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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May 27. 2022

이것은 나무가 아니다*

  그림책을 읽어본다 10:  <젠 쇼츠>


<Zen Shorts>    Jon J Muth    2005     Scholastic


존 뮤쓰는 1960년 생 미국 어린이 그림책 작가, 화가이며 만화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동양의 사상, 불교와 노장 사상 등에 심취한 독특한 그림책 작가이다.  


뮤쓰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붓질을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큰 붓으로 마룻바닥에 놓인 종이 위를 휘감아 오르듯 내리듯 하는 붓질이니 아침 수련이라고 볼 수 있겠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출신인 뮤쓰는 고등학교 졸업 당시에 관념 예술을 가르치는 "대학교 미술"이 싫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히 독립하여 생계를 유지하려다 보니 가까이서 일을 찾게 되었는데 전공을 살린 것인지 동네의 그림 액자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결정은 결과적으로 그의 그림 세계 구축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일이 되었다.


뮤쓰는 부다의 가르침, 또 노장 사상 등에 심취하게 되면서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자녀가 태어났을 때 빨리 이 정신세계를 알려주는 것이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생각의 첫 결실은 그의 첫 번째 그림책  <세 가지 질문>(The Three Questions)이다. 베트남 승려 틱낫한과 러시아의 레프 톨스토이 그리고 미국의 존 뮤쓰의 합작인 셈으로 존 뮤쓰가 마침내 어린이들에게 그림을 곁들여 세 가지 중요한 질문,  '무슨 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언제이며,' '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며,' '어떤 일이 바른 일인지'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두 번째 그림책이  <젠 쇼츠>다.

젠 쇼츠에 불교, 노장사상의 가르침을 담은 이야기가 세 가지 소개된다.   


그 첫 번째는 집에 들어온 도둑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고 사과한 어떤 현자의 이야기다. 자신이 입고 있던 낡은 겉옷을 벗어 주고 도둑을 보낸 그가 천지를 비치는 달을 보며 '저 달을 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하고 탄식했다는 이야기.


두 번째는 호사스러운 여인을 업어 물웅덩이를 건네준 늙은 승려와, 인사도 없이 가버린 그 여인과, 그 여인네의 무례함에 분통을 터뜨린 젊은 승려의 이야기다. 여인을 욕하는 젊은 승려에게 '난 그 짐을 벌써 벗었는데 자네는 왜 아직도 지고 있나'라고 한 늙은 승려의 말이 이야기의 골자다.


세 번째는 유명한 새옹지마 이야기.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말이 여러 마리 말들을 끌고 돌아온 것과, 그 말로 인해  다리가 부러지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징집을 피하게 되었다는, 동양권에서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거대한 팬다가 들려준다. <젠 쇼츠>의 표지에서 운동복 반바지(쇼츠)를 입은 팬다를 볼 수 있다.


수채화 물감으로 연하게 채색된 표지는 어느 동네의 지붕 위를 날고 있는 팬다를 보여준다. 이 거대한 팬다는 운동복 반바지를 입고 손에는 일본풍의 빨간 종이우산을 펴 들고 있다.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을 배경으로 만개한 벚꽃 가지를 볼 수 있다.


일본풍 우산, 벚꽃, 그리고 팬다의 등장은 뮤쓰의 동양 정신 사랑을 보여주는 것인가? 그림책 제목이 일본 말로 명상, 즉 선(禪)을 의미하는 젠(zen)이라 그 연관성이 보이는 듯하다. 선, 불교사상 그리고 동양적 정신이라, 그러면 <Zen Shorts>의 shorts는 단순하게 반바지라는 뜻인가?  반바지를 입고 하는 선?


작가는 책 속에서  ‘젠 쇼츠’(Zen Shorts)는 정식 선문답 이야기 (Zen Literature)를 짧게 줄인 선문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럼 팬다는 왜 하필 반바지를 입고 있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팬다를 그렸어요. 그에게 반바지를 입힌 그림으로. 그게 너무 우스워서 진짜 웃긴다 하고 그림을 던져 놓았는데 젠 쇼츠 이야기를 만들면서  바로 이 팬다가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뮤쓰가 설명하는 반바지 팬다가 <젠 쇼츠>에 등장하게 된 연유다.


그가 <젠 쇼츠>를 구상하고 그림책으로 만들면서 그 반바지 팬다를 기억해내게 된 것은 그가 액자 가게에서 만난 화가와 관련이 있다.


내 집 앞에서 자주 춤추던
거대한 팬다


대학을 마다하고 다닌 첫 직장이었던 액자 가게 뒷방에 그림 그리던 화가가 있었다. 뮤쓰는 그 화가를 자신의 첫 번째 스승이며 멘토라고 부르고 후에 <젠 쇼츠>를 그에게 헌정하였다. 그의 헌정사는 "내 집 현관 베란다에서 자주 춤추고 있던 거대한 팬다에게"라고 되어있다. 골방 화가가 뮤쓰에게 준 영향의 크기를 짐작케 하는 말이며 심상치 않은 심벌리즘이다. 이 멘토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고 말하는 뮤쓰는 그 스승을 일종의 네오 다다이스트라고 소개했다.


다다이즘(Dadaism).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거부하고 차라리 혼돈과 비이성, 직관을 추구하는 움직임이다. 뮤쓰도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는 직관에 몰입한 것이다. 그의 선 사랑이 엿보인다. 우리의 눈을 가리는 구속적인 관습과 체제와 이를 바탕한다는 이성과 논리를 뛰어넘어 버린다.  

보이는 것이 실체가 아니라고 말하며 담배 파이프를 그려 놓고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설명까지 달아 놓은 르네 마그리떼(René Magritte)와 같은 행보이다. 파이프가 아니면 그럼 무엇인가?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다른 무엇을 찾을 수는 없다. 실체를 보는 능력을 잃어가는 인간 이성의 모자람을 파이프 그림으로 구현해 놓은 것이고 뮤쓰는 팬다와 그의 반바지로 이를 재현해 놓았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아야 한다.’

이성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세계로의 초대장을 반바지 입은 판다가 들이미는 것이다.


뮤쓰는 동네 몇 집 건너에 현자가 살고 있어 아이들이 심심할 때 같이 앉아 잡담하듯이 세상의 실체, 인간의 본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늘 생각했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세상의 실체를 볼 수 있는 마음을 키우는 정갈한 동네를 꿈꿨다. 그는 그 꿈을 <젠 쇼츠>를 통해서 세상의 어린 마음들에게 실현시켜주고자 했다.


그러나, 사실 뮤쓰가 몰랐을 것이지만 그가 추구한 가르침은 일상적으로 어린이들 주변에 있어왔다.  

예를 들면,

1994년 개봉된 미국 애니메이션 뮤지컬 <스완 프린세스>(Swan Princess, 백조 공주)는 발레 <백조의 호수>가 그 모체로, 왕자가 공주를 구하는 해피엔딩 이야기다. 마술에 걸려 백조로 변해버린 공주, 오데트를 왕자, 데렉이 찾아 구해내는 우여곡절이 줄거리의 대부분을 이룬다.  


마술사에게 습격당하여 공주가 납치되고, 쓰러진 아버지 윌리암 왕은 뒤늦게 쫓아온 데렉에게 "겉으로 보이는 것은 실체가 아니다"(It's not what it seems)라는 말을 남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실체가 아니야?'  

왕자가 조그만 수고를 거친 후 아름다운 공주를 “얻게 되는” 해피엔딩이 이야기의 전부인 어린이용 디즈니 스타일 (<스완 프린세스>는 디즈니 제작은 아니다) 만화영화에 나올 말인가? 그렇지만 큰 교훈처럼 울림을 넣어 전달되는 대사는 분명히 "It's Not What It Seems"다. 데렉은 공주를 찾아 헤매다 마술에 걸린 오데뜨, 백조를 보고서 이 말을 떠올린다. 미숙한 그는 사악한 마술사가 백조로 위장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백조를 오히려 공격한다.  


이 애니메이션 뮤지컬을 틀어 놓고 소파에 앉았다 섰다 하며 노래를 따라 불러가며 보는 예닐곱 살짜리가 데렉의 판단 착오에 '아, 그거 아니야!'로 응수한다. 'It's not what it seems'를 제대로 해석하라는 뜻이다.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알고 본다.


이렇게, 한 집 건너 옆 집에 현자가 살지 않아도 평범한 만화영화 안에 즐거운 음악과 함께 교훈이 들어 있고, 세상의 실체를 보라는 가르침은 어디에나 있어 온 것이다.


뮤쓰의 <젠 쇼츠>는 '네 마음을 잘 들여다보아라'라는 이 정신을 즐거운 그림에 실어 전하기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어느 날 집 앞마당에 날려 온 우산을 따라 나타난 동네 이웃 팬다를 세 남매가 만난다. 이들은 그 후 팬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여 세 가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우정을  돈독히 쌓아간다. <젠 쇼츠>의 간단한 이야기다.

간단하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명상을 안내하는 이야기는 결코 복잡함이 없다, 해석은 듣는 사람의 몫이며 그 해석이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뮤쓰의 <젠 쇼츠>에는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는 멜로드라마의 재미는 없는 대신 그림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표지의 반바지를 입은 팬다를 따져 본 후에 같은 열의로 따져 볼만한 그림은 세 남매 중 조신한 소녀, 애디의 팬다 집 방문 장면이다    


작대기 모양으로 표현된 것처럼 작고 가느다랗게 보이는 애디가 둥그런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손에 케이크를 받쳐 들고 있다. 자신의 집에서 서너 집 건너인 팬다, 스틸워터의 집을 향하는 걸음이건만 애디가 건너가는 길은 거대한 언덕길이다.

별다른 채색도 없는 언덕.  

하늘 아래 한없이 둥근 능선만 강조된 언덕의 묘사는 언덕을 올라가는 소녀의 가느다란 모습에 대비된다.

애디가 가는 길이 그렇게 만만치 않게 그려진 이유는 무엇인가?  부드럽게 표현된 언덕이니 만큼 접근을 거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보여주는 이유인가? 스틸워터의 세계가 애디 남매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의미일까?   


스틸워터의 집 안.

거실과 그 앞의 복도 공간과 그 너머 정면으로 창문이 보인다. 그리고 창문 옆에 어디로 올라가는지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는 대 여섯 단의 계단이 있다. 거실에서 창문 쪽을 바라보는 구도로 잡힌 화면 전체 모습이다. 화면 중심에 거실과 복도 공간을 구분하는 큰 네모진 문틀을 앉혀 놓았다. 나무로 되어 있지만 모서리 각을 세워 그려놓았다. 자신의 집에서 멀리 언덕을 올라온 애디가 이제 정연한 정신의 장소에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화면의 왼쪽, 현관 쪽 복도에서 케이크를 든 애디는 안쪽을 살피고 있다. 팬다에게 줄 선물로 만든 케이크에는 대나무가 장식으로 꽂혀있다. 거실 오른쪽 벽에 마침 대나무 그림 족자가 걸려 있다. 그리고 정면의 계단 참에도 대나무 족자가 걸렸다.

대나무로 형상화해낸 삼위일체다. 다른 아무 물건도 없는 공간에 삼각형으로 배치된 대나무 그림들은 그 의미가 더 확실히 느껴진다. 특히 애디가 만들어 온 케이크의 대나무 장식이 스틸워터의 족자들과 합쳐 삼위일체를 이루는 것은 의미 심장하다.

동과 서가 합쳐 마침내 어떤 의미가 완성되려는 찰나다.


"들어와! 들어와!”(Come in! Come in!)

복도 입구에서 팬다를 찾는 애디에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다. 그러나 그는 거실에 없다.   

"아, 그렇지. 나와! 나와!"(Oh, yes. Come out! Come out!) 팬다의 목소리가 이어 들린다.  

그는 거실 쪽 안 마당의 텐트 안에 앉아 있다. 들어오려면 나가야 하고 나가는 것이 들어오는 것이 된다. 자신의 몸집으로 꽉 찬 듯이 보이는 텐트에 스틸워터가 들앉아 있다. 그러나 애디와 둘이서 그 속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광경에서는 텐트 안은 광활한 공간이다.   


텐트 안에 둘이 앉아 케이크를 먹으며 스틸워터는, 도둑에게 낡은 겉옷을 벗어주고는 달빛을 보고 탄식한 현자, 자신의 라이 아저씨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머지 두 이야기는 세 남매 중 두 남자아이가 차례로 그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각 각 들려준다.

간단하다.


사실, 새옹지마 이야기는 미국 초등교실에서 하는 ‘운수 사납게도’(Unfortunately)와 ‘그렇지만 다행히도’(Fortunately)라는 접두부사를 사용하는 말잇기 게임과 꼭 같다.  

한 팀이, ‘운수 사납게도 말이 도망갔어요’하면 다른 팀이 ‘그렇지만 다행히도 그 말이 다른 말들을 데리고 돌아왔어요’라고 대응한다. 다시 첫 번째 팀이, '운수 사납게도 그 말을 길들이다 다리를 다쳤어요’라고 하고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이야기를 더 이상 못 만들어내면 지는 게임이다.  

당연히 미국 아이들이 시골 골짜기의 늙은 노인네 집 말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같은 방식의 말놀이, 세상 보기다. 뮤쓰의 <젠 쇼츠>를 읽으며 그 아이들이 ‘아하! 그거야’라고 이해하고 그의 반바지 입은 팬다를 즐겁게 바라보면 될 것이다.

백조 공주 팬도 존 뮤쓰가 그려 낸 ‘정갈한 마음의 세계’를 방문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좋은 것이다.


뮤쓰는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흰 종이에 먹을 묻힌 붓으로 그림을 그려 보여준다. 아무 생각 없이, 특별한 목표 없이 시작한 점(mark)이 붓질과 붓질을 그리고 획과 획을 더하며 무엇인가로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떼의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따옴.

** Reading Rockets와의 인터뷰. (readingrocket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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