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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Feb 17. 2022

우피 골드버그의 곤경

홀로코스트 기념일과 린치 기념관

1월 27일은 홀로코스트 기념일(International Holocaust Remembrance Day)이다. 1945년 이 날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있다.


미국의 방송들은 이 날을 기념하는 뉴스 쪽을 내보냈다. 영화배우 우피 골드버그(Whoopi Goldberg)가 진행하는 미국 ABC 방송의 토크쇼 <더 뷰>(The View)에서도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 테네시 주 교육청이 홀로코스트를 다룬 <Maus>라는 어린이용 논픽션 만화책(graphic novel)을 금지도서 목록에 넣는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골드버그가 홀연 "홀로코스트는 인종차별 문제가 아니다"라고 한다. 물론 우피도 그 책을 금지하는 교육청의 행태를 비난하면서였다. 어떻게 인종차별이 아닌가 하며 다른 패널들이 이어받자 골드버그가 다시 "그건 인간이 다른 인간에 자행한 비인간적인 행위이지 인종(차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 방송 후 하루 종일 sns에 '우피 골드버그 제정신인가,’ '입을 다물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어봐라,’ ‘당장 쇼에서 잘려야 한다'와 같은 비난성 코멘트가 쏟아졌다.


(우피는) 길에서 KKK를 보면 무조건 도망갈 것이지만

그리고, 바로 그 저녁에 골드버그는 원래 출연 계획이 잡혀있던 토크쇼, 스티븐 콜베르(Stephen Colbert) 진행의 레이트 쇼(The Late Show)에 출연하여 다시 같은 말로 홀로코스트는 인종차별 문제는 아니라고, 백인이 백인을 공격한 처참한 인간 비극이었다고 확인한다. 흑인인 자신은 길에서 KKK를 보면 무조건 도망갈 것이지만, 자신이 흑인인 것이 바로 들키니까, 유태인은 일단 조사해보기 전에 겉으로는 속 사정을 알 수없으니, 자신은 그런 의미였다는 것이다. 자동으로 2급 시민으로 낙인찍히는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시 밤 사이에 sns가 시끄러웠다. 다음 날 뉴스 매체들은 우피의 해당 발언을 언급하며 홀로코스트 학자들을 초대하여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이 인종 우월/차별 인식에서 나왔음을 상기시킨다. 우피는 이미 밤중에 트위터에 자신이 홀로코스트를 잘못 알고 있었다고 사과하고 다음날 <더 뷰>에 나와서 자신의 실언을 사과하며 홀로코스트가 인종차별에 기인한 것이었음을 분명히 이해했다고 최종적으로 확인한다. 이틀 간의 '활극'은 이렇게 끝이 났다, 물론 골드버그가 ABC로부터 2주간의 출연 정지 처분을 받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우피 골드버그가 왜 그런 "실언"을 하게 된 것인지 알 것 같다. 물론 골드버그 자신은 백인사회에서 성공한 흑인이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고 어떤 다른 그룹 (연합군 같은)이 와서 살려 주지도 않고 세대와 세대를 넘어 현재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차별받는 흑인의 현실적인 딜레마가 절실하게 느껴져서일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소셜미디어에 미국에는 인종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아예 흰 두건을 벗고 출몰한다. 노예제도를 옹호하던 남북전쟁시대 장군들의 동상을 철거하는 일들이 이런저런 주 행정부 주도로 벌어지고 있으나 바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총을 들고일어나 사람을 상해하는 일이 따른다. 우피의 오래된 좌절감이 느껴진다. 미국 사회의 밑바닥 그리고 감옥을 차지하는 다수는 흑인이라는 것은 거의 상식에 가까워 어떤 통계를 들이대기에도 민망하다.


차라리, 2018년에 개관한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Montgomery, Alabama)의 일명, 린치 기념관(National Lynching Memorial) 이야기를 해보자.

 

노예제도가 폐지된 1865년 이후부터 20세기 중반 1950년대까지도 백인 사회 규율에 반항하는 흑인들은 개인이 가하는 린치(lynch)를 당했다. 법으로 처벌할 범법 행위가 아닌 일, 예를 들어 흑인 여인이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백인 아이들을 나무라는 "반항"이 린치의 이유가 되었다. 여기서 린치란 대부분 목매담이다. 백인 군중이 지켜보는 공공장소에서 목을 매다는 것이다.


흑인 인권 변호사인 브라이언 스티븐슨(Bryan Stevenson)은 이를 사회가 가하는 조직적 린치라고 부른다. 그 시대의 린치가 개인이 감정에 이끌려 개인에게 상해를 가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법 위에 존재하는 백인 사회의 규율이 흑인에게 벌을 가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흑인 린치가 조직적으로 자행되었지만 법은 이를 방관하는 방법으로 동조했다는 것이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뒷 길에서 은밀히 벌어진 일이 아니라 법원의 앞 뜰에서, 또는 학교 앞마당에서 이런 일이 공공연히 벌어졌다는 것이 그 증거의 하나며 그런 린치 행위가 문서로 기록되어 남아있다는 사실도 들고 있다.

  

백인 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일탈로만 여겨온 흑인에 대한 린치가 조직적인 초 사법적 행위였다. 그리고 이 어두운 과거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바로 그 점에서 현재 흑인 사회의 고초와 무관하지 않다. 이 확신이 스티븐슨으로 하여금 흑인을 위한 정의 구현 재단(Equal Justice Initiative)을 설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재단이 주축이 되어 앨라배마의 주도 몽고메리(Montgomery, Alabama) 도심에 흑인 린치의 역사를 조명하는 기념관이 세워졌다. *


2018년 중반에 개관한 후 미국의 여러 방송사가 방문 제작한 프로그램들을 보면 그 기념관의 위용은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섬찟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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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들판에 평평하게 그러나 높이 펴진 슬래브 지붕, 그 중앙은 큰 네모 모양으로 뚫려있다. 이 슬래브 지붕 아래 천정에 고정된 쇠파이프에 사람 몸통과 엇비슷한 크기의 붉은 녹빛 직육면체가 달려있다. 이 쇠로 만든 육면체를 관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로 세로로 줄에 맞추어 달렸으며 한쪽 회랑에는 바닥에 닿을 듯 내려 달려 있다면 네모진 회랑을 따라 걸어 돌아 가면 점 점 높게 관람객의 머리 위로 매달려 있다. 모두 805개다.


뚫린 지붕 아래의 풀밭을 두르는 회랑에 빼곡히 달려있는 이 직육면체 하나는 실제 린치가 일어난 카운티 하나를 의미한다. 각 카운티의 이름이 새겨지고 그 밑으로 그곳의 린치 희생자들의 이름과 린치 날짜가 올려져 있다. 거의 4,400명에 이른다. 그 외 수 천의 이름 없는 희생자도 있다고 한 쪽 벽에 기록되어 있다.


직접 내리는 눈 비만 피할 수 있을 뿐 완전히 외기에 노출된 이 쇠통들은 나무에 또 도심의 다리 아래에 매달려 죽은, 그리고 이미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린치 희생자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미국 사회의 양심 앞에 그들을 재현하여 보여주며 그 린치 행위를 판단해 보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질서 정연히 매달린 붉은 쇠 관은 이 범죄 행위에 대한... 공개적인
기소

사진에서 보는 다리 아래 매달린 린치 희생자는 차라리 부드러워 보이는 인간의 신체이지만 흑인 사회의 이성에 남아있는 희생자는 이제 날 선 모서리를 가진, 그리고 녹이 슬더라도 각이 무뎌지지 않는 엄중한 정형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모서리는 그들의 호소가 더 이상 감정에의 호소가 아닐 것이라는 결의를 보여준다.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행위가 같은 인간의 형태를 가진 개인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백인 사회의 공적, 조직적 시스템의 폭거라는 것을 이 직선의 쇠 육면체로 증명하고 있다. 질서 정연히 매달린 붉은 쇠 관은 이 범죄 행위에 대한 이성의 폭로이자 공개적인 기소이며, 그 위용은 공식적인 대답을 요구하고 그리고 앞으로 계속 진행될 조직적인 탐색을 예고하고 있다.  


린치 기념관을 기획한 스티븐슨은 거대한 직육면체의 구상은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직육면체 콘크리트 덩어리에서 왔다고 한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천장에 매달리지 않고 바닥에 누워 있다. 가로 세로 약 2.5X0.9 미터 크기에 높이는 20센티미터에서 4미터 이상이 되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넓은 야외 공간에 줄을 맞춰 빽빽이 들어앉아 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넉넉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어 가까이서 보면 특별한 느낌이 없다. 낮은 돌덩이 위에는 애들이 뛰어다니거나 앉아있기도 한다. 그러나 19,000여 평방미터에 빽빽이 놓여 있는 2,700여 개의 돌덩이들이 이루어 내는 모서리 각을 한 번에 조망해보면 마음이 언짢아지고 무섭다.


각이 진 큰 쇠, 거대한 콘크리트 육면체 덩어리의 압박과 그 덩어리의 수많은 집합, 반복이 우리의 이성에 남기는 무게는 쉽게 소화되지 않는다. 절대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음의 부담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피 골드버그의 실언을 다시 또 이해해보려고 한다면, 이런 무게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위의 <Maus>를 금서로 규정하는 움직임과 다를 바 없이 미국의 텍사스 등 여러 주에서 백인 학부모들이 미국의 노예 역사 등 인종적으로 불편한 주제를 정규 교육에서 강조하거나 그런 내용의 책을 도서관에 비치하는 것을 거부하고 나섰다.


펜실베이니아주의 일련의 부모들은 백인에게 버스 자리 양보하기를 거부한 로사 팍(Rosa Parks)에 관한 책을 금지할 것을, 테네시의 부모들은 마틴 루터 킹과 그의 워싱턴 행진에 관한 책들을 교육과정에서 뺄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부모들은 과거의 불행한 일이 순수한 자기 자식들에게 "불편감, 죄의식, 또 고통"을  줄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죄 없는 아이들이 왜 그 스트레스를 받고 소화하려고 애써야 하느냐는 항변이겠다.


어린이들을 앨라배마의 린치 기념관이나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데리고 가서 그곳을 보도록 하고 나면 그들이 그곳에서 받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또 다른 그런 돌덩어리, 쇳덩어리를 만들어 세워놓아야 하는 미래가 방지될 수 있는 그런 느낌은 아닐까? 잠시 생각해본다.



*린치 기념관의 정식 명칭은 National Memorial for Peace and Justice다. 하버드 로스쿨이 제작한 'Bryan Stevenson '85'(인터뷰)가 YouTube에 소개되어 있다.

**<This American Life> (팟캐스트), #758 Talking while black, Jan. 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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