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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pr 16. 2022

그림책은 알록달록하기만 할 수 없다.

작은 돼지 세 마리 이야기


전래동화 <아기 돼지 세 마리>는 영국의 민담 <The Three Little Pigs>의 한국어 번역이다. 구전으로 내려올 때는 어른, 아이로 대상 층을 구분하지 않던 민담이었으며 문자로 기록되면서(1850년대) 점차 어린이용으로 정리되고(1890년대) 그 과정에서 'little'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 번역은 대부분 영어 'little'을 ‘아기’로 고쳐놓고 있다. 아기 돼지가 독립해 각자 살 집을 짓는다? 어미 돼지의 자식이란 의미에서 아기일 수도 있고 또, 동화인만큼 아기가 집을 지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기' 대신 '작은' 이란 단어가 여러모로 더 적합해 보인다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의 내용이나 소재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다. 금방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성적인 내용을 배제하는 것이겠지만 폭력이나 인간 세상의 괴로운 일 혹은 감정은 어린이용 책에는 평균적으로 사절이다. 어린이 문학에서 어린이는 학령 전부터 때로는 고등학생 연령까지를 의미하지만 그림책이나 동화책 중심으로 본다면 그 대상은 초등학생 연령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소위 말하는 권선징악이나, 주목받지 못한 약자의 성공, 혹은 부드러운 가족 간의 사랑 등이 단골 소재이고 아주 가벼운 터치의 내용은 웃음을 유발하는 이야기다.


현대의 10살짜리가, 그렇다면, 선행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스토리 외에는 소화시킬 능력이 없거나 인간사의 피할 수 없는 불행을 들여다볼 능력이 없다고 보아야 할까? 아니면 동화책 밖에서는 어른들이 이들을 살벌한 현실로부터 잘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이 쓸데없는 바람만 넣지 않으면 어린이들은 평온하게 자랄 수 있다는 뜻일까?  


대답은 모두 '아니다'인 것 같다.


학교에서 권장하는 동화책은 상상해내지도 못하는 현실을 어린이들은 실제로 살아간다. 당연히, 루소(Rousseau)와 워즈워드(Wordsworth)의 낭만주의적 사상에 근거하여 어린이는 천성적으로 순수한 존재이므로 그들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주장 등은 이제는 아동기 연구에서 경계한다. 어린이를 어른 사회의 부패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이런 인식은 오히려 어린이를 무능력한 존재로 만들며 실제 사회에서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책에 길이 있다는 믿음으로 어린이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는데 실제 권하는 그 책이 시종일관 '... (주인공)는 그 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대요'로 결론 나는 책이라면 그 아이들이 가는 길을 걱정해야 될 것이다.  

    

미국에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그림책 작가라고 불리는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은 1950년대부터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그림책이 가혹하리만큼 있는 그대로를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는 말을 했다. 어린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어른들이 어린이를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센닥의 대표작인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s Are)는 부모 독자들로부터 그 이야기의 구성과 캐릭터의 설정과 일러스트레이션까지 '거칠다,' ‘공포를 조장한다' 등의 평을 들었지만 거의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절판되지 않고 어린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고전의 반열에 들어 있다.


'작은 돼지 세 마리' 패러디

 

1980년대 말, 한 명의 그림책 작가 지망생이 아주 다른, 알록달록하지 않은 그림책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녔다. 그보다 20여 년 선배인 모리스 센닥은 그의 천재성에 공감하는 믿음직한 에디터의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이 신예작가는 아예 이 원고가 그의 첫 어린이 대상 스토리로 그를 지원하는 에디터는 없었다.  


 셰스카(Jon Scieszka). 그가 장안(뉴욕)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한 이 이야기 원고는 1989년에 그림책, <작은 돼지  마리의 진짜 이야기> (The True Story of the 3 Little Pigs!) 출판되었다. 전래동화, <작은 돼지  마리> 패러디하여 늑대가 자기변명을 하게  '풍자 동화'. 풍자 동화란 말이 어색한 만큼  때나 실제 지금까지도 풍자는 어린이용, 특히 그림책의 내용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장르라는 이해가 있다. 그럼에도 출판 30주년을 맞은 2019년까지 <... 진짜 이야기> 400 부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되어있고 현재까지도 한결같이 인쇄, 판매 중이다.     


존 셰스카.

1954년생인 그는 대학 학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소설 창작 전공으로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에서 예술학 석사를 받았다. 어른 대상의 단편 소설이 그의 창작 영역이었는데 유수한 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팔릴 소설을 금방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소설가 지망생으로  생활인으로 좌절을 겪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콜럼비아 대학에서 소설 창작으로 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고 나서   있는 일은 뉴욕에서 아파트 페인트공으로 일하는 "*이라는 말까지  것을 보면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 중에 초등학교 보조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가 여기저기 인터뷰한 내용들을 모아 보면 그가 초등학교에서 밥벌이를 하지 않았다면  <... 진짜 이야기>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같다.


셰스카는 전래동화나 민담 같은 옛날이야기를 좋아하고 유머가 문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 위에 초등 2학년을 가르치면서 초등 2학년짜리들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게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또, 자기가 물어보기도 전에 '내가 안 그랬어요'라는 대답으로 일관하는 이 오묘 무쌍한 8살짜리들을 보고 '(작은 돼지 세 마리의) 늑대가 만약 안 그랬다면 어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늑대라는 믿음성이 없는 내레이터를 내세워 수백 년 동안 지루하게도 내려온 어린이 전래동화와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읊조리는 사회를 놀려주자는 생각을 했다.


전래동화를 왜 놀려? 유머가 즐거우니까?

셰스카는 투박하게 생기고 웃음도 '으하하하'하고 웃는 사람이지만, 그리고 유머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정작은 심각한 사람이다. 그의 유머는 그냥 웃어버리는 유머가 아니라 웃고 난 후 뭔가 생각에 잠기는 유머다. 인간 세상의 집합적 고인 물에 발을 첨벙 담가 물을 튀기며 '생각 좀 바꿔 봅시다. 지루하지도 않아요?'라는 질문을 유머에 섞어 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초등생을 가르치고 있다 보니  "뻔한" 이야기가 바뀌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반복 전달되는 것이 답답했을 수도 있다. 일상의  속에 고착화하는 인간의 사고를 경계하는 예술가의 반란이다. 웃음과 메시지와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할  있는 아이들에게 모른 척하고 어른들 머릿속에 있는 고인 물을 그대로 넘겨주는 것이 싫은 사람이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작은 돼지  마리> 패러디  풍자다. 심각하게 이야기하면 전래동화 <작은 돼지  마리> 이를 계승해온 사회의 정신세계가 구축해 놓은 세상의 모습에 의문표를 던져보는 것이다. 출판 전에 8살짜리들에게 테스트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조그만 친구들이  내용에 공감하고 색다른 유머에 반응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셰스카는 글을 쓰는 사람이므로 처음에 <작은 돼지…>의 패러디 글만 써서 여기저기 출판사에 보냈지만 모든 출판사가 그의 원고를 거절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 아직 어린이 이야기를 풍자한 그림책에 공감하는 출판사 에디터가 있기 어려웠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유머 섞인 비틀음에 공감이 되었다 해도 1980년대의 보수적인 부모들이 그 책을 팔아줄 것 같지 않은 것이 거절의 이유였을 것이다.  


첫 작품이 거절당하고 포기하고 있던 중에 그의 부인이 같은  잡지사에서 일하던 그래픽 디자이너**의 파트너를 소개하였다. 래인 스미스(Lane Smith)다. 래인 스미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아트스쿨을 졸업한 후 뉴욕으로 와 여러 잡지사에 삽화를 그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진지하고 차분히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그 속에 끝 모를 조크를 던지는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이다. 그도 어렵게 아트 스쿨을 졸업하고 잡지사 이곳저곳에 삽화를 그려주면서 자기 나름의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결국 스미스와 셰스카는 만났고 스미스가 오히려 포기하고 있는 셰스카에게 자신이 삽화를 붙여 그림책으로 만든 후 출판사에 보여주자고 제안하였다.


당신들은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면 안 된다

스미스가 삽화를 붙이고 가제본으로 만든 책을 다시 장안의 출판사들에 들고 가서 보여주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거절의 사유를 종합하면 이 듀오의 그림책이 어린이에게 "너무 어렵고"(too sophisticated) "너무 어둡다"(too dark)는 것이었다.* 


스미스의 삽화는 채도가 낮은 갈색 톤을 많이 사용하고 셰스카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이상스러운(weird)”*캐릭터 묘사법을 채용하고 있다. 동화의 알록달록은커녕 괴상스러운 캐릭터 묘사에 놀란 어떤 출판사는 '당신들은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면  된다' 경고성의 거절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돼지  마리와 늑대에 관한 옛날이야기를 비틀어 웃음을 유발하는 듯한데  메시지를 암울해 보이는 색조와 캐릭터에 실어 놓은 그림책. 항상 같은 것을 보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만이 공감할  있는 파격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출판사   , 바이킹(Viking)의 어린이부 에디터가 출판해보자고 하였는데 마케팅부 등과의 내부 회의를 거치면서 시험적으로   부만 찍어 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광고 혹은 홍보 행사도 당연히 일절 없었다.

  

학교 교사와 사서들이 우선 돼지  마리 이야기의 패러디에 반응했다.  <... 진짜 이야기>  내용은 늑대의 항변이다. 늑대의 말은, '내가 돼지  마리를 죽이게  것은 사고였고 죽은 돼지니 일단 아까워서 먹었을 뿐이고  번째 돼지는 나쁜 놈이라 혼이 나야 되는데 제대로 혼도  내고 그놈과 결탁한 싸구려 "돼지" 뉴스매체들이 자신이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부각하며 진상 호도하고 오명을 씌워  세기를 욕을 먹고 있다' 요약된다.


교사들이  늑대의 변을 사용하여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기' 수업을 진행했고 입소문을 타고 책은 찍는 대로 완판이 되었다. 몇 천부 단위로 찍던 1쇄, 2쇄에서 만 단위로 찍기 시작하면서 <… 진짜 이야기>는 밀리언 셀러의 길에 들어섰다. 출판을 위해 수년 동안 고생했지만 셰스카와 스미스 좀체 보기 힘든  작품의 메가 히트를 선사받은 것이었다.  명의 고전하던 예술가에게 상업적 성공은 안정적인 창작의 발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 진짜 이야기> 이후  셰스카-스미스 듀오는 비슷한 스타일의 그림책을 여러 권 더 발표하였다. 이들 후속작도 그림책 세계에서 전례가 없었던 특이한 어린이용 그림책 스타일, 풍자와 패러디와 '이상스러운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일보도 후퇴한 바가 없었고 30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그림책 세계의 마스터가 되어 있다.


아마 지금, 21세기에 그림책이 알록달록하기만   없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 창의성, 주도성이나  밖으로 나가 생각하기와 은 열린 사고는 사회가 변화 발전하는데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새로운 사고 능력은 200년이 넘어가는 전래동화를 여기저기 찔러보며 '왜?'라고 질문하는 그런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혹은 특히, 부모들이나 에디터들은   알고 있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직접 인용은 모두 Jon Scieszka의 Reading Rockets 인터뷰에서 따왔으며 Reading Rockets 홈페이지(readingrockets.org)에서 인터뷰 트랜스크립트가 서비스되고 있다.

**이 그래픽 디자이너, 말리 리치(Molly Leach)가 <... 진짜 이야기>의 책 디자인을 맡았으며 전례 없는 과감한 레터링 등으로 <... 진짜 이야기>의 특이한 내용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제대로 살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후에 래인 스미스와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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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2022 Jane. (삽화 Copyright 2022 m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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