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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May 11. 2022

마음으로 돌아보는 어린 시절

그림책을 읽어본다 9: <페이퍼보이>(The Paperboy)

<The Paperboy>    Dav Pilkey   1996    Scholastic   


데이브 필키의 <캡틴 언더팬츠> (지난 글에서 소개함)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페이퍼보이의 그 데이브 필키 말이지?" 하고 다시 물었었다. 위의 두 작품이 나온 지 4 반세기가 지났지만 요즘도 그림책만 보는 사람들은 <캡틴 언더팬츠>와 데이브 필키 그리고 <페이퍼보이>가 연결되지 않아 같은 질문을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상스러운" 말이 여기저기 꽂히는 공상 코믹 동화/만화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아크릴릭 물감으로 페이지가 넘치게 묘사한 그림책은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나 두 작품 다 어린 시절에 대한 오마주다. 웃음보따리를 안기는 <캡틴 언더팬츠>는 차라리 힘든 기억이고 <페이퍼보이>는 따듯한, 그래서 코 끝이 시큰한 기억이다.     


데이브 필키는 어릴 때의 신문 배달 경험이 <페이퍼보이>에 들어 있다고 말한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보급차가 집 앞에 던져두고 간 신문을 정리해서 동네 집 집에 배달하는 열두 살짜리 소년.  신문 배달을 마치고 아침 햇살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가는 소년이기도 하다.

그의 신문 배달 기억은 어떤 그림책으로 만들어졌을까?


필키가 그려주는 <페이퍼보이>는 진하고 탁한 색감으로 다가온다.

돌아본 어린 시절.  

마음속에 가라앉혀 놓은 어린 시절의 기억은 진하다. 그리고 따듯함과 그리움으로 살아난다.


깜깜한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자기 몫을 하느라 애쓰는 소년.

그를 회고하는 작가의 심상 속으로 모두가 빨려 들어간다.

작가는 자신에게 제공된 지면의 가장자리 끝까지 어린 시절 기억을 채워 넣었다. 조금의 흰 여백도 없다. 마음속의 그리움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이야기는 속표지에서 시작된다.

아직 깜깜한 . 모닝 스타 가제트 신문사의 트럭  대가 노란 헤드라이트를 켠 채로  신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화면 전체가 검은색이다.

트럭의 노랑 헤드라이트 불이 새벽의 검정 공기 속을 뚫고 뻗어 나가고 있다.  

책의 제목, The Paperboy 역시 같은 노란색으로 화면을 밝힌다.

멀리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과 신문 보급소의 희미한 불빛을 압도하는 이 선명한 노란색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신문사 트럭은 헤드라이트를 길게 비추며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동네 입구로 들어선다.  

시퍼런 새벽빛 하늘엔 초승달과 이제 곧 사그라질 별이 남아있다.  


작가는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두 페이지 스프레드에 동네 풍경을 원경으로 잡고, 역시 스프레드에 집안으로 클로즈업하여 소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작은 무대에 올리고 독자들이 같이 반추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짙은 보라색으로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 아래 여전히 잠들어 있는 동네.  

소년의 방은 퍼런 새벽빛으로 가득 차있다. 소년도 아직 잠들어 있고 침대 발치의 개도 자고 있다.


이윽고 소년은 깨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탁자의 등이 노란 불 빛으로 방을 밝힌다. 창밖의 초승달이 아직도 선명히 보일 만큼 방은 어둑하다.

 

조용히 차고에서 신문을 정리한 소년은 길을 나선다.


차고 밖의 동네는 아직 컴컴하고 소년의 자전거 헤드라이트 불만 노랗게 길을 밝힌다. 뒤쫓아오는 개와 함께 소년은 신문 배달을 시작한다.


소년이 지나가는 루트도 원경과 클로즈업으로 교차되어 그려진다.

동네를 둘러싼 산과 나무와 그 속의 집과 건물 사이로 조그맣게 소년이  지나간다. 노랑 헤드라이트를 애써 찾아야 보일만큼 멀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는 다시 눈앞으로 클로즈업되어 보이는 장면에서, 뒤를 따르는 그의 개가 고양이와  다람쥐에게 장난을 걸고 있다.

동네의 익숙한 공기 속에 거리낌이 없는 둘의 모습이다.

텍스트는  이때가, 세상이 다 잠들고 그들 둘만이 깨어 있는 이때가 소년과 그의 개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시퍼렇다가 보라색으로 차 차 밝아져 온 하늘이 붉은색으로 채워지면 신문 배달이 다 끝난다.

‘아-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힘껏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달린다.

어깨에 맨 빈 신문 자루가 바람에 펄럭인다. 아무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빈 신문 자루의 무게는 시원한 안도의 무게다.

하늘은 이제 막 떠오른 태양의 오렌지와 핑크 빛으로 물들어 있다.

소년의 마음은 아침 일을 마친 가뿐함과 돌아가 아직도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따듯한 침대 속으로 들어갈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침내 소년의 방.  

급하게 옷을 벗어던지고 커튼을 닫은 소년은 다시 침대 속 포근한 꿈나라로 빠져든다. 아늑하게 컴컴한 방이다.

침대 발치에서 그의 애견도 다시 잠에 빠진다.


필키가 떠올린 어린 시절 한 때의 기억은 가슴 한쪽에 깊이 자리하고 있던 그리움과 같이 온다.

지붕과 나무와 산 모두 작가의 이 기억 자락에선 날카로운 모서리가 없다. 모두 둥글고 순순하다.

교회의 첨탑마저도 그 아래 곡선의 휨이 부드럽게 만들어 버린다.  

또, 새벽어둠 속에 드러나는 집, 나무, 산의 이미지는 가장자리 선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지 않다. 서로 경계 없이 번져 드는 채색으로 집과 나무와 산과 하늘이 모두 손잡고 서로 의지하며 소년의 새벽을 지지해준다.

작가의 잔잔한 그러나 한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어린 시절 기억의 모양새다.

필키는 청록색과 진보라 그리고 시퍼런 하늘색으로 그의 추억을 채색했다.

진하고 탁하다.

그리고 그의 오렌지색 하늘빛은 폭발적이며 노랑 불빛은 분명하다.

따듯하고 강렬하며 진지한 어린 시절을 그려낸다.

소중한 기억이다.

 


본 글의 내용과 사진 이미지는 저작자의 허락 없이는 어떤 형태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Copyright 2022 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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