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맑을 것이라는
<내일은 맑겠습니다> 이명애 2020 문학동네
그림책, <내일은 맑겠습니다>는 노란 선과 그것을 둘러싼 흰 여백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노란 선은 길이고 방향이다. 그 길 위에 다른 시간에 함께 또 따로 있었던 우리, 같은 일기예보를 듣고 하루를 꾸리는 우리의 모습을 스케치하여 32면의 여백 위에 펼치고 쌓고 뭉쳐 놓았다.
이명애의 <내일은 맑겠습니다>는 표지의 반을 차지하는 노란색 디스크로 시선을 끈다. 정확하게는 디스크를 앞표지와 뒤표지로 걸쳐 얹어, 책을 엎어서 펴면 둥그런 디스크를 볼 수 있다. 책 표지를 압도하는, 그러나 밝고 따듯한 이 노랑 덩어리는 우리에게 내일은 맑겠다고 알려준다.
그 디스크에서 시작한 노란 줄. 그 줄에 무심한 듯 책가방을 맨 젊은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그 노랑 덩어리는 우리의 일상을 지지해주는 태양 같은 것인가 보다. 그 태양이 내일은 맑겠습니다라고 하니 특별한 걱정은 없겠다. 그냥 그 줄을 따라가면 어쨌든 우리 모두 서로를 만나고 지나치며 하루를 필요한 만큼 제대로 살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이렇게 이야기하듯 그러나 의미심장하게 시작한 <내일은 맑겠습니다>는 여러 사람들이 만나고 또 스쳐 지나가는 일상을 한자리에 묶어 넣은 이야기다.
글은 조그만 구식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기예보다. 바람도 예보하고 비도 예고하고 저 멀리 바다에서 발달하고 있는 저기압까지 예상해주는 일주일간의 구체적인 일기예보지만 처음 들어보는 말은 없는 일기 예보다. 정해진대로 매일 아침 하루를 열어주는 신호 같은 것이다.
두 페이지 스프레드로 구성된 장면마다에 일기예보 한마디가 올라가 있다. 그 일기예보와 짝이 맞듯 어긋나듯 하게, 표지의 디스크에서 뻗어나가기 시작한 노란 줄이 도시의 다양한 일상 공간을 열어 준다. 이 노랑선이 만들어내는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일상이 스케치로 묘사되어 있다. 페이지의 나머지 공간은 하얀 여백이다. 주변의 선과 면에 의해 자동적으로 의미가 할당되는 동양화적 여백이 채용되어 있다.
<내일은 맑겠습니다>의 삽화는 선을 강조한 인물 스케치와 유동적인 채색이 중심이다. 스케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세부묘사이기도 하고 특징이 과장적으로 그려진 형태이기도 하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며 남긴 붓 자락의 흔적이기도 하다. 다르고 또 같기도 한 우리의 일상과 그 일상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그 다른 붓놀림과 선의 흐름에 녹아있다.
노랑선은 우리가 누구인지 일러주고
노랑 덩어리, 힘의 근원, 또는 일의 근원에서 출발한 노랑선은 우리가 사는 삼차원의 형식을 초월한다. 여러 사람의 다양한 차원의 일상을 신호하듯이 노랑선은 페이지의 위쪽에서, 아래쪽에서, 옆으로 세워서, 또 페이지를 휘두르며 지나간다. 그 노랑선은 건널목이 되었다가, 광장이 되었다가, 수영장의 다이빙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되었다가, 떨어지는 단풍이 되어 우리를 반기기도 한다. 우리를 지탱해주고, 우리의 분란과 시련을 신호해주고, 우리를 끌고 나아간다. 노랑선은 우리와 같이 가며 우리가 누구인지 일러준다.
우리가 그려낼 수 있는 여백
노랑선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지탱하고 있는 여백은 때로는 페이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 모습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지만 그 여백은 우리가 이미 알고 그려내는 공간이다. 단일하지 않고 다차원적이다.
노랑 발디딤이 붙은 여백은 암벽 타기의 흰 암벽이고 끝 간 데 없이 높다. 노랑 나무들이 알려주는 여백은 우리가 쉬고, 놀고,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며 서로를 만나는 공간이다. 멀리 남부 지방의 돌풍 예보를 들으며 수영장의 물속으로 다이빙해 들어가는 수영 강습자에게는 이 여백이 즐거운 수영장 물이 된다. 과거 또는 현재의 반목과 불화의 시간을 나타내는 여백은 선수들의 대결 공간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이 대결을 지켜보는 우리의 시선이 가득 들어차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백은 온통 노란 책들이 꽉 들어찬 도서관의 바닥과 벽과 천정이고 사람들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분주한 공간이다.
노랑선이 국수가 되고
잠이 되어 준다
하루의 반이 지나, 그래서 우리가 허기지고 힘들어 한숨 돌리고 싶어 할 때 노랑선은 기꺼이 우리의 국수가 되어준다. 우리의 빳빳한 국수가 되어 그 힘을 우리에게 다 넘기는 기합을 넣어준다. 엄마도 등에 업힌 아기도 같이 빳빳한 노랑 국수를 나눠먹고 다시 움직일 빳빳한 힘을 얻는다.
그러나 역시 조금 쉬어야 할까? 모두 노랑 잠의 마력에 빠져 그 위에 엎어져 깜빡 한숨 잔다. 노랗게 달콤한 잠이다. 우리의 노랑 에너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혈관 속을 흐른다.
오늘 끝!
아직 못한 일 마치고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노랑 길을 타고 서둔다. 마침 끝나려 하는 하루를 반추하듯, 고요히 흐르는 강물에 비치는 나무가 아름답다. 그 광경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노랑 길을 타고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오늘 끝! 내일도 남부지방에는 돌풍이 불고 수도권은 아침저녁 큰 일교차를 신경 써야겠지만 날씨는 맑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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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의 그림 이미지는 (주)문학동네의 허락 아래 수록되었음. 그림 이미지 Copyright 2020 이명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