐다 볼 수조차 없고, 그녀는 말도 겨우 했다. 그럼에도 아직 6인 병실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생의 끝자락에 붙들려 있었다. 나이 든 환자들은 오래 누워있은 흔적으로 뒷머리가 짓눌려 뻗쳐있다. 아무도 자신의 외양에 신경 쓸 여유가 없이 병원 침대에 몸과 마음을 웅크리고 누워 내 몸속의 병 덩어리와 소리 없는 언쟁을 한다. 얼굴엔 웃음기가 없고 서늘한 죽음의 한기가 배어 있다. 그 광경은 편안하지 않고, 익숙해지지 않고, 삶의 흉측한 마지막 그림자가 드리운 그 모습이 불편해 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지경이다. 


보고 또 보고, 보면 편안하고, 그렇지 않았다. '그래 잘 살자' 이런 마음은 전혀 들지 않고 괴롭고 답답했다. 


이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이미지는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대신 우리 눈앞에 형상화해주는 그런 이미지다. 그 이미지를 사랑하는 우리는 그 외의 어설프고 아름답지 않고 우리 존재의 흉측한 외형을 그리는 이미지가 낯설고 불편하다. 그래서 혼자서 그 자체로 분명히 아름다웠을 제인 나이트버드 마쳬스키는 우리가 바라는 완벽히 아름다운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우리는 평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제인 마쳬스키는 그렇게 아름답게 우리에게 그 모습이 제공되지 않았어도 충분히 스스로에게 아름다운 일생을 살다 갔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정형의 반듯한 이미지가 우리의 눈이 쫓는 짧은 순간의 환상으로만 그치기를 바라본다. 그 이미지는 아름다워 편안할지 몰라도 그 이미지를 너무 사랑한 탓에 우리 모두의 마음의 눈까지 멀게 될까 무섭지 않은가? 


서른 한해 살고 떠나간 나이트버드. 그녀가 남긴 꿈과 희망의 말. 그것이 없어도 좋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어도 그녀의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중요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미지는 그녀를 더 이상 건드릴 수 없다. 제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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