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Feb 26. 2022

그림책을 읽어본다 3

<Grandfather's Journey>   

<Grandfather’s Journey>    Allen Say     1993    Houghton Mifflin Harcourt    


한 아시아인 젊은이가 배 갑판에 서서 사진을 찍듯 앞을 보고 있다. 두꺼운 정장 외투를 입고 그 속에 셔츠와 넥타이까지 착용하고 있다. <Grandfather’s Journey>의 표지 삽화다. 몸에 커 보이는 외투에 구두와 중절모 그리고 가죽장갑까지 착용한 그는 거센 파도에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조용한 성격의 동양인 젊은이가 신세계를 찾아가는 만만찮은 여행이 예고된 표지다. 동시에, 황금색 사진 액자처럼 꾸며진 표지 삽화의 가장자리 처리는 그 여행이 오랫동안 새겨질 가족의 귀한 역사임을 알려준다.

      

이렇게 시작한 <Grandfather’s Journey>는 1900년 초반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노년에 일본으로 돌아간, 저자 앨런 세이(Allen Say)의 외할아버지 이야기다. 그림책의 대부분을 차지한 삽화는 그의 가족들이 피사체가 된 사진처럼 만들어져 있고 글은 사진을 설명하는 정도의 길이로 간략하다.


사진 속 인물들의 감정을 절제한 표정과 간단히 읽어지지 않는 의미심장한 배경 속에 할아버지 인생 여정의 기쁨과 굴곡이 녹아있다.   

   

페이지마다 보이는 할아버지의 꼭 다문 입술과 무표정하다시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은 동양적인 절제의 모습이다. 고향마을의 아담한 산과 들에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미국의 거대함에 쉽게 압도당하지 않으려는 그의 조용한 결의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에게 신세계는 잘 맞지 않는 서양식 복장과 사람들의 큰 몸집이며, 거대한 협곡과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고, 그리고 쉴 새 없이 연기를 뿜어내는 굴뚝들이 차지한 도시이다.


큰 외투를 입고 뱃전에 서있는 할아버지 뒤의 집채 같은 파도에서 이미 두려움은 예견된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낯선 신세계 속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걸어 들어가 조용한 각오로 가족을 이루고 한평생을 살아내었다.


신세계에 익숙해진 외부인 젊은이의 인생은, 그러나, 운명적으로 불협화음을 수반했을 것이다.


곱게 차린 그의 어린 딸이 유모차에 태운  서양 인형 옆에  있다. 암울한 갈색조의 배경 앞에 딸도 아버지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에서 일본 부모 사이에 태어나 자라는 그녀의 문화정체성의 갈등이 다가온다.


성년이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온 그녀가 살아냈어야 했을  문화의 충돌도 빠질  없다. 서양식 복장으로 차려입고 일본 전통 가옥의 마당에 서서 찍은 사진. 어머니를 등지고  그녀의 표정은 단호해 보인다. 그녀 뒤로 기모노를 입고 다다미방의 방석 위에 무릎 꿇고 어머니가 앉아있다.  사람 사이에 가득  보이는 것은 불화합의 기운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고향에서의 일상을 그린 모습은 그의 인생이 지난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손자를 뒤에 세우고 전통의상을 입고 박은 사진. 격식을 갖춘 모습과 밝은 배경 채색은 할아버지가 지닌 손자에 대한 믿음과 제대로 살아낸 자신의 삶에 대한 긍지를 나타낸다.

   

할아버지의 신세계 탐험 여행이 가족의 역사가 된 먼 훗날, 어른이 된 세이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그리워하던 캘리포니아를 방문하여 사진을 한 장 박아놓았다.


환한 햇살과 바닷바람 아래 서있는 높은 야자수가 배경이다. 여전히 아시아인일 수밖에 없는 감정을 절제하는 표정, 그리고 또 여전히 높은 야자수에 비해 작달막한 키, 그러나 할아버지의 소원을 대신 이루어 보는 기쁨은 그의 조용한 표정으로도 감출 수가 없다.


 <Grandfather’s Journey>는 할아버지의 인생 여정에 바치는 손자 세이의 그리움에 찬 헌사이다.  




본 글의 내용이나 사진 이미지는 저작자의 허락 없이는 어떤 형태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Copyright 2022. Jane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사랑하는 이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