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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Mar 05. 2022

그림책을 읽어본다 4

<The Library>

<The Library>    Sarah Stewart,     David Small   1995    Farrar  Straus  Giroux   

       

최근에 우연히 <The Library>의 작가인 사라 스튜어트(Sarah Stewart)와 데이비드 스몰(David Small)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각 각 1939년, 1945년생으로 부부인 두 그림책 대가가 9년 전에 한 인터뷰다.* 모자를 쓰고 있는 사라 스튜어트의 헤어스타일이 눈에 띈다. 모자 밑으로 늘어뜨려 어깨까지 닿은 곱슬머리가 한껏 부풀어 있다. 빨강머리다. <The Library>의 표지부터 매 페이지마다 주인공 엘리자베쓰의 빨강머리가 휘날리건만 이 인터뷰를 보기 전까지 그 머리를 인식하지 못했다. 빨강머리까지 읽어 넣어 쓰면서  '그림책을 읽어본다 <The Library>'편이 완성되었다.       


책을 사랑한  여자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평생 책과 함께 조용한 그러나 매우 즐거운 삶을 살았다. <The Library>  가쁘게  줄로 설명하면 그런 이야기다. 1900년대 , 중반의 환경과 정서를 배경으로 하고 잔잔한 스토리 구성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이다. '데이비드 스몰의 부드러운 수채화 채색이 이야기에 볍고 유쾌한 즐거움을 불어넣었다 그림책 선집의 평이 있다.** 그렇다면 <The Library> 책 사랑의 즐거움과 연한 채색의 그림이 어우러진 편안한 그림책인가? 답은 일단 '아니오'.

 

우선 이 그림책에는 기승전결의 강력한 플롯이 보이지 않는다. 또 주인공 캐릭터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도 그다지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의 저변을 흐르는 움직임을 쫓다 보면 이 그림책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잔잔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글과 그림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아 이야기 속의 긴장 관계는 별로 없다. 그러나 행간을 읽으라는 말을 적용시킨다면 이 그림책 글의 행간은 모두 그림이다.      


우선 그림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살펴보자.


앞표지는 조그만 수레에 책을 잔뜩 싣고 도서관으로(혹은 집으로) 가고 있는 한 여성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책이 흘러내려 쏟아지는 지경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 와중에도 책을 읽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책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어깨까지 닿는 곱슬머리가 큰 보따리처럼 부풀어져 있는 빨강머리의 주인공이다.

 

표지를 넘기면 속표지에 같은 빨강머리 여성이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책에다 코를 박듯 하고 책을 읽고 있다. 음식이 든 종이봉지를 한 손에 들고 있지만, 또 공원 비둘기가 자신을 에워싸고 있지만 그녀는 책으로 얼굴을 가린 채 오로지 책만 읽고 있다.


그다음은 두 페이지 스프레드로 만든 프롤로그, 두 번째 속 페이지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인다. 한 손으로 우산을 다른 한 손으로는 책을 들고 걸으면서 책을 읽고 있다. 들고 있는 책에 가려 여전히 얼굴은 볼 수가 없다.


주인공의 메시지가 들려오는 듯하다. '저는 책이 좋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읽을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이렇게 책에 진심으로 빠진 주인공의 순수함에 독자들은 친근하게 웃게 된다. 동시에 도서관이라는 제목이 만들어 내는 신뢰의 분위기에 젖어  괴짜 독서광을 낭만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앞 선 세 장면의 예고편 후에 시작한 본 이야기는 '엘리자베쓰는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해 장난감은 책꽂이에 올려 두고 책을 옆에 쌓아 놓고 읽으며 놀았다’로 포문을 연다. '책 사랑이 지극한 그녀가 상급학교인 기숙학교로 진학해서도 혼자서 괴짜 책 사랑 소녀 노릇을 했다'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야기가 그 지점까지 이른 후 두 페이지의 스프레드가 펴지면서 엘리자베쓰가 중요한 선언을 한다. 그녀는 독자에게 자신의 책 사랑에 대한 굳건한 자신감을 선언한다. 동시에 엘리자베쓰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 가진 웃음기 섞인 낭만적인 이해를 거부한다고 선언한다.


스프레드 왼쪽 페이지에 독자들을 등지고 비스듬히 앉은 엘리자베쓰의 모습이 보인다. 등에 베개를 넉넉히 대고 편히 앉아서 한 손에는 찻잔을 들고 앞에는 책을 펴놓고 있다. 뒤에서 보는 그녀의 큰 검정 테 안경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머리핀으로 고정시킨 빨강머리가 왼쪽 페이지 그림의 중심이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오른쪽 페이지로 넘어가면 창 턱에 올려놓은 그녀의 두 다리가 보인다. 그 앞으로 보이는 창밖 풍경은 데이트에 나선 젊은 남녀 한쌍의 뒷모습이다.


본문 글은 "엘리자베쓰는 데이트보다 책을 더 좋아했다. (기숙사의) 친구들이 데이트하러 가서 새벽까지 춤추고 노는 동안 엘리자베쓰는 밤늦도록 책을 읽었다"라고 알려준다. 그녀 방 벽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의 흰 토끼 (White Rabbit)가 손에 든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는 그림이 붙어 있다.***


독자에게 등을 보이며 앉은 엘리자베쓰.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때보다 훨씬 강한 거절의  표시다. 무엇을 거절할까? 빨강머리의 고집이라고 불러보자. ' 나의 길을 가니 걱정 마세요'라는 참견 거절이다. 편안하게 적당히 벌리고 창턱에 얹은 두 다리는 상황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동시에 자신의 책 사랑 인생은 우리의 책에 대한 아름다운 낭만과 상관없다는 표시다. 


엘리자베쓰의 창밖으로 보이는 남녀의 모습은 바깥세상 바람 속에 흩날리는 일종의 선언 같은 질문이다. 엘리자베쓰에게 던져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엘리자베쓰 브라운의 파격의 답이 들린다. '젊은 나이에는 남녀가 서로 짝을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이 내 방법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앞표지, 속표지, 속 속표지 모두가 '관심 금지, 엿보기 금지, 간섭 금지'의 신호였다. '내가 남달라 보여 이상한가요? 나는 책 읽을 거니까 그냥 두세요'로 모두 시대의 억압을 불가한다는 조용한 선전포고였다.


빨강머리 주인공은 그렇게 자기 뜻대로 살았다. 노년에 들어 평생 모은 책과 전재산을 기부하여 도서관을 만들게 했고, 그리고 혼자 사는 친구네로 들어가 살면서 날마다 책 읽고 도서관 나들이하는 행복한 노년을 보냈다. 표면적으로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았던 어느 20세기 초반형 "인텔리"여성의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이야기의 속내를 새길수록 <The Library>  순응자, 쉽게 순응하지 않는 엘리자베쓰 브라운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책이 '책 사랑, ' '책벌레' 등과 같은 이야기를 넘어 주변에 구애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 일을 해내는 사람의 조용한 집념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 집념을 귀여운 괴짜의 일탈로 편하게 보거나 그 책 사랑에 우리의 낭만을 투영시키기에는 너무 진지한 이야기다.


물론 작가 새라 스튜어트가  그림책 헌정사에 "사서였고 책을 사랑한 친구인 메리 엘리자베쓰 브라운(Mary Elizabeth  Brown)에게 바친다"라고 하였으므로 엘리자베쓰가 열렬한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억이다.


에필로그. 

노인이 된 엘리자베쓰가 친구와 함께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길 옆 나무 아래 한 소녀가 책에 코를 박고 앉아 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다. 종이우산 같은 양산으로 해를 가린 모습과 동그랗고 큰 검정 테 안경에 곁에 쌓아 놓은 책. 한참 전 페이지에서 본 어린 엘리자베쓰의 모습과 같다. 새로운 엘리자베쓰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단지 그녀는 금발을 하고 있어서, 무언가 다른 스타일의 책벌레, 독서광으로 완성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 즐겁고 낭만적인 기분이 된다. 그리고 곧 심각한 기대감으로 마음을 바꾼다.


   

* Reading Rockets와의 인터뷰. Reading Rockets 홈페이지나 YouTube에서 들어볼 수 있다.

** <Children's Literature in the Elementary School>, 6th edition,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와 흰 토끼를 따라 그 토끼굴로 들어갔다가는 나올 길을 찾을 수 없을 듯하여 해석은 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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