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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May 15. 2022

나의 "도둑" 이미지

미국, 텍사스.

"여기 지금, 세 명..."(There are these three...)

거기까지 밖에 못 들었다. 점원 같지는 않은 위용의 백인 여성이 백화점 계산대 전화에 대고 하는 말이다.

오래전부터 미국 백화점에는 점원이 별로 없다. 물론 평일에는 손님도 별로 없다.  넓은 매장  끝에만 계산원을 두고 있어 사실 아무도 없어 보인다. 물건만 잔뜩 진열되어 있고 아무도 상관 않는다.

그런데,

  투는 백화점에서 듣는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런 차가운 느낌이다.  

'여기 세 명이라고?... 어디?.. 무슨 세 명?' 조금 전에 고등학생,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 세 명이 이야기하며 지나간 것이 생각난다.

백화점 4층, 여성복 층인데 4월이라 고등학생 졸업 파티 용 드레스가 잔뜩 걸려 있다. 아니면 평소에도 드레스 등이 걸려 있었나, 중산층이 주 고객인 백화점이라? 나도 특별한 옷이 한 벌 필요한데 마땅한 것이 없어 거기까지 올라가 치렁치렁한 드레스 사이를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아! 아까 걔들이 흑인이었어.'라는 깨달음이 온다. 웃으며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걸어 지나가서 '응, 졸업 파티 드레스 사려고 왔구나' 정도의 생각이 지나갔었다.

'잘 지켜보세요' 등이 그녀의 뒷말이었을 것이다.      

"못 돼먹은 인간들..." 대상을 분명히 하지 않고 혼자 욕을 한다.  

'그럴 거면 물건 옆에 총 들고 지키는 보초를 세우든가, 고객 전부를 잠재적 도둑 취급해?'  

전부가 아니겠지.

그때는 생각을 거기까지만 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미국의 대중적 중산층 대상 백화점. 인터넷 쇼핑이 대세가 된 지금 백화점에는 손님이 없다.  

비교적 사람이 복작거리는 일 층 잡화 코너들도 마찬가지고 2층으로 올라가 있는 잡화 코너에는 인기척도 없다. 평일이라 더욱 그렇다. 이층 구두 코너 옆으로 돌아 앉은 운동화 섹션은 조용하기만 한데 아예 진열대 위에 세일 사인을 붙여 놓았다. 일 년 내내 이런저런 세일을 하는 미국 백화점이라 특히 새로운 풍경은 아니다.

"이거 왜 이렇게 싸?"  

"뭐, 지금 쌩쌩 달리는 디자인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낫자루가 날씬하게 붙은 브랜드건, N자가 턱 하니 가로지른 브랜드건 다 50불 전 후에 내 눈에는 멋져 보이기만 한데 연식이 좀 된 거라는 거다. 제대로 걷고 달리고 하는 용도에 맞춘 단단한 신발들이다.  

"원, 운동화가 이래야지."

우리는 그때 그 백화점에서 보물 찾기를 하는 중이었다. 사람도 없고 옆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압박하는 점원도 없고, 마지막 세일이라고 붙은 데에는 80% 이상 세일이다. 10불짜리 캐시미어 장갑을 하나씩 주워 담고는 신나서 이제 운동화 사냥까지 나섰다.   

세일이기 때문인지 손님 없는 주 중이라 그런지 아예 진열대 아랫단 선반에 신발 상자를 다 넣어 놓았다. 알아서 문수대로 신어 보라는 거다.

"딱 내 스타일이네." 점원들이 하는 서비스받는 것이 힘든 일 인 옆에 닮은꼴 일 인도 편안하게 신발을 고른다. 연식이 간 거라 해도 그냥 봐도 벌써 물건이 좋다. 또 가격은 더 좋으니.

"이건 30불이야, 한국 신발값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딸이 감탄하며 운동화를 신어 본다.

"그러니까." 나도 하나씩 발에 맞는 사이즈를 꺼내 신어 본다.

그때 바로 옆 벽이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나온다. 벽처럼 보이지만 보통 때는 점원이 신발 상자를 들고 수없이 나고 드는 창고-사무실로 통하는 문이었다. 점원 같아 보이지 않고 캐주얼 양복을 입었다. 사무 보다가 그냥 화장실 가는 모양새로 우리를 지나간다.  

한  3초쯤 지나 자각이 왔다.

"우리 감시하나 봐."

"하라 그래."

" 집애들 진짜 신발 무지하게도 신어보네 그랬겠다."

"흐 흐."

언제 누가 예의 그 'There are these...'를 발동했을까? 아니면 자기 코너라 카메라로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처음부터 우리를 살펴보고 있었다면 무척 지루했겠다. 신발 매대 옆에 거울이 바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운동화를 우선 한 짝만 신고 끌며 거울 앞으로 가서 모양새를 보고 괜찮다 싶으면 다시 와서 남은 짝 마저 신고 다시 거울 앞으로. 그러고는 '에이, 별로야.' 다시 와서 벗고 또 한 짝 신고... 이것의 반복을 아마 30 여분 했을 테니.

'우리가 상당히 번잡스러워 세련된 백인 고객과 달리 눈에 확 띄었나? 그럴 리가. 여태껏 내가 알고 있는 백인 여성들은 더 했으면 더 했지, 그들은 만만찮은 쇼퍼들인데 들.'  

남자가 돌아와 그 문 뒤로 사라진다.

신발 신어보기는 한참 더 계속되었다. 다 신어 보아야지 싸다고 덥석 샀다가는 서울까지 들고 갈 짐덩어리가 될 뿐이어서.

"아, 힘들어. 이제 그만 가야 돼." 동네 버스 시간에 맞춰야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정리할 시간도 되었다.  

"하하, 다 신어보고 하나도 안 사네."

"그렇지 뭐. 하나 신어보고 덥석 사갔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지들 좋으라고 물건 사?"

"쟤는 월급 받을 거니까 상관없을 거야. 그리고 뭐, 신발 다시 다 넣고 정리까지 해줬는데."

머릿속에는 나와  딸이 정말 감시 대상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맴돈다.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라며, 그건 할리우드에서 영화 만들 때만 쓰는 문구냐?'라고 혼자 받아치면서도 우선 그 직원은 화장실 갔다 온 것이라고 믿어 준다. 무죄 추정 원칙이니까.

그때까지도 나는 순진했다.


미국, 롱 아일랜드.

아담한 쇼핑몰이다. 미국 소도시의 쇼핑 몰 답게 주말이면 그래도 사람들로 붐빈다. 특별히 즐길 바깥 문화가 없는 동네일수록 몰은 인기 있는 옥내 인터테인먼트다. 이 몰은 뉴욕시 광역권 주변의 고만 고만한 동네에서 들어오는 버스 노선이 만나는 허브 바로 옆에 있다. 미국인들은 어지간하면 자기 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시내로 출퇴근하는 일용직, 이민자들, 혹은  외국인들이다. 당연히 몰에는 백인 아닌 사람들이 많이 붐빈다.     

나도 버스를 타고 "보물찾기 쇼핑"을 갔다.

조그만 액세서리 가게인데 세일 사인을 크게 붙여 놓았다.

‘남대문에서 만들어 온 걸 내가 여기서 사고’ 혼자 웃는다. 세일이라 들어갔지만 진열 선반 위 쪽으로 마네킹에 둘러놓은 원석 목걸이가 눈에 띈다. 신상. 세일 제외다.

목걸이를 내려주며 점원 아줌마가 말한다.

"두 개를 겹쳐 놓은 거예요. 훨씬 풍성해 보이죠."

'뭐야 그럼, 하나만 사면 그 모양이 안 날 거잖아.'

아니나 다를까 하나만 목에 둘러보니 심심하다. 그렇다고 36불짜리  개를 ? 액세서리를 72불에, 세금    퍼센트를 붙여서 십만  넘게 생겼다. 그러기 싫다. 우선 하나를 들고 옆을 둘러보니 세일 사인이 붙었던 대로 한쪽 벽에 액세서리 목걸이, 귀걸이가  가득 걸려있다. 거의 대부분 10 근처다. '그래, 이걸 하나 사고 같이 쓰게 세일하는 놈으로 하나 골라보자.'  

세일 매대로 향하니 점원 아줌마가 친절하게 내가 고르는 동안 좀 전에 집은 것 카운터에 맡아 준단다. 물건만 만지다가 아무것도 안 사고 나가지 못하게 미리 압박을 주는 거다. ‘그래, 니들도 먹고살아야지. 걱정 마. 살 테니' 하고 맡긴다.

세일 매대에 많기도 많은 목걸이건만 처음 것에 어울릴만한 놈이 안 나온다. 어떤 건 그 나름 예뻐 목에 두르고 곁에 있는 조그만 거울을 보지만 별로다. 그렇게 한참 고른다. 조그만 가게 안에 손님은 없고 아까 그 점원 아줌마는 카운터를 지키고 서서  노트북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것 같다. 몇 번 걸음을 옮겨 거울을 들여다보고 모양새를 보면서 곁눈으로 그녀가 나를 체크하는 것이 느껴진다.  

'뭘? 30여 불짜리 신상 산다고 벌써 맡겨줬잖아.'

문득,  차림을 한번 내려다본다. 그냥 평상시대로 청바지 입었고 터틀넥 스웨터 위에 얇은 코트 입었다. 지들이랑 비슷한 느낌의 차림인데, 내가 오버하나?  있으니  아줌마와 같은 풍모의 여자가  손에 파일 폴더 같은 것을 들고 다른 손에는 펜을 들고 세일 진열대  끝으로 간다. 액세서리들을 들쳐가며 폴더에 뭔가를 체크하는 듯하다.

' 재고 조사하는 중이야'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나를 감시한다.  쪽으로 붙어 있는 벽이라  내가 속으로 움직여 가니 계산대에서  보이지 않았나 보다.

나는 정면을 보고 물건들을 고르고 있지만 곁눈으로  재고 조사녀를 보고 있다. 그녀는 어찌나 눈알을 굴리면서 나를 힐끔 핼끔 체크하는지, '저기요, 그러다 눈알 빠질까 걱정스럽네'라고 말해주고 싶을 지경으로, 그냥 난리다. 기분 나쁘다기보다는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거면 물건에 금속 칩을 달고 출입문 단속을 하든가.' 일일이 그렇게 하기에는 그 조그만 가게에서 인건비가 얼마나 나갈 테니 불가능하다. 당연히 "재고 조사" 그게 답이다.


그렇게, 롱 아일랜드에서의 보물 찾기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고, 그러고서야 내가 깨달았다.   


미국에서 가게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잠재적 도둑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결론은 나의 작은, 그러나 통계학적으로도 유효한 삼 세 판, 최소한의 세 판 "실험"에서 결론 난 것이다. 텍사스에서 그 백인 여자가 내가 보이는 계산대에서 "There are these three..." 발령 전화를 하게 된 건 내가 거기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나를 감시하던 차에 그 애들을 본 것이다.


나는 얼굴 색깔 보고 범죄 가능성 있고 없고를 정하는 프로파일링(profiling)의 대상이었다. 최근 미국에서 ‘했다,’ ‘ 안 했다’하며 연일 흑인사회와 경찰이 벌이는 실랑이의 주제다. '안 하기는 뭘 안 해, 내 통계는 무얼 말하는가, 그럼?'  

그래도 무죄 추정 원칙으로 봐줘야 할까?


더구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같은 소리가 난무하는 지금,  봇물 터지 듯 터진 "미국의 솔직함"은 무서운 지경이다. 백인 우월이 우주의 진리라도 되는 듯한 착각이 환상을 만들어 주는 모양이다.


"미안. 난 금발에 백인이야. 좋은 직장에 장래 전망도 좋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난 감옥 가지 않아.”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을 몽둥이로 부시며 난입한 무리 중 한 명, 텍사스 북부 조그만 도시의 공인 중개사 여인이 자기 트위터에 날린 글이다.  

비 백인 모두를 향한 조롱이다.

"흑인들이 이 모양으로 국회의사당 계단으로 몰려들었다면 그들은 이미 총 맞고 다 죽었을 것이다." 흑인 뉴스 논평가들은 울분을 터뜨린다.  

그냥, 지금은 더 이상 대명천지가 아니다. 그래도 텍사스 트위터 여인은 우선 60일짜리 감옥살이로 정리되어서, 반분은 푼다.

그러나, “모지리” 금발이의 감옥행과 별도로, 나의 "도둑" 이미지는,

그건 어째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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