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필키, <캡틴 언더팬츠>(Captain Underpants)
<캡틴 언더팬츠>의 주인공 조지와 해롤드가 이야기 속에서 만든 만화를 잘못 설명하여 이를 수정하고 재발행하였습니다.
서점의 어린이책 서가에서 민머리의 캐릭터가 흰색 팬티만 입고 목에는 붉은 헝겊을 망토처럼 두르고 있는 만화책을 보았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초점인 동화-만화책, <캡틴 언더팬츠>, 한국말로 <팬티 대장>이다. 팬티 외에는 벌거벗은 모습에 하얀 대문니를 드러내며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이 캐릭터의 모습은 이 작품이 웃음을 유발하는 내용의 공상 코믹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미국의 어린이 그림책 작가 데이브 필키(Dav Pilkey)가 쓰고 그린 <캡틴 언더팬츠> 시리즈는 1997년부터 20년 동안 총 14편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초등 저학년 어린이 대상의 코믹 동화로 짧은 글에 삽화가 페이지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주인공 초등 4학년생 두 명이 이야기 속에서 만드는 만화를 실제로 보여주는 구성으로 되어있어 동화책 자체가 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슈퍼 히로 영화에서처럼 동네에 악당이 출몰하면 팬티만 입고 목에는 붉은 스카프 망토를 두른 팬티 대장이 출동하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대장과 그 주변의 아이들이 좌충우돌한다. 이렇게,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과장된 액션으로 어린이 독자에게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이야기다.
2019년 집계에 의하면 <캡틴 언더팬츠>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9천만 부를 찍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스핀 오프도 여러 작품으로 나와 있다. 또, <캡틴 언더팬츠>와 약간의 연결점을 살려 2016년에 발표하기 시작한 만화, <도그 맨>(Dog Man> 시리즈는 2019년까지 2600만 부를 찍었다.
데이브 필키는 <캡틴 언더팬츠> 발표 후 25년이 지난 2022년 4월 현재에도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초등 만화책 부문에 1위를 포함한 4 종의 만화책을 올리고 있다. 이렇듯 필키는 의문의 여지없이 어린이 그림책 세계에서 보기 힘든 억만장자 작가이며 56세인 현재까지도 여전한 에너지로 <캡틴 언더팬츠>에 버금가는 만화를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있는가?
비공식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어린이 문학 작가 중 부모나 교사로부터 가장 많은 항의를 받은 작가가 또한 데이브 필키다. 그의 <캡틴 언더팬츠> 시리즈를 도서관에 비치해서는 안된다는 항의가 끊임없이 들어오는 것이다. 필키 본인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50 Shades of Grey) 보다 더 많이 그의 만화책-동화책을 금지해야 한다는 청이 들어온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항의의 주 이유로 상스러운 언어와, 책의 주 대상인 초등 저학년 어린이에게는 부적절한 내용이 꼽힌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상스럽고 부적절한가?
표지 전면에 등장하는 예의 팬티 대장, 맨 몸에 삼각형 팬티만 입고 목에는 붉은 커튼을 뜯어 망토처럼 두른 그 모습이 문제인가? 어떤 표지에는 그가 팬티 차림에 손에는 변기 뚫는 봉을 들고 있기도 하다 (캡틴은 어른이다).
팬티가 어때서?
이런 질문을 기대한 것처럼 시리즈의 첫 편에서 주인공 조지와 해롤드는 '진짜 슈퍼 히로는 바지 위에 팬티를 입지만(슈퍼맨 등을 생각해 보시라) 우리 대장은 그냥 팬티만 입는다'라고 설명한다. 팬티란 말 자체가 무수히 언급된다.
또, 말하는 변기 악당이 출몰하여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팬티 대장은 팬티를 새총처럼 쏘아 이 악당들을 무너뜨린다는 등의 줄거리가 있다. 이 이야기 속에 유치원이나 초등 저학년 연령의 어린이들이 한번 발설하면 주변 사람들의 특별한 반응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런 말들, 팬티를 비롯하여 똥 , 방귀, 오줌, 코딱지 등이 점철되어있다.
하필 그런 소재를 써야만 한다는 것인지가 부모들의 언짢음이겠고,
데이브 필키의 대답은,
<캡틴 언더팬츠>에는
신성모독의 욕,
섹스,
노출(상반신 노출은 여기서 말하는 노출이 아닌 듯함),
마약,
흡연,
음주,
총이 없고 그리고
다른 어린이 슈퍼히어로 만화보다 폭력적인 장면이 적기 때문에,
항의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필키는 어른들이 자신의 팬티 대장을 싫어하는 근본 이유는 그 이야기가 어른과 사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같이 느껴 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슈퍼 히로를 "찌질하게" 그리다 못해 속옷 팬티만 입혀서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설정한 이야기 자체가 기성 사회가 열광해온 슈퍼 히로 내러티브를 비웃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팬티 입은 어른이라는 캐릭터에 민감하게 반응할 어른 독자들에게 '슈퍼맨을 자세히 보아라. 이상스럽게 바지 위에 팬티를 입고 있다'라며 침까지 미리 놓고 있지 않은가? 특히 어린이를 내세워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텍스트를 파고들지 않아도 이야기 표면에 권위에 도전한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많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은 팬티 대장이 실제는 주인공 말썽꾼, 조지와 해롤드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선생님이라는 것이다.
이야기인즉슨, 조지와 해롤드는 아무도 말릴 수 없는 말썽꾼인데 그 둘이 학교에서 일으키는 말썽의 정도는 학교 전체를 뒤집어 놓을 수준이라 늘 교장에게 불려 가서 벌을 받는다. 그런데 조지와 해롤드는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여 캡틴 언더팬츠라는, 팬티만 입고 악당을 물리치는 슈퍼 히로 만화를 만든다. 둘이 수업시간에 이 만화를 그리거나 보거나 하다 선생님께 들켜 교장까지 이 만화를 알고 여러 번 압수도 당한다.
이런 배경에서 시리즈의 1편에서 제시된 이 이야기의 주 플랏은 조지와 해롤드가 큰 장난을 일으킨 후, 착한 학생이 되지 않으면 무서운 벌을 주겠다는 교장의 협박과 일상의 통제를 견디지 못하고 최면 반지를 구입하여 교장을 자기들 만화의 주인공인 캡틴 언더팬츠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최면을 걸면 교장은 옷을 훌훌 벗고 커튼을 뜯어 목에 두르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 범죄를 소탕하겠다고 일을 벌인다. 문제는 조지와 해롤드가 교장에게 건 최면을 풀 때 실수를 하여 이제는 최면 걸 때의 신호인 손가락 스냅, '딱' 소리가 어디서든지 나기만 하면 교장이 자동으로 동네를 구한다며 팬티바람으로 밖으로 달려 나간다는 것이다. 조지와 해롤드는 초능력은 전혀 없는 이런 교장이 벌이는 일을 말리고 뒤처리를 감당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기본이 공상 우스개 이야기이긴 하지만,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정도가 지나친 사고를 일으킨 두 주인공에게 벌을 주는 교장을 비인간적인 인물로 표현하면서, 그 벌로 오히려 교장을 칠푼이로 만들어 버린 서사가 이야기 전체에 깔려있다. 따라서 학교나 교장선생님 또 질서에 대한 무시의 경향이 이야기 전체에 표출되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혹은 열린 마음으로 읽으면, 그러나,
<캡틴 언더팬츠>의 장난꾸러기들이 보여주는 "반항"은 아이들이 느끼는 일상의 통제를 해소시키는 순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치 같은 행동이 전개되는 이야기는 아이들을 웃게 만들고 동시에 인간애와 약자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도록 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필키의 유머를 즐기고 그의 반항하는 캐릭터의 일탈을 웃어넘기며 권위에 대한 약간의 도전을 발전적인 좋은 도전이라고 인식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수의 부모들이 이 이야기가 거슬려 어찌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거슬림이 모이면 검열은 자동적으로 발현되고 심한 경우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검열하는 상황으로 까지 치달을 수 있다. 어린이용 도서의 구매자는 부모나 교사 등이기 때문에 특히 어른이나 사회 체계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담긴 어린이 도서는 순탄하게 판매되거나 배부되기 어렵고, 이 사실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데이브 필키는 자신의 단단한 팬 층을 가지고 있으므로 금서의 문제에 별로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도 새 시대의 새로운 "검열"에서까지 자유롭지는 못했다. 근래에 미국 사회에 강력하게 제기되어온 '차별의 각성,' 즉 과거의 인종 차별적 언행을 반성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나 이해 부족을 자각하는 움직임 속에서 데이브 필키도 검열 아닌 검열을 자발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2021년 3월 데이브 필키는 <캡틴 언더팬츠>의 스핀오프로 2010년에 출간된 만화책, <우크와 글루크의 모험: 미래에서 온 쿵후 석기인>(The Adventures of Ook and Gluck: Kung-Fu Cavemen From the Future)의 인쇄 및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출판사인 스콜라스틱과 같이 발표한 사과문에서 필키는,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리고 아무리 사소하여도 인종차별적 표현이나 이미지는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자신의 만화책이 그런 실수를 범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또, 이미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나간 책들은 최대한 회수 노력을 기울이고 이 만화책으로 발생한 인세 전부를 미국 사회에 번지고 있는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를 불식시키는 운동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일은 데이브 필키의 팬이라는, 5, 7세의 자녀를 둔 한국계 미국인 아빠의 청원에서 시작된다. 청원 사이트인 체인지 닷컴(Change.com)에 올라온 청원은, 청원인의 아이들이 빌려 보게 된 문제의 만화책의 이야기 구성과 그림 이미지가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 차별적 편견을 담고 있다는 지적으로 시작하여, 이런 차별적 메시지가 인기 만화에 공공연히 재생되면서 아시아인에게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주고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뒤틀린 인종적 선입견을 갖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청원의 구체적 내용과 그것이 궁극적으로 지적하는 바를 정리해보면,
첫째, 석기시대 쿵후 마스터가 중국 당(唐) 시대의 복장을 하고 있으며. (손쉽게 적당한 동양의 복장을 골라잡아 묘사한 죄로 볼 수 있다)
둘째, 한 줄로 그은 눈매의 표현, (아시아인의 외모에 대한 특징적인 비하는 용납 불가한 것이고)
셋째, 흔하디 흔한 동양 철학 문구를 여기저기 사용하고, (충분한 조사 없이 싸구려 선 문답을 동양적 교훈의 진수처럼 사용한 죄)
넷째, 마스터에게서 쿵후를 배운 주인공 조오지와 해롤드가 쿵후 기술로 마스터를 악당에게서 구해내는 줄거리(백인 우월은 우주의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지 않은 죄)이다.
종합하면, 아시아인에 대해 길거리 잡배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대(大) 데이브 필키가 이런 조악한 만화를 그려 판매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한 아시아인 아빠의 꾸짖음이다.
그 아빠는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으며 거기에다 일정액을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줄이는 운동단체에 기부할 것을 요구하였고 필키와 스콜라스틱이 그 요구를 100% 이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미국 사회의 비주류 언사(言士)들이 데이브 필키가 켄슬 컬처(Cancel Culture), 즉 사회의 큰 정서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 사회에서 추방시켜버리는 시대 추세에 당했다거나 사소한 일로 검열에 굴복한 것이라는 등의 사족을 달고 있지만 필키로서는 사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완고한 권위 체계로부터의 일탈을 웃음을 통해 추구하고, 그리고 그것이 어린이들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해온 필키로서는 그 웃음과 해학의 재료에 자신도 파악하지 못한 문화적 편견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사전 검열하지 않은 점은 뼈 아픈 실수인 것이다.
필키의 저간의 검열 이슈는 온전히 만화라는 장르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가벼운 텍스트와 웃음으로 어린이 독자에게 일탈을 선사하는 만화의 경우 특히 그 내용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독자가 많다. 만화가 공식 어린이 문학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도 아직 짧은 시간이라 부모 독자의 만화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이유다. 동시에, 문학성을 인정받을 만한 좋은 만화는 찾아보기 힘들고 정체불명의 만화물이 넘쳐나는 현실도 만화에 대한 의심을 가중시키는 이유가 된다. 부모는 응당 자신들의 자녀가 가까이하는 만화물의 정당성을 의심할 것이다.
이렇게, 어린이 만화책이 관련되는 한 '검열' 혹은 '검열 반대'의 문제는 어디에서나 간단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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