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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Feb 21. 2022

그림책을 읽어본다 2

<Just Plain Fancy>    

수년 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잠깐 머무를 때 근처였던 랭캐스터(Lancaster)의 아미쉬(Amish) 마을을 구경 갔다. 바깥 세계를 차단하는 그들의 문화 때문인지 방문객을 상대하는 몇 사람 외에는 사람 흔적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아미쉬 소녀들을 내가 살던 곳의 슈퍼마켓에서 한 번 마주쳤다. 예의 검은색 원피스와 양 쪽에 끈이 달린 흰 모자를 쓰고 소녀 둘이 샴푸 섹션 앞에서 소곤소곤 의논 중이었다. 팔에는 슈퍼의 조그만 플라스틱 쇼핑 바구니가 걸려있다. 미국 슈퍼의 그 많고도 많은 종류의 샴푸 진열대 앞에 서있는 아미쉬 소녀들. 인상적이었다.


<Just Plain Fancy>   Patricia Polacco    1990    Dragonfly Books   


<그냥 멋진 것> 또는 <두 말할 것 없이 멋들어진 것>. 패트리샤 폴라코(Patricia Polacco)의 <Just Plain Fancy>를 한국말로 그대로 바꿔보면 대체로 이 정도가 된다. ‘plain’과 ‘fancy’는 둘 다 다양한 뜻을 가진 단어다. ‘fancy’는 이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소녀가 우연히 주운 공작새 알을 설명하는 ‘멋들어진’이란 뜻으로 사용되다가 나중에 그 알에서 부화된 공작새의 이름(Fancy)이 된다.       


그리고  ‘plain’의 여러 가지 뜻을 설명하자면 이 이야기의 배경, 아미쉬(Amish) 마을과 연결해야 한다.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아미쉬를 표현하는 말로는 '꾸미지 않은'이라는 뜻의 ‘plain’이 꼭 맞다. 그러나 ‘plain’이 여성에게 사용되었을 때 ‘평범한,’ 즉 ‘예쁘지 않은’의 뜻이 있으므로 꽃 같은 아미쉬 소녀를 plain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역시 작가는 ‘plain’에 ‘fancy’를 이어 붙여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plain) 멋진(fancy) 존재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제목으로 선언한다.


벌써 제목부터 이렇게 깜찍한 언어유희인데, 거기다 ‘fancy’가 아미쉬 생활에서 금기인 ‘허황됨’ 또는 ‘변덕’이란 의미가 있다는 사실까지 보태보면 작가의 말 놀음을 제대로 쫓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결코 못생긴 ‘plain’과 헛소리 ‘fancy’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표지의 그림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표지의 흰색 전면에 푸른 글씨로 JUST PLAIN FANCY라고 크게 제목을 쓰고 있다. 그 아래로 아미쉬 복장, 검은 일상복 원피스에 푸른빛의 헝겊 모자를 쓴 두 소녀를 볼 수 있다. 둘 사이 풀밭에 놓여있는 특이한 새 알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소녀들의 복장은 검소한 ‘plain’이다. 하지만 이들의 포동포동한 모습이나 볼에 빨간 홍조가 띠도록 열심히 토론하는 모습에서 결코 못생긴 ‘plain’으로 불릴 수 없는 “예쁜” 생기를 보게 된다.


그 소녀들 앞으로 흰 암탉 두 마리를 같은 자세로 배치해 놓았다. ‘무슨 알?’이라는 질문이 닭들의 모습에 그려져 있다. 작가는 바탕의 흰색 여백을 사용하여 검은 선으로  몸통 테두리를 표시하고 검은 점의 눈동자를 찍어 닭을 그렸다. 그리고 거기에 새빨간 닭볏을 곁들여 놓았다. 아미쉬의 ‘plain’에 견주어 볼 때 지극히도 화려한 ‘fancy’다.


흰색의 배경과 푸른 모자를 쓴 아미쉬 소녀, 그 앞의 흰 닭의 붉은 벼슬. 설명할 필요도 없는 기본적인 색들의 향연이다. 동시에 이 선명한 조화는 앞으로 올 이야기의 ‘plain’과 ‘fancy’의 공존 혹은 격돌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표지의 새빨간 닭볏에 동조하듯이 전편에 걸쳐 매 페이지에서 보이는 붉은색 혹은 붉은 톤의 색 표현은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붉은색은 정열, 흥분, 활기, 광기, 또 정지, 금기, 위험, 경고 등을 의미한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저기 작가가 던져 놓은 빨간색 조각들은 이렇게 묻는 듯하다. 아미쉬 문화의 소박, 금욕의 세계와 그 속에 스며들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갈망과 금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나요?


주인공인 나오미(Naomi)와 루쓰(Ruth) 자매는 닭을 돌보기 때문에 이 두 자매가 등장하는 페이지에서는 모두 흰 닭의 빨간 벼슬을 볼 수 있다. 두 소녀의 가공 없는 즐거움과 긍정의 활기를 보여주는 빨강이다. 그렇다면 다른 붉은 이야기 조각들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문제의 새 알이 부화하여 늘 보던 닭과는 다른 새가 된 것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동네는 전부 평범한 것뿐이다. 뭐 하나라도 멋들어진 것이 없어’라는 불평꾼 나오미에게 온 파격의 닭이다. 나오미는 이 새를 보고 ‘새 알부터 멋짐(fancy) 그 자체야’ 하다가 아예 그 새를 팬시(Fancy)라고 이름 짓는다.


어느 날 이 새, 공작이 날개를 멋들어지게 펴 보이자 두 소녀는 놀란다. 그 아름다움이 어른들이 금지하는 허영(fancy)일까 봐, 그래서 공작새가 쫓겨날까 봐 둘은 공작을 닭장 안에 숨기고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마을의 구성원이 모두 모이는 마을 행사 날 공작은 닭장을 탈출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날개를 펴 보인다.


두 페이지의 스프레드에 녹색, 푸른색, 보라색과 그 아래로 간간이 보이는 노란색, 그리고 이 모두를 묶어주는 검은색 점이 그려내는 공작의 날개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자연은 그대로, 저절로(plain) 멋지고 화려하다(fancy)는 것을 천지에 알리는 의식의 장면이다.   


어른들도 당연히 공작새 팬시의 화려함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의 기적이라고 판단해준다. 누구도 거부할 이유가 없는 자연이 주는 선물, '그냥 저절로 멋들어진 팬시'(just plain fancy Fancy)이기 때문에.


저절로 멋들어진 것은 공작새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무엇보다 주인공 두 소녀, 나오미와 루쓰의 구김 없는 인간미를 설명하는 말이다. 더불어, 자신들의 규율을 지키고 동시에 인간세상의 갈망과 금지를 포용하며 사는 아미쉬 전체를 가리키는 말도 된다. 그들의 꾸미지 않는 평범함(plain)이 멋지지(fancy) 않은가?

  

마지막으로, 피할 수 없이, 폴라코가 여기저기 그려 넣은 아미쉬 마차를 따져봐야 한다. 아미쉬가 실제 사용하는 검은 마차다.


마차 옆을 둘러 빨간색 신호등을 달았고 뒤에 크고 붉은 삼각형의 주의 표지판을 붙여 놓았다. 책의 속표지와 이야기 시작 페이지 그리고 뒤표지에 이 검정 마차의 뒷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새빨간 신호등과 특히 뒤에 붙은 주의 표지판을 강조하는 듯이.


따지기 힘들어 책을 덮어 던져 놓으니 뒤표지의 마차가 바로 눈앞에 와서 딱 버틴다. 마차 뒤에 달린 붉은 삼각형 표지판을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뒤표지에는 제목, JUST PLAIN  FANCY를 빨간색으로 써놓았다.


마차는 '아미쉬 무단 해석/접근 주의’라고 읽을까? 저 빨간색 제목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열정에 화답하는 아미쉬를 가리킨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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